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도 잡는 노 해병 ‘국민 재난안전 교육단 중앙회’ 박수부 총재
귀신도 잡는 노 해병 ‘국민 재난안전 교육단 중앙회’ 박수부 총재
  • 유무근 기자
  • 승인 2022.03.08 15:36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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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 2억여 원 써가며 재난 방지 교육에 헌신
열성 회원 700여 명 연간 1천 여건 안전 교육
(사)'국민 재난 안전교육단 중앙회' 간부진 . 앞줄 가운데 박수부 총재 우측(정장) 대구 시설공단 김석동  본부장<유무근 기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80세 고령인데도 왕성한 혈기로 700명 회원을 이끄는 열정 노익장이 있다.

그는 대한민국 해병대총연합 대구지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사)‘국민 재난안전 교육단’을 창단하여 17년째 중앙회 총재로 활기차게 운용하고 있다.

귀신도 잡는다는 해병답게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미남형에 성대도 좋아 어느 장소에 서더라도 보스로 인정받는다.

정부에서 줄려고 하는 지원금도 거부하고, 비중 있는 표창패 다수도 아랫사람에게 공과 기회를 주어 정작 본인은 그 흔한(?) 상장 하나 받은 바 없다.

억대의 사비를 들여 열성 회원들과 국민 재난 방지에 솔선수범하는 (사)국민 재난 안전교육단 박 수부 총재를 찾아 그의 활동 열정과 삶 이야기를 들어본다.

- (사)국민재난안전교육단중앙회는 어떤 일을 하나요?

▶ 사단법인 국민재난안전교육단중앙회는 비영리법인으로서

<선진 안전 문화 정착을 위한 재난 안전교육 사업>, <재해 재난 예찰 활동 전개를 위한 재난 안전 감시단 운영>,<재난 안전 교육을 위한 자료 발간 및 학술회의 개최>, <주무 관청, 각 시도 군청, 각 기관이 위임 위탁하는 사업>을 돕기 위해 구성된 단체입니다. 재난과 안전에 대한 교육 및 홍보를 주요 활동 목표로 삼고 있으며 현재 다양한 방면에서 여러 활동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사고 발생 시 신속하게 대처하는 방법 등에 대하여 홍보 및 현장 교육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전국 회원은 23만 명이고 대구지역 700여 회원 중 열성 회원 70여 명과 함께 정기적으로 다양한 사회봉사에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7년 창단 때에 ‘해병 119 재난안전 교육단’으로 출발했습니다.

그해 7월에 사단법인 등기를 하고 9월에 ‘사단법인 국민재난안전교육단중앙회’로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 우리 교육단에서는 매월 4일 '안전 점검의 날 행사'를 전개하여 2014년도 월평균 600명이 참가했다. 같은 해 '대구시민의 안전의식 함양과 안전불감증 해소 행사'에 1.400명 참가, 대구 전역, 팔공산 수태골에서 계절별 시민의 안전의식 강화캠페인 1.400명 참가, 안전 도시 대구 만들기 100만 명 서명 운동, 엑스코, 인터불고 호텔 주변 등에서 심폐소생술 응급조치 교육 등을 연간 천 여건의 행사를 실시했지요. '아름다운 대한민국 만들기 천만 명 서명 운동 발대식'을 국회 헌정회관에서 했다. 150개 단체와 국회의원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대식을 가졌습니다.

(사) '국민 재난안전 교육단 중앙회'  박 수부 총재 파이팅를 외치고 있다  <유무근 기자>

 

- 국민 재난안전교육단 설립 동기는?

▶ 지하철 상인동 가스 폭발 사건과 중앙역 화재 사건 등 큰 재난이 있을 때 제가 주도적으로 대원들과 봉사를 했습니다. 재난지역에는 많은 위험요소가 있어 통제와 관리를 하지 않으면 2차 사고가 발생합니다. 이에 우리는 소방관과 경찰관을 도와 교통 통제와 구조 활동을 하여 바른 복구를 위해 많은 힘을 썼습니다. 그때부터 봉사활동에 탄력을 받으며 이 단체가 출범한 동기가 되어 17년째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국민재난안전교육단중앙회 조직 운영은 어떻게 하나요?

