[장서 산책] 김민식 '외로움 수업'
[장서 산책] 김민식 '외로움 수업'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3.02.20 09: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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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나와 마주하는 시간에 대하여

저자 김민식은 한양대학교 자원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영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1996년 MBC에 입사한 뒤 청춘 시트콤 <뉴논스톱>으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상, 드라마 <내조의 여왕>으로 백상예술대상 연출상을 공동 수상했다. 엄혹한 2012년에 얼결에 MBC 노조 부위원장을 맡았다가 송출실로 좌천, 2018년에야 드라마 PD로 복귀했다. 그러나 바로 그해에 결국 실명에 이른다는 녹내장 선고를 받았다. 2020년 11월 10일 <한겨레> 신문에 실린 글이 문제가 되어 12월 31일 MBC를 퇴사했다. 실직, 대비하지 못한 노후, 그로 인한 불안과 외로움이 엄습했다. 고독해지니 비로소 ‘나’가 보였다는 그는 열심히 달려온 자신을 다독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 물었다. 이 책은 2년 동안 책을 읽고 바닷길과 산길을 걸으며, 혼자 묻고 답한 길 위의 기록이다.

목차는 ‘class 1. 어느 날 문득 외로움이 찾아왔다, class 2. 선 밖으로, 마냥 좋을 수는 없지만 괜찮아, class 3. 외로움 수업, 모든 것들과 화해하는 시간, class 4. 은퇴, 외로움을 위한 작은 준비들, class 5. 내가 먼저 불러주자 외로움은 꽃이 되었다, class 6. 삶이란, 각자의 서프보드에서 파도를 타는 것, 에필로그 외로움이 찾아오면 반갑다고 해주세요’로 구성되어 있다.

1. 무언가에 몰입하면 덜 외로워요

인생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 보냅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건 무언가 몰입하는 대상이 있기 때문이죠. 현업에서 쫓겨나거나 대기발령을 받고 징계받았을 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책 덕분이지요.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면 견딜만 합니다. 2015년 가을에 드라마 현업에서 쫓겨난 후 2016년 한 해 동안 250권의 책을 읽고 한 권의 책을 썼어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외로움을 이기는 좋은 방법이라는 걸 그때 알게 되었어요.(52쪽)

2. 혼자서 잘 쉬고 싶다면

《잘 쉬는 기술》의 저자 클라우디아 해먼드는 사람들이 ‘가장 휴식이 된다고 느끼는 활동’을 조사했는데요. ‘쉬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상위 5위까지의 활동이 모조리 ‘혼자서 하는 활동’입니다. 18,000명에게 설문 조사를 하고 찾아낸 잘 쉬는 기술 다섯 가지를 살펴보면 5위 아무것도 안 하기, 4위 음악 감상, 3위 고독을 즐기기, 2위 자연 속에서 휴식하기였어요. 즉 사람은 휴식을 취할 때 타인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는 거죠. 잘 쉬려면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최고의 휴식법으로 꼽은 1위는 무엇일까요? 책읽기입니다.

드라마 피디 시절, 밤을 세워 일하다가 잠깐씩 쉴 때면 편집실 구석에 앉아 책을 읽었어요. 촬영을 마치고 동료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러 갈 때도 나는 혼자 남아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읽어야 머리가 맑아지고 제대로 쉰 기분이었어요. 알고 보니 독서가 최고의 휴식이었군요. 그동안 내가 무엇인가를 채우기 위해 책에 매달린 게 아니라 혼자서 잘 쉬고 싶어서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요즘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합니다.(178~180쪽)

3. 행복은 작은 틈과 빈도에서 온다

월급쟁이에서 벗어났을 때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가?’를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거예요. 은퇴의 핵심은 그겁니다. 다들 은퇴에 대비해서 열심히 일하지만 55세 이상의 미국인 중 48퍼센트는 은퇴한 뒤에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거나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은 채 인생의 수십 년을 일에만 바친다는 뜻이지요.

쉰넷의 나이에 명예퇴직을 선택한 제가 누리는 즐거움은 다 ‘틈[間]’에서 나옵니다. 공간(空間), 시간(時間), 인간(人間). 여행을 통해 멋진 공간을 찾아다니고 독서와 모임, 취미를 통해 즐거운 시간을 누리며 다양한 모임을 통해 인간관계의 즐거움을 누립니다.

