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도노 하루카 '파국'
[장서 산책] 도노 하루카 '파국'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2.10.1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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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광기에 가장 민감한 세대가 선보이는 새로운 감각의 소설

도노 하루카(遠野遙)는 1991년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나 게이오기주쿠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했다. 2019년 '개량(改良)'으로 제56회 문예상을 수상하며 데뷔했고, 2020년 '파국(破局)'으로 제163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김지영은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통역번역대학원에서 번역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유엔제이 번역회사 소속 도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파국'은 요시다 슈이치, 야마다 에이미 등 아쿠타가와상 심사위원들의 팽팽한 찬반 논란을 일으킨 2020년 제163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다. 90년대생 천재 작가의 화려한 탄생과 새로운 소설의 시작을 알리며 등장한 문제작으로, 일본 아마존에서도 극과 극의 독자평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화제의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사회규범에 억눌려 왜곡된 욕망에 사로잡힌 평범한 대학생 요스케의 내적 갈등이 긴장감 넘치게 펼쳐지는 소설로,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법한, 차마 꺼내 보일 수 없는 자기 내면의 '진짜 목소리'를 몰래 들춰보는 불쾌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대학생 요스케는 고등학교에서 럭비 동아리부원들의 연습을 지도한다. 그리고 스승인 사사키의 집에서 자신의 은퇴 경기를 감상한 후 집으로 돌아온다. 다음 날 요스케는 친구 히자의 은퇴 기념 개그 공연을 보러 간 교실에서 여대생 아카리를 만난다. 요스케는 마이코라는 여자 친구가 있었지만, 아카리를 만난 이후, 마이코와 헤어지고 아카리와 관계를 가지며 지낸다. 하지만 아카리가 갈수록 성욕이 강해져서 요스케는 한계를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카리는 요스케가 자기와 사귀면서 마이코와 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사라진다. 아카리를 찾아다니다가 처음 만난 남자를 다치게 한 요스케는 경찰관에게 연행된다.

이 작품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주인공 '요스케'라는 캐릭터이다. 요스케에게는 감정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그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해야 한다', '~할 필요가 있다', '~는 매너에 어긋나는 행동이다'와 같은 것들이다. 그는 늘 규범과 매너에 사로잡혀 있으며, 자기가 느끼는 감정에도 확신을 갖지 못한다.

이렇듯 언뜻 로봇 같은 요스케의 모습은, 겉보기에는 성실한 바른 생활 청년처럼 보이지만, 이야기를 읽는 동안 금방이라도 이 평화가 깨어질 것 같은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다. 끊임없이 규범에 집착하는 그의 모습이 오히려 그의 욕구를 강하게 암시한다. 요스케는 기본적으로 육체적인 욕망에 굉장히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런 요스케가 자기 행동에 이유를 갖다 붙일 때마다, 의식적으로 억눌린 그의 욕구가 폭발할 것만 같은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요스케의 욕구와 그를 억누르는 규범이 충돌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그를 파국으로 이끄는 것은 오히려 규범에 대한 집착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요스케는 계속 의식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지만 그 판단의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요스케의 모습은 소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좀비'라는 키워드와도 이어진다. 이미 죽어서 사람을 물어뜯으려는 욕구만이 남은 상태, 무엇보다 '생각하지 않는' 상태라는 점에서 좀비는 요스케의 모습과 겹쳐진다. 경찰관에게 구속당하고 나서 편안함을 느끼는 마지막 장면 또한, 끝내 좀비처럼 폭주하게 된 자신을 막아주는 사회적 규범 속에서 생각하기를 포기할 수 있어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화된 좀비', 이것이 작가가 그리는 새로운 시대의 인간 군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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