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티파니 와트 스미스 '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장서 산책] 티파니 와트 스미스 '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2.10.30 07: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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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불행에 느끼는 은밀한 기쁨 샤덴 프로이데

이 책의 저자 티파니 와트 스미스(Tiffany Watt Smith)는 감정의 역사를 연구하는 문화 역사가이다. 케임브리지대학교와 런던대학교에서 수학했다. 현재 런던퀸메리대학교의 감정의 역사 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영어·연극 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옮긴이 이영아는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사회교육원 전문번역가 양성 과정을 이수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이 책의 원제목은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이다. 독일어로 샤덴(Schaden)은 피해나 손상, 프로이데(freude)는 기쁨이나 즐거움을 의미한다. 즉, 타인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을 뜻하며, 우리 말 유사어는 쌤통이다.

이 책은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남의 실수가 제일 재밌어-실수 동영상과 샤덴프로이데, 2장 라이벌의 짜릿한 실패-스포츠와 샤덴프로이데, 3장 그 인간은 당해도 싸!-정의감과 샤덴 프로이데, 4장 잘난 척하더니 쌤통이다-우월감과 샤덴프로이데, 5장 내가 더 사랑받아야 해-사랑 쟁탈전과 샤덴프로이데, 6장 잘나가더니 꼴좋네-시기심과 샤덴프로이데, 7장 통쾌한 반란-직장에서의 샤덴프로이데, 8장 우리 VS 그들-집단 역학과 샤덴프로이데’.

각 장마다 그 장의 주제에 해당하는 샤덴프로이데 사례를 몇 가지씩 제시하여 이해를 돕고 있다. 나무 치료 전문가가 자기가 앉아 있는 가지를 톱질한다(1장), 완벽한 이웃의 완벽하게 손질된 반려견이 똥 속에서 뒹굴다가 그들 차의 앞 좌석으로 뛰어오를 때(2장), 현금인출기 줄에서 새치기를 한 사람의 카드가 기계에 먹혀버릴 때(3장), 열쇠 관리를 잘하라고 툭하면 잔소리하는 남편이 열쇠를 깜박한 바람에 초인종을 누를 때(4장), 새 이웃이 즐겁고 신나는 인생을 자랑하며 우리를 기죽게 만들더니 맥주 네 잔에 심하게 구토할 때(5장), 걸으면서 신나게 문자를 보내던 친구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나무에 부딪힐 때(6장), 친구가 '정신적인 지주가 된다던 반려동물 햄스터'에게 물렸을 때(7장),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 전용기를 타다가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서 감춰둔 대머리가 드러났을 때(8장)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다양한 즐거움을 샤덴프로이데와 연관시키고 있지만, 이 단어의 본뜻이 무엇이고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확실히 모르고 있다. 그러나 영어에서 그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어 왔는지 살펴보면 다섯 가지 패턴이 보인다.

첫째, 일반적으로 샤덴프로이데는 우리가 직접 초래하지 않은 남의 불행을 우연히 발견하고 재미있게 구경할 때 느끼는 기회주의적인 기쁨을 말한다.

둘째, 당연한 말이지만 샤덴프로이데는 은밀한 감정이다. 남의 불행에 기뻐 날뛰는 건 악당이나 하는 짓이다.

셋째, 잘난 척하거나 위선적이거나 법을 어긴 사람이 마땅한 벌을 받으면 샤덴프로이데라는 감정도 정당하게 느껴진다.

넷째, 우리는 샤덴프로이데를 일시적인 해방구로 보는 경향이 있다. 남들의 실패를 보면 우리의 시기심과 부족감이 누그러지고, 절실했던 우월감을 잠깐이나마 맛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샤덴프로이데는 아주 심각한 비극이나 죽음보다는 사소한 불운이나 실수를 고소해하는 심리로 여겨진다.

