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블린 모드' 영국 옥스퍼드 올해의 단어로 선정
'고블린 모드' 영국 옥스퍼드 올해의 단어로 선정
  • 김차식 기자
  • 승인 2022.12.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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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 기사에서 수집한 190억여 개 단어 사용량을 분석해 단어 선정
사회적 규범이나 기대를 거부하는 행동으로 게으르고, 뻔뻔하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것
고블린 모드는 메타버스, #IStandWith를 제치고 93%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뽑혔음

한해를 마무리할 때, 뉴스에 소개되는 내용 중에는 ‘올해의 단어’ 선정도 있다. 2021년에는 '백신'이 뽑혔고 2022년은 어떤 단어가 선정됐을까?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영어권 기사에서 수집한 190억여 개 단어의 사용량을 분석해 '고블린 모드(Goblin Mode)'란 단어를 선정하였다. 현대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그냥 대표적인 단어라 할 수 있다.

고블린은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강력한 괴물로 등장했지만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 애니메이션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이다. 덩치가 작고 사악하거나 탐욕스러운 요괴로 그려진다. 도깨비를 뜻하는 신조어이지만 느낌은 다르다.

고블린 모드에서 고블린은 ‘추함’을 연상시키며, 생활 방식을 뜻하는 모드(Mode)의 합성어이다. 유령모드라고 말한다. 단어는 국내엔 생소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고블린 모드의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사회적 규범이나 기대를 거부하는 행동으로 게으르고, 뻔뻔하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고블린 모드란 단어는 2009년에 사람의 입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가짜 신문의 헤드라인에서 이렇게 주장을 했다. 케인 웨스트라는 래퍼와 줄리아 폭스라는 유명인들 사이에 연인 관계가 깨지면서이다. 줄리아 폭스가 “나 고블리 모드로 관계가 깨졌다“라고 말한 이후 이 말이 유명해졌다.

만약 나와 자녀가 일주일 내내 방 정리도 안 하고, 가만히 누워서, 같은 잠옷을 입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과자를 먹으며, 휴대전화로 넷플릭스만 보고, 밥 먹으라고 해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 내 멋대로 게으른 삶인 ‘베짱이 모드’로 볼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일상 복귀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현대인의 모습을 묘사하는 단어로 확산 사용되었다. 평상시 루틴이 아닌, 옷이 방바닥에 쌓여 있고, 배달용 음식 용기가 흩어져 있으며, 종이 위에 과자 먹은 부스러기가 있다면, 이런 환경 속에서도 신경을 안 쓰게 되면 고블린 모드에 젖어 있는지 모른다. 게을러서 그냥 누워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형적으로 귀찮아하며 누워 있는 것이 특징이라 볼 수 있다. 익숙해져 있는 코비드에 얽매이다 보니 사람들의 삶이 이렇게 변화되어 가는 것 같다. 사실 안타깝다.

우리는 운동을 열심히 해서 배에 근육도 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돈도 잘 벌고, 건강하고 가족관계도 좋은 이런 것을 기대할 것이다. 또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트레이닝, 스무디 한잔 마시고, 일주일 동안 식단 계획도 한번 짜보고 할 것인데, 이러한 멋있고 이상적인 것을 생각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이 기저에는 자신을 어떻게든 잘 성장하고 개선하려는 의지는 전무하고, '그냥 가만히 있을 래, 나 건들지 마' 이런 환경이 되어버렸다.

옥스퍼드 출판사에 있는 사전편찬자들이 대중들에게 선택권을 줘서 뽑은 결과로, 고블린 모드는 메타버스, #IStandWith(∼을 지지한다는 뜻. 우크라이나 전쟁 계기로 급증)를 제치고 93%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뽑혔다.

각 나라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격변에 환멸을 느끼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혹시 있을지 모를 제3차 세계대전 위기감 등으로 자아 중심주의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펜데믹 3년 차로 지친 심리적 상태를 나만이 느낀 게 아니고 우리 모두 느낌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틱톡 같은 개인 SNS에 올리려면 얼굴 화장이라도 해야 하고, 대부분은 재미있고 좋은 것만을 올린다. 대부분 사람들은 관심을 끌려고 하는 행동들이지만, 고블린 모드는 관심 끌려고 하는 행동이 아니다. '나 이러다 그냥 끝낼 래, 나 건들지 마' 이런 것이 기본이다. 내가 이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나? 나 그냥 힘든데 가만히 있고 싶다. 꼭 이상적인 모드가 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고블린 모드를 통해 뭔가 안도감을 느낀다는 의미다.

사람들이 이제는 밖으로 다 나가게 되니, 방 안에서 고블린 모드인 유령 모드처럼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정리 안 하고 있을 래 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이 되었다.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고 알려져 개인 모드를 반영해 주고 있다. 이제 규제가 풀리니까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거를 거부하고, 나가기도 싫고, 안에 있음이 편해하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심미적인 미, 누가 돈 벌어가지고 인스타그램에 건물 구입한 것을 올리게 되면 짜증나는 그러한 이룰 수 없는 것들의 생활양식 분위기도 반영되고 있다.

고블린 모드가 지금 사회에서 어떻게 보면 양극화라고 볼 수도 있다. 집 안에 있어줘 혹은 바깥으로 나가라 한다면, 난 안 나갈 거야란 분위기로 사회에 커져가고 있다. 고블린 모드의 삶이 게으르고 뻔뻔한 삶에만 빠져 안락함을 누리는 것이, 장난스러움을 넘어 사회적 무력감으로 이어져선 곤란하다는 경계의 시선이 든다. 우리 주변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