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전상준 '행복한 삶 너그러운 삶'
[장서 산책] 전상준 '행복한 삶 너그러운 삶'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2.10.1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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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의 시선으로 행간의 의미 포착
타자의 무게로 자아의 여백을 채우다

저자 전상준은 영남대학교와 동 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경북에서 중등학교 교사를 거쳐 교감으로 퇴직했다. 대구수필문예대학에서 수필쓰기를 공부했으며, ≪문예한국≫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수필가의 길을 걸어왔다. 수필집 ≪행복한 삶 아름다운 삶≫, ≪행복한 삶 즐거운 삶≫, ≪행복한 삶 지혜로운 삶≫, 수필선집 ≪행복한 삶 여유로운 삶≫을 상재했다. ≪행복한 삶 지혜로운 삶≫은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세종도서문학나눔에 선정되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대구문인협회, 국제펜한국본부, 수필미학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구광역시두류도서관 수필 창작반 강사로 수필문학의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자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너그러움이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비결이라고 생각하고, 저자의 삶을 너그러운 눈으로 마음으로 바라보고 느끼며 살아가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

목차는 ‘1. 삶의 두 가지 철학, 2. 따뜻하게 사는 방법, 3. 소나무의 보은, 4. 삶의 방편, 5. 서제막급’으로 되어 있다.

어쩌면 마침표 하나 찍기 위해 사는지 모르는 나에게 겨울나무가 힘을 준다. 버리고 사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버림은 포기가 아니라 새로운 삶을 만들 수 있다. 비워야 공간이 생긴다. 공간이 있어야 새로운 것을 가져다 놓는다. 겨울나무 가지 끝에도 봄이 오면 새싹이 돋아 희망의 메시지를 주겠지. 춥고 찬 바람 속에 던져진 것처럼 보여도 삶을 포기하거나 희망을 잃은 것이 아니다. 찬 기운이 온몸을 얼어붙게 해도 햇볕을 받으며 성장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고 싶은 일 하고, 좋아하는 것에 마음 쏟으며 지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 물욕과 명예욕, 권력욕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지고 싶은 좋은 물건이나 넘치는 생각을 털어내고 겨울나무처럼 가벼워져야 한다. 겨울나무가 추위를 견디며 사는 지혜를 배워야겠다.(겨울나무, 36~37쪽)

숲속의 나뭇가지가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계곡 속의 나뭇잎이 흘러가는 물에 저항하지 않듯 거울 속의 작은 몸도 가는 세월에 묻혀 나이를 먹는다. 아침 안개 속 햇살처럼 눈부시지 않고 태풍 속의 파도처럼 요란하지 않게 내게 주어진 일 묵묵히 처리해온 몸. 지금껏 행복을 만드는 데 가장 치열하게 앞장 서온 몸. 가족을 지키며 영혼을 맑게 하는 데 헌신한 몸. 재산이 적고 권세가 높지 않고 명예가 크지 않아도 마음을 달래며 나를 지켜온 몸. 인생이란 백마가 달리는 것을 문틈으로 내다보는 것처럼 삽시간에 지나간다는 중국 고전의 말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생의 끝자락까지 내 정신을 지키고 있을 몸이다.

나이 70대가 될 때까지 내 영혼을 소중히 데리고 다닌 육신이 고맙다. 오늘도 종일 삶의 현장 여기저기를 바쁘게 다녔다. 육체의 즐거움이 정신의 즐거움으로 이어지고, 정신의 행복이 육체의 행복을 가져오지 않았는가. 자존심을 지키고 나 아닌 다른 모든 것도 소중하게 여길 줄 알게 한 거울 속의 작은 몸을 다시 쳐다본다. 인생을 진지하고 호방하게 사람답게 살다 끝내고 싶다. 온갖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들을 모아놓은 것처럼 화사하게 산 삶은 몸과 마음이 함께할 때였다. 삶의 행불행을 책임질 내 작은 몸집을 더욱 사랑해야겠다.(거울 속 작은 몸, 55~56쪽)

‘행복’이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는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한 기분이 드는 상태’를 뜻한다. 내가 한 일, 하는 일, 할 일에 만족하고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기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다. 나도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요즈음 아니다. 작고 사소한 일에 기쁨이나 만족을 느낄 때가 잦다.

