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신이현 '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
[장서 산책] 신이현 '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2.09.04 22:2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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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삶에 자연을 담는 프랑스인 남편과 소설가 신이현의 장밋빛 인생, 그 유쾌한 이야기

저자 신이현은 1964년 경상북도 청도에서 태어났으며, 계명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94년 장편소설 <숨어있기 좋은 방>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오랫동안 파리와 프놈펜 등의 도시에 살다가 현재 한국 충주에 정착해 글을 쓰며 프랑스인 남편과 와인을 만들고 있다.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은 저자의 남편인 프랑스 알자스 태생의 레돔이다. 오랫동안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불현듯 농업대학에 들어가 포도 재배와 양조학을 전공하고 알자스 와이너리에서 일했다.

목차는 ‘제1장 그렇게 농부가 되다, 제2장 우주와 같은 작은 숲, 과일밭을 꿈꾸다, 제3장 와인은 익어가고 우리는 살아남았다, 제4장 노래하는 땅으로 일구다, 제5장 후회 없이 꿈꾸고 있으니 걱정은 말아 줘’로 되어있다.

사전에서 농부는 “농사짓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지만 농부(農夫)의 한자를 풀이하면 ‘별(辰)을 노래하는(曲)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별을 노래하는 사람이 농부라니 누가 만든 글자인지 정말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풀이다. 그런데 사실이 그렇다. 농부는 땅속의 작은 미생물부터 하늘의 신호까지 알아내고 그 뜻에 따라 땅을 일구는 사람이다. 그냥 아무 때나 괭이 들고 나가서 땅 파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53쪽)

레돔은 사과와 포도를 기르면서 생명역동농법을 고집한다. 별의 움직임에 따라 식물들이 각기 다르게 영향받는다는 사실을 근거로 만든 별자리 달력에 따라 농사를 짓는 것이 생명역동농법이다. 꽃식물이나 잎식물·뿌리식물·열매식물, 이렇게 특징이 다른 식물들은 자기에게 좋은 기운이 있는 날에는 활짝 생명을 펼치지만, 회색의 날에는 조용히 웅크리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레돔은 나무를 옮기거나 씨를 뿌릴 때 항상 이 달력을 펴놓고 언제가 열매에게 좋은 날인지 체크하고 일을 시작한다. 그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면 레돔은 늘 이렇게 말한다. “우주를 바탕으로 농사짓는 이 농법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농부는 나무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땅도 함께 키운다는 거야.”(57쪽)

레돔은 농사를 시작할 때 항상 토끼풀 씨부터 뿌려야 한다고 노래한다. 토끼풀은 줄기가 땅으로 기면서 퍼져 나가기 때문에 땅에 카펫을 덮은 것처럼 되어 다른 잡초들이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공기 중의 질소를 빨아들이는 성질이 있어 땅을 비옥하게 하고 과일나무에게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귀한 식물이다. 그러나 레돔이 토끼풀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꽃이다. 요란스럽지 않은 이 하얀 꽃은 사시사철 무리지어 풍성하게 피면서 꿀을 잔뜩 머금고 있다. 벌들이 언제 찾아가도 먹을 수 있는 마르지 않는 꿀을 한가득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 벌들이 신을 찾아가 “먹을 수 없는 풀꽃들이 너무 많아요. 제우스 님, 좋은 꿀이 들어 있는 꽃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하고 간청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벌들의 부탁을 받은 제우스가 제시한 꽃이 바로 이 토끼풀이라고 한다.(64~65쪽)

나무 심기는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4월 들어 총 1,300그루의 묘목을 심었다. 포도나무 사이사이에 포도나무의 친구가 되어 줄 나무를 함께 심었다. 친구나무로 가장 먼저 산딸기와 복숭아나무, 무화과, 헤이즐너츠 같은 나무들을 심었다. 프랑스에서 가져온 씨로 싹을 틔운 까막까치밥 나무들도 100여 그루 심었다. 이 나무들은 포도밭에 심으면 꽤 잘 자란다. 포도나무와 뿌리가 얽히면서 서로 좋은 것을 주고받고 포도에 은근하게 맛이나 향이 스며든다고 했다. 사과나무 한 그루마다 카시스나무도 한 그루씩 심었다. 벌레들이 사과인 줄 알고 카시스나무에 붙어 있다가 사과 열매에 파고드는 시기를 놓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100~101쪽)

