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김영민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장서 산책] 김영민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3.04.03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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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한 인생과 더불어 사는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 책은 ‘허무와 더불어 사는 삶’을 주제로 한 산문집이다. 저자 김영민은 사상사 연구자,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이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동아시아 사상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브린모어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목차는 ‘1. 허무의 물결 속에서, 2. 부, 명예, 미모의 행방, 3. 시간 속의 필멸자, 4. 오래 살아 신선이 된다는 것, 5. 하루하루의 나날들, 6. 관점의 문제, 7. 허무와 정치, 8. 인생을 즐긴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1. 봄날은 간다

이 광활한 우주는 마음이 없다. 조물주는 모든 것을 만물에 맡길 뿐, 사사로이 간섭하지 않는다. 이 무심한 세상에서 반성하는 마음을 가진 희귀한 존재로서 인간은 불가피하게 묻는다. 나무의 침묵에 대고 발톱을 날카롭게 가다듬은 뒤, 어려운 일을 묵묵히 하러 갈 칠흑처럼 검은 곰을 생각하며 묻는다. 어떻게 이 세상을 사랑할 것인가. 세상에는 악이 버섯처럼 창궐하고, 마음에는 번민이 해일처럼 넘치고, 모든 것은 늦봄처럼 사라지는데, 어떻게 이 세상을 사랑하는 일이 가능한가.(22쪽)

2. 허무 속에서 글을 쓰다

사람들이 글을 써 남기는 것은 하루살이에 불과한 삶을 견디기 위해 영원을 희구하는 일이다. 훗날 누군가 자기 글을 읽어주기를 내심 바라는 일이다. 불멸을 원하지 않아도, 상상의 공동체를 염두에 두지 않아도, 다시 태어나기를 염원하지 않아도, 글을 쓸 이유는 있다. 작가 이윤주는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에서 글을 써야 할 또 하나의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엄습하는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글을 쓸 필요가 있다고. 쓰기 시작하면 불안으로 인해 달구어졌던 편도체는 식고, 전전두엽이 활성화된다고. 쓰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진정될 수 있다고.(28~29쪽)

3. 인생은 거품이다

인간이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인 한 인생은 거품이다. 그러나 거품은 저주나 축복이기 이전에 인간의 조건이다. 적어도 인간의 피부는. 과학자 몬티 라이먼은 ‘피부는 인생이다’에서 이렇게 썼다. “한 사람의 몸에서 매일 떨어져 나가는 피부 세포는 100만 개 이상이고 이는 보통 집에 쌓인 먼지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의 규모인데, 표피 전체가 매월 완전히 새로운 세포들로 교체되며 심지어 이런 흐름이 멈추지 않고 이루어지면서도 피부 장벽에 샐 틈도 생기지 않는다. …즉, 인간의 피부는 가장 이상적인 거품 형태라고 밝혀졌다.”

아침이 오면 거품 같은 인간이 세면대 앞에서 비누 거품을 칠하고, 자신의 오래된 거품인 피부를 씻는다. 또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부풀어 오르지만 지속되지 않을, 매혹적으로 떠오르되 결국 하늘에 닿지는 못할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또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61쪽)

4. 삶의 쳇바퀴를 사랑하기 위하여

꿈속에서 울다가 아침이 되어 깨어나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해야 할 일이 놓여 있을 것이다. 누군가 시킨 일이기에 자발성을 느낄 수 없는 일,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마지못해 해야 하는 일, 인생을 파멸의 구덩이로 밀어 넣지 않기 위해서 하지 않을 수 없는 일, 의미도 즐거움도 없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 아름답지 않은 일들이 우리 앞에 길게 놓여 있을 것이다. 이 길에 끝이 있기나 할까. 목표로 할 것은 이 하기 싫은 일을 해치우고 보상으로 받을 여가가 아니다. 구원은 비천하고 무의미한 노동을 즐길 만한 노동으로 만드는 데서 올 것이다.(160쪽)

5. 인생의 디저트를 즐기는 법

무엇을 제대로 좋아하는 일은 어렵다. 너무 좋아하다 보면 집착이 생긴다. 집착이 생기면 결국 문제가 생긴다. 집착한 나머지 좋아하는 대상에게 무리한 요구나 기대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대상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기라도 하면, 크게 상심하기도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상책인가. 좋아하지 않으면 집착할 일도 없으리니, 상심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는 인생을 풍요롭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상심할 일도 없지만, 기쁠 일도 없는 인생. 그것은 고적(孤寂)한 인생이다.

인생을 즐기고 싶은가. 그렇다면 좋아하는 대상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환멸을 피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좋아하는 대상에 파묻히지 말아야 한다. 대상을 좋아하되 파묻히지 않으려면, 마음의 중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마음의 중심은 경직되어서는 안 된다. 경직되지 않아야 기꺼이 좋아하는 대상을 받아들이고, 또 그 대상에게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268~274쪽)

6. 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을 위하여

나는 산책 중독자다. 나는 많이, 아주 많이 걷는다. 나에게 산책은 다리 근육을 사용해서 이족 보행을 일정 시간 하는 것 이상의 일이다. 나에게 산책은 예식이다. 산책에 걸맞은 옷을 입고, 신중하게 그날 날씨를 살피고, 가장 쾌적한 산책로를 선택한다. 그리고 집을 나가, 꽃그늘과 이웃집 개와 과묵한 이웃과 버려진 마네킹을 지나 한참을 걷다가 돌아온다.

나에게 산책은 구원이다. 산책은 쇠퇴해가는 나의 심장과 폐를 활성화한다. 산책은 나의 허리를 뱃살로부터 구원한다. 산책은 나의 안구를 노트북과 휴대폰 스크린으로부터 구원한다. 산책은 나의 마음을 스트레스로부터 구원한다. 산책은 나의 심신을 쇠락으로부터 구원한다. 동물원의 사자가 우리 안을 빙빙 도는 것은 제 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워서라는데, 산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산책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산책에 목적이 없다는 데 있다. 나는 오랫동안 목적 없는 삶을 원해왔다. 왜냐하면 나는 목적보다는 삶을 원하므로. 목적을 위해 삶을 희생하기 싫으므로. 목적은 결국 삶을 배신하기 마련이므로.

목적을 가지고 걷는 것은 산책이 아니다. 그것은 출장이다. 나는 업무 수행을 위한 출장을 즐기지 않는다. 나는 정해진 과업을 수행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난 산책하러 태어났다. 산책을 마치면 죽을 것이다.(284~288쪽)

 

소식은 ‘적벽부’ 서두에서 인생의 허무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이어서 그에 대한 다양한 해답들을 검토하고, 마침내 자기만의 결론을 내리면서 마무리한다. 이 책 역시 그와 같은 흐름에 맞추어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적벽부’에 대한 저자의 유연한 주석과 허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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