오늘처럼 빨래를 널다가도 즐거움을 찾고, 식사를 준비하면서도 기쁨을 느끼며, 집안의 소소한 일을 처리하면서도 만족감을 얻는다. 아픈 아내가 준 선물이다. 간호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연습이 되었나 보다. 지금껏 행복하게 사는 초보적인 것을 모르고 있었다. 행복한 삶은 행복의 커트라인을 낮추면 된다. 아내의 잔소리가 행복을 만들어 주는 노래가 되고 있다.(행복하게 살기, 64쪽)

아들딸 제 살길을 찾아 곁을 떠나고 둥지에는 아내와 나만 남았다. 가족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던 생활에서 약간 비켜서는 여유가 생겼다. 따라서 일과가 단조롭고 무료할 때도 있다. 이대로 할 일 없이 남은 생을 보낸다는 것은 말이 아니다. 지금껏 살아온 삶이 아깝다. 알곡처럼, 과일처럼 잘 익어갈 수는 없을까. 고민하다가 아내와 둘이서 초겨울 바다를 찾았다.

산천의 초목이 조용히 가지 끝에 단 잎을 떨어뜨리고 나목으로 아침저녁 시린 모습을 보인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초연하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내년 봄 더 튼튼하고 화려한 삶을 기다리며 긴 침묵에 잠겨 있다. 그래 늙는다는 것은 조용히 먼 미래를 준비하고 더 부드러워지고 더 낮아지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나이 들어가는 것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은 포기할 줄 알고, 내가 가진 것에 깊이를 더해야 한다. 앙상한 가지만 흔들고 있는 모양이 외롭고 고단해 보이나 은자의 모습이다.(조금씩 익어가고 있다, 98~99쪽)

죽음은 누구도 같이할 수 없는 혼자의 길이다. 그러나 언제일지 아무도 모른다. 인간이 실행하는 모든 일은 죽음을 회피하기 위한 일이다. 자기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기에 세속적으로 불멸을 추구하거나 죽음을 외면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자신이 존재하는 수단으로 물건, 권력, 예술, 업적, 일 등에 매달린다. 돈을 벌고 명예를 추구하고, 창작활동을 하고, 자식을 키우는 것도 자기 삶을 존속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자신이 죽더라도 자신을 이어갈 무엇을 만드는 과정이 삶이다.

죽음은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겪어야 하는 자연현상이다. 죽음 앞에서 인간의 삶이란 나약하고 헛될 뿐이다. 마음대로 되지 않겠지만 나는 좋은 죽음을 맞이했으면 한다. 사람들은 좋은 죽음을 부모를 앞선 자녀가 없는 죽음, 고통 없는 죽음, 천수를 다하는 죽음, 준비된 죽음이라 한다. 다시 요약하면 준비된 죽음이고 편안하고 존엄한 죽음이다. 세상에 왔다 간 사람 중 한 사람도 해당 없을 것 같다. 재력, 명예, 권력까지 다 갖춘 사람이라도 그의 죽음이 좋은 죽음이 될 수는 없겠다.(사별 경험 어르신 슬픔 보듬기, 166~167쪽)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무엇보다 내면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외면적 조건을 좇는 삶에서 벗어나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천하며 살아가야 한다. 수필가 전상준의 수필집이 모두 ‘행복’을 표제로 내세운 것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을 표제로 내세웠지만 역설적이게도 행복에 대한 철학을 거론하지는 않는다. 저자의 행복은 행간에 있고 그 의미를 읽어 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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