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크지도 높지도 않다. 어디에 연결된 곳이 없는 독립된 산이다. 그러나 사방이 모가 없이 둥글고 밑은 석벽(石壁)으로 쌓여 견고하고, 위는 토산(土山)으로 평탄하고 완만하니 작은 산이지만 산이 갖추어야 할 것은 다 있다.
일명 장원봉 (壯元峰)이고, 앙산(央山)으로 상주 시가지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석벽(石壁)사이에는 고색(古色)이 창연(蒼然)한 괴목(槐木)들이 주위의 분벽(粉壁)과 사창(紗窓)에 녹음을 드리우고 철따라 풍경을 이룬다. 세로를 내어 주위를 돌게 하고 계단을 통하여 오르게 하였다. 숲에서 구름이 자고 산새가 지저귀며 봉접(蜂蝶)이 넘나드니 시가(市街)속에 별천지(別天地)이다.
「시일야 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의 신문기사로 의기(義氣)를 드높인 장지연 지사의 기념비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강개(慷慨)를 일깨우고 나라사랑을 북돋우며 상주인의 긍지(矜持)를 갖게 한다.
곤려전(昆廬殿)의 곤려사나석불(昆廬舍那石佛)은 천년의 신비를 간직하고 조용히 미소짓고 다소곳이 굽어 살펴 자비를 베푼다. 한밤의 풍경소리는 세속의 공망(空忙)한 유생에게 본분과 진리를 일깨운다. 녹음 중에 정정(丁丁)한 바둑두는 소리는 사호(四皓)가 다시 온 듯하고 화간(花間)에 선남선녀가 노니는 양(樣)은 마치 왕궁의 후원(後苑)을 방불케 한다. 아마도 옛적 왕도(王都)일 때 이 산이 비원(秘苑)중의 독산(獨山)으로 왕의 여행이 많아 이름 지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또 다른 이름은 장원봉(壯元峰)이다.
이는 상주에 장원(壯元)이 많이 났었기 때문이다. 조선 국초부터 선조 때 까지만도 무려 수십인이었다 하는데 그 장원은 이 산의 정기를 타고 태어났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때 이 산 아래 관아(官衙)가 있고 연못가에는 이향정(二香亭)이라는 정자(正子)가 있어 관민(官民)이 연락(宴樂)하는 곳이었고 때로는 목사(牧使)의 후원(後苑) 내당(內堂)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왕산 테마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들에게 더욱 편안한 휴식처로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