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미셸 포쉐 '행복의 역사'
[장서 산책] 미셸 포쉐 '행복의 역사'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2.10.2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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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본질과 개념의 시대적 변화를 추적한 인문학 도서

저자 미셸 포쉐(Michel Faucheux)는 문학박사로, 리옹의 고등인문학응용연구센터 소장이며, 사상사, 철학, 문학 등을 연구했다. 현재 프랑스 리옹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옮긴이 조재룡은 성균관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 불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문학평론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2007년에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으며, 번역자의 전반적인 수정과 보완을 거쳐 2020년에 새롭게 출간됐다. 목차는 ‘제1부 형이상학적 행복, 제2부 자아의 행복, 제3부 행복과 정치, 제4부 행복은 다른 곳에 있다, 제5부 행복은 우리의 숙명이다’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행복의 변천 과정과 주요 쟁점들을 시대의 지적 패러다임의 변화에 맞춰 살피고 있다. 창세기에서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기까지, 행복이 역사에서 어떻게 인식돼왔으며, 궁극적으로 역사와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행복을 조장하거나 건설해왔고, 혹은 통제나 감시를 통해 억압해왔는지 문학, 예술, 신학, 사회, 정치, 역사 전반을 아우르면서 전개한다.

저자는 먼저 철학자들이 행복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던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고안된 행복이 신을 대신하고, 세계의 신비가 사물에 대한 명료한 이해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생겼다는 점을 밝힌다. 물론 그 절정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선을 행복의 조건으로 간주했다. 고대 그리스인에게 행복은 ‘철학’이라고 부르는 지적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지혜의 결과였다.

중세에 이르러 행복은 구원을 얻는 데 더 밀접하게 관여한다. 인간은 자기의 운명을 완수하고, 신에게 구원받아야 하는 사명을 바탕으로 행복을 꿈꾼다. 신에게 자신의 모든 존재를 맡긴 인간은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웃고 사랑을 표현한다.

그러다가 행복은 인간이 자아를 추구하는 시기를 맞이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행복을 완수할 임무는 문예에 능한 인간, 이성적 존재에 부과된다. 16세기 인본주의자들이 꿈꾼 행복은 자유를 훔쳐낸 자가 누리는 행복이자 신에게 해방되며 얻은 행복이고 합리적 인간의 머릿속에서 창조된 행복이었다.

저자는 낭만주의 시대의 불안한 행복에서 현대 자본주의 시대의 돈이 보장하는 행복이 형성되는 과정을 짚어가면서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이나 톨스토이가 주장했던 행복론, 현대 사이버 공간을 창조한 석학들의 견해 등을 다양하게 소개한다.

이처럼 행복은 축제에서 혁명에 이르기까지, 철학자의 장엄한 웅변에서 오늘날 비보이들의 현란한 율동에 이르기까지, 신학자들의 엄숙한 저서에서 인기 스타가 등장하는 광고나 패키지 관광 상품 전단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실현된다.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행복하려면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독서, 자기만의 일이 필요하다. 행복을 느끼려면 세상을 직접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이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쾌락에서 행복을 발견하고, 또 어떤 이들은 이와 다른 형태의 문화에서 행복을 발견한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행복에 관한 근본적이고 원칙적인 하나의 모델을 제안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각자가 고안하는 온갖 종류의 행복에는 적어도 자유와 자율에 대한 고려와 타자를 의식하는 근본적 상호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행복은 하나의 이정표이자 에덴동산을 향해 다시 출발하는 약속이다. 행복은 결핍의 징후이자 풍요로움의 약속, 그리고 우리를 구성하는 형이상학적인 이타성을 직시하는 행위와 밀접히 연관된다. 행복은 우리를 과거 황금기에 대한 향수나 경이로운 미래를 바라보는 기대와 꿈으로 인도하기도 하고, 현재의 평온을 우리에게 약속하기도 하는 ‘희망의 원리’이다.

행복으로 향하는 여행의 정박지는 상상력에 따라 다양하다. 어떤 곳은 다른 곳보다 우리를 더 큰 희망에 부풀게 한다. 항구와 기차역은 행복이 탄생할 수 있는 약속의 장소이다. 공원이나 정원은 궁극적으로 안락을 부르는 장소이다. 카페, 레스토랑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미리 시작할 수 있는 ‘앞서 형성된 세계’이다. 마찬가지로 도서관 역시 오래전부터 행복이 정착할 수 있는 장소로 여겨져 왔다. 책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불빛과 책이 만들어낸 빽빽한 숲은 행복이 도피해 정착한 미지의 나라에 대한 윤곽을 그려 보인다.

기자는 이 책의 제목을 보고 ‘행복론’을 집대성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행복의 ‘역사’였다. 책을 읽는 동안이라도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은 고통으로 변했다. 저자가 인용한 수많은 문헌은 무척 생소하였고, 프랑스 작가 위주로 전개되는 문학작품 속에 나타난 행복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옮긴이의 후기’에 나오는 최영미의 시 ‘행복론’을 읽고 나서였다. 기자는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는 사소한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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