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종현 기자의 문학산책] 복지관 삼총사
[방종현 기자의 문학산책] 복지관 삼총사
  • 방종현 기자
  • 승인 2023.03.26 10:33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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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끝 차이

복지대학 3총사/방종현

삼총사  정지순 기자
삼총사( 이미지 사진임) 정지순 기자

노인복지대학에 이름난 3총사가 있다. 사업가 황만보씨와 공무원을 했던 고 주태 씨 그리고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강만태 씨다.

세 사람 중 성격이 활달한 호걸풍의 황만보 씨는 사업 수완이 좋아 벌어놓은 재산이 많아 돈도 제법 잘 써서 무리 중에 대장 격이다. 흠이라면 군의원에 두 번 출마해서 당선된 적이 없는 낙선의원이다. 다른 한 사람 고주태 씨는 공무원을 퇴직한 사람으로 부면장(副面長)을 끝으로 은퇴한 사람이다. 나머지 한사람 강만태 씨는 초등학교 교감을 역임하고 퇴직한 사람이다. 황만보 씨는 군의원에 당선되어 의원님 소리를 들어 보는 게 꿈이었었다. 두 번째 출마했을 때 고작 두 표 차이로 낙선했다 하니 얼마나 속이 쓰렸을까. 더욱 기가 막힌 사연은 유권자 중 가까이 지내든 지인이 하필이면 투표 날 외양간이 불이나 송아지 5마리를 잃고 경망 중에 투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중 복기를 해보니 그 지인이 투표장에 갔으면 지인 부부 아들 며느리 4표는 확실했다는 것이다, 분명 자기한테 투표했을 테고 상대보다 오히려 자기가 두 표 차로 이겨 당선되었을 것이다. 땅을 칠 일이지만 자기는 그 선거에서 당선된 것으로 보고 더는 군의원에 출마할 꿈을 접고 마음의 군의원으로 남기로 했다. 고주태 씨는 공무원의 로망인 사무관에 진급해서 면장님 소리를 들어 보는 게 꿈이었을 테고 강만태 씨는 만년 교감에서 교장선생님 소리 들어 보는 게 꿈이었을 테니 세 사람은 모두 현직에 있을 때의 공통으로 副 字 콤프렉스를 갖고 있는 셈이다.

어느 날 삼총사가 술자리를 했을 때이다. 세 사람은 나이도 병술생으로 동갑이다. 황 낙선의원이 한마디 한다.

“우리 거추장스럽게 말을 들지 말고, 갑장이니 말을 트도록 하자”며 제안하자

“그거 좋지 그럽시다”며 황 부면장이 말을 받자

“ 거 무거운거 들지 말고 놓아버립시다”하고 강 교감이 거든다.

셋은 오래전에부터 알아 온 사이이듯 의기투합해 바로 하대하기 시작한다.

잔커니 권커니 술이 몇 순배 돌자 기분이 고조된 황 낙선의원이 또 한마디 한다. 화투판에 갑오나 여덟 끗 은 한 끗 차이로 별 차이가 아니 다며 오늘부터 우리 삼총사의 호칭도 한 끗 올리기로 하잔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두꺼비눈을 한 강 교감이 왕방울 눈을 굴리며 의뭉스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눈치 빠른 고 부면장이 손뼉을 치면서 반기며 한마디 거든다.

“아 이 사람 강만태 교장선생님 오늘부터 자네는 교감에서 교장으로 한 끗 승진한 것이네!” 하며

“황 의원님 내 말이 맞지예”하고 손을 비비며 리더인 황 낙선자에게 아부한다.

“그렇고 말고자 이 사람 고 면장” 하하하 삼총사의 웃음소리가 골목길을 메운다.

그 후로 복지대학에서 셋은 스스로 올린 직함이 대견한지 평소에는 넌지시 부르든 소리가 이제는 힘이 들어있다.

“어이 강 교장 차 한잔하시게” 하며 부르기도 하고

“고 면장 점심 하러 가세”하는가 하면 혹여 황만보 씨가 늦게오는 날은 전화를 걸어

“황 의원 와 아직 등청하지 않는가?”하며 전화를 거는 둥 기고만장하다.

하모니카 반에는 원래 강 교장 혼자 수강했는데 나중 두 사람을 끌어들여 이제 삼총사가 모두 하모니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두 사람이 하모니카 반에 오기 전부터 강 교장은 홍 여사와 같은 책상에 나란히 앉아 수강하는 짝꿍이다. 홍 여사는 말수가 조용하고 계란형 얼굴에 미인형으로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이고 행동이 조신해 뭇 할아버지들의 선망 대상이다. 홍 여사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싱글이라 소문이 나 있다. 그런 홍 여사를 강 교장은 매일 볼 수 있고 거기다 수업 시간엔 옆자리에 앉히고 독점하기에 하루하루가 즐겁다. 오늘 아침만 해도 복지관 나오면서 이 옷을 입었다가 저 옷을 입었다가 거울 앞에서 뭉싯 거리다가 마나님으로부터 한 소리 들었다.

“할배가 뭐 이리 갈롱 지기노?”

마나님이 눈을 흘기며 잔소리해도 강 교장은 개의하지 않고 옷매무새도 매만지고 머리도 늘 단정하게 빗고 나온다.

복지대학엔 수강 첫날 한번 자리가 정해지면 그 자리는 대체로 다른 사람이 앉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어느 날 강 교장이 조금 늦게 나온 날이었다. 오매도 불망인 홍 여사 옆에 황 의원이 떡 하니 앉아 있는 게 아닌가. 거기다 수완 좋은 황 의원이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두 사람이 수업 시간 내 키득거려 강 교장의 심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수업이 끝나자 황 의원이 강 교장을 부른다.

“어이 강 교장 고 면장 불러오게 홍 여사랑 같이 점심 하러 가세”

평소에는 복지대학 내 구내식당에서 식사하는 게 상례인데 이쯤 되면 괜찮은 식당에서 황 의원이 한턱을 내는 게 십상이라 속은 쓰리지만, 말없이 따른다.

식당에서도 황 의원의 구수한 입담이 좌중을 휘어잡는다.

황 의원의 농담에 손을 가리고 웃는 홍 여사가 여간 신경 쓰이지 않는다.

강 교장은 내심으로 이러다가 홍 여사를 황 의원한테 뺏기는 건 아닐까 봐 속이 탄다.

내일은 일찍 나와서 홍 여사 옆에 앉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