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그대라면, 무슨 부탁부터 하겠는가’
박경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그대라면, 무슨 부탁부터 하겠는가’
  • 노정희 기자
  • 승인 2023.01.1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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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연민, 감동의 집합체를 담은 시
감꽃 같은 시인, 박경조
박경조 시집. 인터넷 사진 퍼옴.
박경조 시집. 푸른사상 출판사 사진.

박경조 시인은 경북 군위군의 산촌인 백학동에서 태어나 중앙선 봉림역을 드나들며 시심을 키웠다. 2001년 ‘사람의 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시집으로 ‘밥 한 봉지’, ‘별자리’를 간행했다. 현재 ‘사람의 문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그마한 체구에 뭍 시인들의 ‘경조 언니’로 불리는 박 시인은 잔잔한 미소를 품고 있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간에 ‘언니’라고 호명된다는 것은 그만큼 편안하고 품이 넓다는 것을 반증한다. 산촌에서 자란 그녀는 결 곱고 연민 많은 ‘소녀 언니’이다. 콩자루 이고 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고, 엄마가 마련해준 신발을 신고 소풍 갈 날을 기다리는 순수함을 아직도 지니고 있다. 무료급식소에서 밥 한 봉지를 슬쩍 더 가져가는 홀몸 어르신을 보며 연민을 느끼는 가슴 따듯한 시인이다. 그 마음은 한결같아 봉사상까지 받았다. 감꽃 같은 박 시인은 아직도 소녀이며,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그녀의 세 번째 시집 ‘그대라면, 무슨 부탁부터 하겠는가’에도 고향은 펄떡이고 있으며 살아온 날의 골목길과 이웃의 아픔을, 그리고 어머니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

박경조 시인. 노정희 기자.
박경조 시인. 노정희 기자.

‘그대라면, 무슨 부탁부터 하겠는가’ 시집에는 총 4부 5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으며 작품 해설은 ‘절제된 감정과 호흡이 일으킨 파문’을 이동순 시인이 써주었다.

푸른사상 시선 160, 가격은 10,000원이다.

 

‘시인의 말’

사는 일 어느 하나 다그친다고 되는 것 없다

스무 살 나에게 엄마가 그러셨듯

어르고 달래보는 오체투지 나의 시

어쩌랴, 미완도 나에게는 지극하고 지극한 일

위드 코로나 와중에도

여긴 온갖 꽃 피고, 손자도 태어났다고

세 번째 시집 원고를 묶으며

어떤 이름 지어서 엄마에게 전할까,

스무 살 나의 시를, 다그치고 있다

 

-박경조가 거조암 영산전에서 절하며 깨닫는 건 함께 살아가는 삶들에 대한 연민의 끈의 소중함이다. 그녀는 절하며 묻는다. “그대라면, 무슨 부탁부터 하겠는가.” 이 시집은 모든 삶들에 대한 연민을 담은 이 말로 열리며, 이 질문으로 일관된 소통의 정서를 담는다 -중략- 자연과 인간에 두루 통하는 연민의 증폭을 통해 밀도 있고 정이 넘치는 세상을 곡진한 언어의 올로 짜 올린다. 그녀의 시가 왜 우리의 가슴을 치는지 이로써 분명하지 않은가― 이하석(시인)

-시집에는 이기적인 욕망의 해제, 비판적 시선으로 포착한 세계의 위기, 생태와 인간의 공존에 대한 시인의 화두가 내면에서 잘 걸러진 후에 언어의 장식성을 제거한 상태로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배타성과 위계성을 전복시키는 사유와 성찰, 그들만의 리그로 불리는 세상으로부터 멀리에서 자연적인 것에 대한 연대와 연결과 접속, 인간과 비인간의 위계를 무화시키려는 사유가 곳곳에서 팔딱거리고 있었다.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여 거기 세상을 향한 목소리에 담았으되, 결코 강한 목소리가 아니라 부드러운 언어로 속살거려 근원에 다가가고 있었다. 존재의 근원에 다가가려는 시인의 질문과 대답인 셈이다 - 이동순(문학평론가, 조선대 교수) 작품 해설 중에서

 

그대라면, 무슨 부탁부터 하겠는가

절간 입구에서 산 한 됫박 쌀

쌀알보다 많은 부탁 나한 앞에 쏟아놓고

휙 나오는데

무명 치마 울 어머니 영산전 앞에서 마주쳤네

잔병치레 잦은 막내 딸년 생명줄 이으려던

막막한 심중의 초하룻날 신새벽

갓 찧은 공양미 이고

수십 리 밖 순례길 나서던 하얀 코고무신

한 걸음 한 걸음 쌓아 올린 그 탑 안에

나를 세워주신 당신 기도, 까맣게 잊을 뻔했네

부끄러워 돌아보는 거조암 한 바퀴

‘곡선은 이치이고 깨달음’이라던

어머니 비질 자국 마당 가득 곡선인데

그대라면,

오백 나한 앞에 조아리며

무슨 부탁부터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