▶ 조직으로는 총재, 고문, 자문위원, 명예총재, 사무총장 등이 있습니다. 산하 기구로는 홍보단, 행사단, 방역단, 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전체 회원은 전국적으로 23만 명 정도 됩니다. 대구만 해도 700여명의 회원이 있다.  아무리 작은 행사라도 많은 운영비용이 들어갑니다. 정부 지원은 있지만 강사료 현수막 비용 정도이니 항상 운영자금이 부족합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운영하는 침구사업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꾸었습니다. 그동안 제 돈 수억 원을 쏟아부었습니다.

매년 7월에 행안부에서 표창 상신 요청이 옵니다. 국무총리상, 행정안전부 장관상 같은 것인데 제가 상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고생하는 후배들에게 표창을 주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재난 안전교육단 간부진 국민 의례. 앞줄 좌 박수부 총재 <유무근 기자>

 

- 해병대총연합 대구지회장을 맡고 있는데 어떤 단체인지?

▶거기는 해병대 사령관 또는 해군사관학교 출신들만 총재를 합니다. 그 산하에 18개 시도연합회가 있습니다. 아무런 인맥 학연 지연없이 시골에서 나와 해병대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제가 해병대 출신이고 해병대는 조국을 위해 언제든 목숨을 바쳐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해병대전우회 중앙회는 국방부 산하 단체입니다. 나라가 위태로울때 적과 싸워 나라를 평안하게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게 해병대입니다.

해병대총연합회라는 사단법인 인가를 받은 정식 업체입니다. 저는 해병대의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해병대 옷 입었다고 모두 해병대가 아닙니다. 나라을 위해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어 있고 후배를 금쪽같이 생각하며 선배를 하늘처럼 생각합니다. 언제든 나라를 위해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는 군인이 바로 해병대 아니겠습니까. 정부 표창을 후배들에게 다 주었지, 저는 상 하나 받은 일이 없습니다. 저는 단지 해병대 총연합회가 더욱 대한민국에서 빛나길 바랍니다.
라고 하면 안 되죠. 해병대전우회 중앙회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박근혜 탄핵 당시 우리는 태극기 들고 반대 운동에 나섰지만, 중앙회에서는 참여하지 못하게 지시했습니다. 중앙회 사령관은 국회의원 비례대표나 기업체 사외 이사, 국영 기업체 대표를 하고 싶어 가만히 엎드려 복지부동이었습니다. 그래서 해병대전우회도 2개로 나눴습니다. 정종섭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해병대 예비역의 실태를 설명하고 ‘해병대총연합회’라는 사단법인 인가를 따로 받았습니다.

 

대구 시설공단 김석동 사업 본부장이, 박 수부 총재로부터 감사패를 수상했다  <유무근 기자>

- 안전 교육이나 강의는 어디서 어떻게 하시나요?

▶ 매년 7월부터 12월까지 연간 1천 회 이상 교육을 나갑니다. 부문별로 나누어서 회원들이 방역도 하고 서부 정류장, 요양원, 병원, 노래방, pc방, 미용실 등에 무료로 교육도 합니다. 사명감이 없으면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주로 하반기에 경로당, 학교 등에 안전 교육을 나갑니다. 안전 교육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인성 교육을 함께 하는 겁니다. 우리가 먼저 학생들에게 안녕하십니까, 저는 어디의 누굽니다. 오늘 이 학교를 와 보니 공기도 좋고 학생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니 정말 살맛 나는 학교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칭찬의 인사를 열면서 살아온 인생을 얘기해야 귀를 기울이죠.

안전 교육은 10~20%만 하면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우리가 이끌어 나아가야 합니다.'라고 희망을 심어 주고, 마무리해야지 오래 하면 학생들이 안 듣습니다.

