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헤어스타일, 바디 랭귀지의 애환
(6) 헤어스타일, 바디 랭귀지의 애환
  • 조신호 기자
  • 승인 2019.03.25 10: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2013년 3월 한 대학에서 소통과 화합을 위한 어울림 이벤트가 12일간 진행되었다. 이 행사는 새로 부임한 68세 H총장이 지금처럼 백발이 좋은가, 아니면 검게 염색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하여 투표하는 것이었다. 투표 마감 결과, 총장의 헤어컬러는 지금 그대로 백발이 더 좋다는 응답이 84.1%로 염색하는 ‘블랙 헤어’ 15.9%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흰머리 선호 비율은 교직원(90.6%)이 학생(83.6%)보다 조금 높게 나타났다. 결과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했던 행사를 통해서 학생들은 새 총장의 얼굴을 확실히 알게 됐고, 공동체 전체가 학교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학 구성원의 ‘소통과 화합’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새 총장의 헤어 컬러를 사용한 것은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이벤트가 재미있게 진행되어 좋은 결과도 얻은 일조이석의 활동이었다. 정치인에서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흰머리를 검게 염색하는 경향인 한국사회에서 헤어스타일 ‘바디 랭귀지’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들어있다.

요즈음 농촌에 가보면 대부분 할머니들이 검게 염색한 파마머리를 하고 있다. 얼굴에는 세월의 상형문자가 깊게 새겨져있는데 머리칼은 애써 검은 색으로 염색한 결과 묘한 불균형 ‘바디 랭귀지’ 현상으로 보인다. 영감님이 먼저 가벼렸으니 흰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백년해로 하자던 언약은 파기된 것일까? 누군가 머리를 검게 염색한 노인에게 물어보면, 별 뜻이 없어! 팔십이 넘어도 머리는 검게 보이고 싶어! 요즘 다 그러잖아! 하고 쉽게 대답할지 모른다.

서울에 가서 지하철을 타면 나이든 여성들의 머리칼 바디 랭귀지는 확실히 다르다. 거의 대부분이 할머니들이 짧은 머리 숏컷 실버 헤어스타일에 멋진 선글라스를 쓰기도 한다. 농촌에서 유행하는 검게 염색한 파마머리는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심리학자들이 면밀히 연구해 보아야겠지만, 도시 사람들은 개성을 추구하는 능동성이 있고, 농촌에는 개성보다 시류에 따르는 수동적 모방 심리가 작용해서 그러하다고 짐작된다. TV 화면에 자주 나오는 한국의 나이든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검게 염색한 모습으로 나온다. 나이 든 원숙함보다 늙음을 감추면서 아직도 젊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동양사회에는 장유유서라는 ‘시간지향성’이 있어서 한두 살 차이로 선후배를 따지며 사회생활이 지속된다. 그러다가 나이들어 머리가 희게 되면 검게 염색하여 이를 감추려는 모순이 생겨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서양의 원로 정치가들은 머리를 염색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이가 들어도 은빛 머리칼 그대로 살아갈 뿐 검게 염색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문화이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늙는다는 시간에 집착하지 않는 ‘바디 랭귀지’로 볼 수 있다. 나이 차이가 나고 마음이 통하면 ‘friend’가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경우, 정년퇴직 후 먼 지역으로 이동해서 은퇴생활을 즐기는 ‘장소지향성’이 있다.

요즈음 도시 젊은 여성들의 머리 모양을 보면 자신만의 개성을 중시하여 각양각색이다. 그 중에서 특이한 현상은 TV 뉴스 진행이나 교양 프로에 나오는 여성들의 긴 머리 모양이다. 두 갈레 긴 머리 헤어스타일의 방향이 그것이다. 대부분 오른쪽은 앞으로, 왼쪽은 뒤로 넘기는 ‘오앞-왼뒤’형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다. 오른쪽 왼쪽의 전후 방향을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왜 그런 모양이 유행하는지 잘 알 수 없으나 모종의 심리를 표현하는 바디 랭귀지에 기인한다.

긴 머리 ‘오앞-왼뒤’형은 오른 발을 앞으로 내밀고 나아가는 전진 보행 동작처럼 진취적인 의미와 나는 속박되지 않는다는 선언적 암시로 읽혀진다. 속박은 싫다! 내 자유의지로 행동하고 싶으니 그리 알아달라는 선명한 목소리로 들린다. 양쪽을 다 앞으로 내면 얌전한 태도로 보일 수 있고, 뒤로 다 넘기면 원래 뒤에 있는 것이니 그대로 둔다는 중립적인 입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오앞-왼뒤’ 스타일은 얼굴을 왼쪽으로 돌리면 긴 머리를 내미는 모습이 되고, 반대로 하면 긴 머리를 뒤로 넘긴 인상을 줄 수 있는 변화가 가능하다. 야누스처럼 두 얼굴이 되는 가능성 스타일이다.

영국의 데일리 메일은 “북한 여성들에게 선 제니퍼 애니스톤의 흩날리는 머리스타일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다. 북한 사람들은 머리 스타일조차도 당국의 조치에 따라 결정하기 때문이다.”라고 보도한 적이 있었다. 북한에서는 ‘사회주의적 단정한 모발 표준’이라는 중앙당이 공식 승인한 머리 모양 포스터가 미용실 벽에는 걸려 있다. 그 포스터에 제시된 헤어스타일 중에서 한 가지 선택해야 한다는 명령이다. 남성들도 이러한 규제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승려의 삭발이나 수녀의 머리 수건은 신앙서약의 징표이다.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는 사람들은 삭발로 결렬한 함성을 대신한다. 여성들도 거침없이 삭발하여 이런 행동을 한다. 삭발, 바디 랭귀지는 밖으로 강한 항변을 표출하는 동시에 안으로 자신의 의지를 강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삭발도 염색도 말을 대신하는 비언어적 의사소통(non-verbal-communication)이며, 지난한 삶과 시대상을 나타내는 애환의 문화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