샤덴프로이데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우리가 정치를 하는 방식에도, 유명 인사들을 대하는 방식에도,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실수 동영상들을 볼 때에도. 하지만 마냥 통쾌하지만은 않고 왠지 불편한 기분이 든다. 도덕주의자들은 오래전부터 샤덴프로이데를 경멸했다. 쇼펜하우어는 샤덴프로이데가 '철저히 악한 마음과 하찮은 도덕성의 확실한 징후'이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악의 본성이라고 했다.

우리는 샤덴프로이데의 시대에 살면서 이 감정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끌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감정이 그렇듯, 샤덴프로이데를 비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지탄받아온 이 감정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면은 없는지, 우리가 자신이나 타인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말해주는 바는 무엇인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1. 샤덴프로이데는 도움이 된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샤덴프로이데를 '나쁜' 감정, 옹졸하고 음흉한 감정, 뒤가 켕기는 감정으로 생각한다. 저자는 샤덴프로이데가 선하거나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끔 문제를 일으키기는 하지만, 대개는 무해한 즐거움이다. 그 이득에 집중해보면 의외로 유익한 점이 많다. 열등감이 느껴질 때 우리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고,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예찬할 수 있게 해주며, 인생의 부조리함을 볼 수 있게 도와주고, 반항심에 불을 지펴주기도 하고, 약간의 우월감을 통해 앞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대담함을 준다. 정치적 대화의 방향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부정적이고 천박하며 문제만 더 키우는 감정처럼 보일지 몰라도, 샤덴프로이데에는 이렇듯 유용한 면도 있다.(218쪽)

2. 샤덴프로이데를 느낀다고 해서 나쁜 인간이 되는 건 아니다

친구의 나쁜 소식에 느껴지는 짜릿함이 연민의 감정을 싹 쓸어가버리면 어떡하지? 이런 내가 위선자는 아닐까? 샤덴프로이데에 대해 생각을 좀 해본 사람이라면 진정한 염려나 동정과 동시에 예상치 못한 통쾌함이 밀려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친구를 위로해주고 싶은데 자꾸 웃음이 삐져나온다. 친구의 상실감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동시에 강한 안도감이 밀려든다. 이런 감정의 유연성은 인간이 가진 비범한 능력이며, 도덕적 정직성보다 훨씬 흥미롭고 더 진실하기까지 하다.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다.(219쪽)

3. 샤덴프로이데는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려준다

스무 걸음을 걷는 사이에 자신의 샤덴프로이데를 알아챌 수 있겠는가? 그 맛과 질감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할 수 있겠는가? 감정 상태의 미세한 차이를 인지하는 능력은 정서 지능의 중요한 부분이며, 수치스러워서 상습적으로 무시해버리는 감정에 관해서라면 특히 더 유익하다.

샤덴프로이데가 아무런 이유 없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감정을 제대로 마주할 때, 애초에 그것을 촉발한 원인이 무엇인지 묻기가 더 쉬워진다. 자신의 샤덴프로이데를 알아채고 왜 그리도 달콤한 만족감이 느껴지는지 이해한다면, 그 밑에 깔려 있는 더 괴로운 감정을 마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220쪽)

가끔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완벽만을 추구하는 것처럼, 우리의 결점을 처벌하고 더 나아가 완전히 제거하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샤덴프로이데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이야기가 보인다. 타인과 우리는 서로의 실수에서 기쁨과 안도감을 찾는다는 것이다.

샤덴프로이데는 악의적인 감정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것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훨씬 더 복잡한 감정의 풍경이 드러난다. 거만하고 능글맞게 웃는 사람이 알고 보면 오히려 더 쉽게 상처받을지도 모른다. 증오처럼 보이는 감정이 실은 갈등 어린 사랑, 소속감에 대한 갈망일지도 모른다. 남의 불행한 소식을 들으면 기운이 나는 것은, 낙담하고 실패하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님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분명 샤덴프로이데는 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것이 필요하다. 구원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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