강도 높은 자극을 추구하기보다 작은 성취를 조금씩 자주 느낄 수 있어야 해요. 그러자면 처음 해보는 일이 많을수록 좋습니다. 오래 한 업무나 취미 활동은 그 성취의 기준이 높아요. 새로 시작한 일은 기준이 낮습니다. 조금만 늘어도 성취의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낯설고 서툴더라도 해보겠다고 마음을 내는 일이야말로 ‘갓성비’ 행복일지도 모릅니다.(218~221쪽)

4. 여행은 혼자서 문득 발견하는 아름다움

일본의 은퇴 전문가인 호사카 다카시 교수는 ‘혼자 지내는 힘’ 즉 ‘고독력’이야말로 은퇴 후 충실하게 노후를 살게 하는 힘이라고 강조합니다. 그 힘을 기르는 방법 중 하나가 여행이에요. 여행지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은 자신의 인생을 깊이 있게 되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누구나 혼자서 여행을 해보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어요. 여행을 통한 자아 성찰은 고독력을 키워주고 더 나아가 인간적인 성숙도를 높여줍니다.

저는 혼자 떠나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동반자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일상의 연장이자 긴장의 연속이지만, 혼자 다니는 여행은 온전히 자신의 욕구에 집중할 기회를 줍니다.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쉬고 싶을 때 쉬고, 자고 싶을 때 잡니다. 이보다 좋은 수가 없지요.(234~235쪽)

5. 영국 정부에는 외로움을 관리하는 부서가 있대요

영국 정부에는 ‘외로움부’가 있다고 해요. 외로움을 국가가 관리하고 정책적인 지원을 하는데, 문화부서 수장이 외로움부 장관을 겸직해요. 현대인의 고독과 외로움에 대한 문제가 얼마나 큰지 이제 국가가 나서야 할 정도예요. 민간 차원에서 ‘외로움 종결 캠페인(campaign to end loneliness)’도 활발하다고 해서 관련 홈페이지(www.campaigntoendloneliness.org)에 들어가 살펴보았어요. 고독에 대한 최신 연구나 정보 기사도 많고 세대와 상황에 따라 외로움 매뉴얼을 잘 정리해서 알려주네요. 처음에는 나이 많은 사람에게 유용한 정보를 알려줬는데 이제는 초등생, 청소년 등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해요. 몇 가지 매뉴얼을 소개할게요.

(1) 외로움에 대한 생각

① 외로움은 나이와 배경에 관계없이 누구나 경험하는 정상적인 감정이다.

② 외로움은 개인적인 실패가 아니다.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고 왜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다르다.

③ 외로움을 지우는 절대적인 방법은 없지만,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어야 한다.

(2) 외로움 매뉴얼

① 연결하기 : 전화, SNS를 통해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한다. 친구들이 바쁘고 시간이 없다고 할 것 같지만, 첫발을 내디디면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질 것이다.

② 새로운 연결에 시간 투자하기 : 관심사에 따라 그룹이나 모임에 참여하여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라.

③ 인사하기 : 상점 주인이나 이웃, 도서관 직원 등 만나는 이마다 인사하기. 간단한 일이지만, 당신이 자신에 대해 느끼는 방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④ 1주일 계획하기 : 독서, 꽃 가꾸기, 음악 듣기 등 좋아하는 활동을 포함하여 1주일 단위로 한 주 계획을 짜고 실행한다.

⑤ 바깥에서 시간 보내기 : 산책, 나들이 등 바깥 활동은 기분을 좋게 하는 방법이다. 사람들과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매우 중요하다.

⑥ 좋은 일에 집중하기 : 외로울 때 부정적인 느낌에 사로잡히기 쉽다. 좋았던 일, 행복한 기억을 자주 떠올리면 긍정적인 시각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

⑦ 먼저 자신을 돌보기 : 자신을 돌보는 것을 우선하라. 건강하게 먹고 잘 자고 운동하는 일을 습관으로 삼아라.(240~241쪽)

6. 삶이란, 각자의 서프보드에서 파도를 타는 것

《근육이 연금보다 강하다》에서 일본의 근육 박사 김헌경 선생님은 “운동(運動)은 운(運)을 바꾸는 움직임(動)이다. 노년기의 운을 바꾸고 싶다면 몸을 움직여야 한다.”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해요.

“퇴직 후에는 ‘건강 만들기’ 또는 ‘건강 지키기’라는 새로운 직장에 취직을 했다고 생각하세요. 직장에 다닐 때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운동을 퇴직 후 새로 얻은 일이라고 생각하시고 매일매일 하세요.”(281~282쪽)

삶은 서핑과 같다. 이 책은 김민식 PD의 인생 서핑기이자 새로운 시작을 위한 은퇴기이다. 그가 외로움이란 파도를 어떻게 넘나들고 즐기고 있는지, 삶에서 한 발 나아가고 깊어지는 지혜를 담고 있다.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두고 있는 5060 중년들은 이 책을 통해 은퇴 후의 막막한 날들에 대한 현실적인 솔루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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