“땅에게 가장 치명적인 건 뜨거운 태양이야. 땅도 인간처럼 시원하고 쾌적한 걸 좋아하는 살아 숨 쉬는 존재라고. 저렇게 깨끗하게 갈아엎어서 잡풀이 하나도 없으면 지렁인 뭘 먹고, 미생물들은 어디서 살지? 버섯은 꿈도 꿀 수 없어. 잡초가 있어야 그 그늘에서 버섯도 자라고 지렁이도 먹고살면서 퇴비를 만들잖아. 사실을 말하자면 지금도 이미 너무 늦어 버렸어. 지금부터 땅을 살린다 해도 다가오는 재앙을 막을 수 없을 거야. 그때 울어도 소용없어.”(181쪽)

봄비가 두 번 내리고 한 번 더 내리자 호밀은 성큼 더 자랐다. 태양을 가려 어린 포도 묘목이 자라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호밀을 모두 베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하지만 호밀 전문가 레돔의 생각은 달랐다. “베지 말고 눕히는 게 좋겠다. 포도나무 앞에서 태양을 가리는 남쪽 호밀만 모두 밟아서 눕히고 뒤쪽은 그냥 둬. 봄이라도 북쪽에서 부는 바람이 매서우니까 병풍처럼 북풍을 막아 줄 거야.” 남쪽으로 난 호밀을 모두 눕히니 한쪽 길이 훤해졌다. 이제 어린 포도나무는 북풍을 가려 주는 뒤쪽 호밀에 기대어 햇빛을 한껏 받으며 자랄 것이다.(210쪽)

사과는 과일 중에 가장 오래 매달려 있는, 태양 에너지를 가장 많이 빨아들이는 과일이다. 그래서 사과는 명랑하게 반짝인다. 우울을 참지 못하는 과일이다. 올겨울이 슬프다면 우선 사과를 잔뜩 책상 위에 올려놓으시길. 당신이 잠든 사이 껍질에 살고 있는 명랑한 효모들이 날아가 온 몸에 백 번 천 번 뽀뽀를 해줄 것이다. 다음 날이면 ‘어, 오늘 기분이 괜찮네’하고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255쪽)

집에 내추럴와인 한 병이 있다는 것은 와인이 온 땅과 그해의 비바람, 그 풍경을 병 속에 봉인해 둔 것과 같다. 내추럴와인은 기본적으로 유기농 과일을 손으로 수확해서 착즙한 뒤 아무것도 넣지 않고, 필터링이나 살균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만든 와인을 칭하는 말이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술이다. 인간이 좋아하는 입맛에 맞추기 위해 뭔가를 첨가해 와인을 제조하는 것이 아닌 자연이 준 그대로의 과일을 발효해서 만드는 것이다. 과일이 자란 땅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다.(270쪽)

기자는 열여덟 살때부터 아버지와 머슴을 따라다니며 일 년 반 동안 농사를 지었고, 그 후에도 아버지가 과수원에서 일하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사과밭에는 일 년에 열 두번 가량 농약을 쳤고, 제초제를 뿌려 잡초를 없애고, 퇴비보다는 화학비료를 더 많이 주었다. 밭에 작물을 심을 때는 잡초가 나지 않도록 검은 비닐로 땅을 덮은 후에 씨앗을 심었다. 우리나라 농촌에서는 대개 이렇게 농사를 짓고 있다.

레돔은 농작물 재배와 함께 땅을 기름지게 하려고 노력한다. 농약, 제초제,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을 고수한다. 스스로 생산한 사과, 포도를 이용해 시드르나 와인을 만든다. 사과밭과 포도밭에 여러 종류의 나무를 함께 심고, 잡초를 함부로 베지 않는다. 밭으로 날아오는 새를 위해 새집을 짓고, 벌을 기르고, 땅속에 자라는 지렁이, 미생물까지 생각하며 농사를 짓는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레돔의 농사법과 삶의 태도를 본받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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