경로당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는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 앉아 있잖아요. 자식들한테 재산 다 넘기고 늙은이 취급받고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런 분들과 같이 울고 같이 즐거워하고 이렇게 해서 그분들에게 짧은 시간에 힘과 용기를 주는 멘트가 있어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게 살아야 합니다. 노인같이 살지 말고 어른답게 살아야 해요. 늙어서 젊은 사람한테 비난의 대상이 되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합니까. 늙은 것도 억울한데 그렇죠? 이런 부분은 노인 대상을 주제로 강의나 글로써 홍보를 많이 할 필요가 있습니다.

▶ 박 총재는 1944년생으로 고향은 성주군 월항면이다. 1958년 15살 때 대구로 나와 사업을 했다. 슬하에 아들 2명 있다. 서울에서 공부 마치고 모두 잘살고 있다.

여성 회원의 장비를 꼼꼼히 챙겨주는 박 수부 총재  <유무근 기자>

 

- 가장 어려웠던 때는?

▶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도 있어요.

우리 단체에 들어와서 시장 표창 하나 받고 나면 안 나옵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 도와서 인간 만들어 놓으면 입 싹 닦고 행방을 감추는 이도 있어요. 배신을 당할 때 가장 허탈하죠

저는 직원들도 여럿 있지만,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을 더 생각합니다. 대화를 들어보면 진심을 알아차립니다. 안 어려운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하루 밥 세 끼 먹는 것도 늘 감사하게 살아갑니다.

- 이불 공장은 언제부터 했는지?

▶ 경산에서 동화개발이라는 알루미늄 세시 공장을 했습니다.

이불 만든 지는 한 20년 넘었습니다. 이불 공장은 채권으로 넘겨받아 시작하게 되었지요.

당시에 친구가 자기 동생을 소개해 줘서 상무를 시켰더니 딱지 어음으로 부도를 내는 바람에 그 친구도 교도소 들어가고 저도 완전히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때가 2007년도인데 제가 사기 미수로 법정 구속됐습니다.

사기는 친구가 치고 저는 의리 지킨다고 모든 것을 뒤집어썼죠. 변호사가 그 사실을 알고 역정을 내면서 재판부에 얘기해서 30일 만에 석방되었습니다.

회사 직원은 8명인데 인건비가 평균 2천만 원 됩니다.

영업은 딜러가 따로 있어 맡기고 있으나, 문제는 인력인데 지금 제품 수작업하는 기능공 양성이 안 됩니다. 그래서 기능공 채용에 애로가 있습니다.

- 보람된 일들이 많으실 텐데요?

▶ 약 7년간 독거노인, 장애인 같은 어려운 이웃을 찾아 환경개선 사업을 했습니다. 행안부 공모에 선정된 사업이죠. 각 구청으로부터 어려운 이웃 명단을 받아서 분사식 소화기와 화장실 미끄럼 방지기 등을 사비로 지원했습니다.

대상 가정에 어지럽게 널린 전기선을 육구 전구 세트로 깔끔하게 정리하여 안전사고를 예방하였고, 더러운 이불 교체 등의 사업을 했습니다. 제작 년까지도 남구, 달서구 등에 해마다 이불 2천~3천만 원 상당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기부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제 신조는 ‘남한테 기대지 말자’입니다. 어떤 일을 하던 밥은 제가 사야지. 남에게 신세 지는 법은 없다. 지금까지 활동비나 운영비도 제가 번 돈으로 운영을 해 왔습니다.

▶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과 협객 김두환 국회의원을 존경하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지만, 당시 강력하게 추진하지 않았으면 이 나라가 발전할 수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해산 준비하는 간부진   <유무근 기자>

 

◎ 국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공정입니다. 지금 우리 서민들이 믿는 게 사법부 아닙니까. 사법부가 무너졌는데 우리가 기댈 데가 없잖아요. 그러면 서민의 한은 누가 풀어주겠습니까. 공정이 무너지면 정말 희망이 없습니다. 정의가 살아있고 공정한 나라가 되면 좋겠다는 박 총재의 눈빛은 애국심으로 이글거리는 듯 보였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 이끄는 주역을 양성하고자 금전과 재능기부를 내어놓은 채, 밥 세 끼만으로도 감사함을 갖는다는 박 수부 총재는 임금님 하사품도 사양할 애국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