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의 넋이 꽃으로 피어난, 김천 방초정
부인의 넋이 꽃으로 피어난, 김천 방초정
  • 장희자 기자
  • 승인 2021.07.30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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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묵객들이 주변의 빼어난 경치를 찬미한 방초정 10경
조선 양반가 여인의 기품이 담겨 있는 최씨담
방초정은 국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장희자 기자

미산에 조각달 우러러보니(仰見眉山月半輪)
항아가 아직 전신을 드러내지 않았구나(姮娥猶不露全身)   
생백을 기다려 중천에 이르면(第當生魄中天到)
만국이 통명하여 티끌도 일지 않으리(萬國通明不起塵)  

<이만영의  방초정 10경 중 미산반륜(眉山半輪)>
 

방초정(芳草亭)은 경북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 83번지에 있는 정자이다. 상원리 원터마을은 연안이씨 집성촌이다. 매봉산(320.9m)을 배경으로 정자 앞쪽으로는 대덕산에서 발원한 감천이 흐른다. 불두산(428.8m)이 그림처럼 솟아있다.

방초정은 방초(芳草) 이정복(1575~1637)이 지은 정자이다. 1625년경에 정자를 처음 세웠다. 이후 1689년 이정복의 손자 이해(李垓)가 한 차례 고쳐 지었다. 원래는 지금의 위치보다 감천(甘川) 가까이 있었다. 1736년 큰 홍수로 떠내려가 없어져 버렸다.

방초정 경내에 배롱나무꽃이 만발하여 정자와 어우러지면서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장희자 기자

1788년 이정복의 5대손 이의조(李宜朝)가 현재의 위치에 새로 지었다. 이의조는 영남 노론 학단을 대표하는 예학자로 가례증해를 발간한 인물이다. 이후 정자는 선조를 추모하고 학문을 강론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이다. 중앙에 온돌방을 두고 사방에 난간을 덧댄 마루를 낸 구조이다마루와 방을 통합하거나 분리하여 쓸 수 있는 가변적 구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1974년 12월 경북 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되었다. 2019년 12월 보물 제2047호로 지정되었다정자는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으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서의 가치가 있다.

정자 앞에는 최씨담(崔氏潭)이라고 부르는 사각형 연못이 있다. 이 연못에는 이정복의 부인 화순 최씨와 몸종 석이의 이야기가 전한다. 17세의 나이로 이정복과 결혼한 최씨는 시댁에 들어가기도 전에 임진왜란을 겪었다. 왜적에게 쫓기던 최씨는 시댁을 찾았다. 연못에 몸을 던졌다. 최씨를 따르던 몸종 석이 역시 뒤를 이어 자결하였다.

최씨담 연못에 있는 2개의 섬이 최씨 부인과 노비 석이의 무덤을 상징한다. 장희자 기자

 

전쟁이 끝난 후 이정복은 부인을 그리워하면서 그녀가 몸을 던진 연못을 정비하였다. 웅덩이를 넓게 파서 만든 연못을 최씨담(崔氏潭)이라고 이름 지었다. 두 개의 섬을 가진 연못은 이른바 '방지원도'이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인공정원의 형태이다.

이곳에 정자를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방초정이라 칭하였다. 방초정의 '방초'는 당나라 시인 최호의 시 등황학루에서 따왔다. 황학루는 악양루, 등왕각과 더불어 중국 강남 3대 누각의 하나다. '방초'는 또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광한루 봄 풍경을 읊는 대목에도 나온다.

연못 주변은 배롱나무꽃과 늙은 버드나무가 조화를 이루어 그림 같은 풍광이다. 장희자 기자

이정복에게 방초는 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부인이 자결할 때가 녹음방초승화시’ 계절로 추정된다. 이백과 최호가 황학루에서 앵무섬을 내려다보며 예형의 죽음을 애도했듯이 이정복도 방초정에서 최씨담을 보며 부인의 죽음을 슬퍼했을 것이다. 그에게 방초는 부인의 넋이자 향기였을 것이다.

방초정들머리에는 정려각이 세워져 있었다. 이정복의 부인에게 인조임금이 1632년(인조 10년)에 내린 어필 정려각이다.

정려각 앞에는충노석이지비라고 쓰인 작은 비석이 자리 잡고 있다. 최 씨 부인과 함께 자결한 몸종 석이의 비석이다. 이 비석은 연안이씨 후손들이 석이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제작했으나 종의 비석을 절부의 정려각 앞에 세울 수 없다며 최씨담에 던져졌다. 1975년 최씨담준설공사 중 발견돼 현재의 자리에 옮겨 놓았다.

방초정 주변에는 배롱나무꽃, 나리꽃, 백합 등 여름꽃들이 어우러져 정취를 더해 주고 있다. 장희자 기자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우측 둑길에 배롱나무꽃 군락이 탐방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방초정에는 배롱나무꽃의 붉은빛이 연못에 비쳐 장관을 이룬다. 수백 년 된 버드나무가 못 안으로 허리를 굽히고 드리워 있다. 주변에는 오랜 세월 연못과 정자 곁을 지켜온 회화나무, 불두화, 사철나무, 백합, 나리꽃 등이 연못에 떠 있는 수초와 어우러져 정취를 더 한다.

방초정에는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누각에 올라 주위의 경치를 찬미한 시와 글씨가 걸려있다. 방초정과 일대의 가경을 노래한 제영시 38편도 있다. 우암 송시열의 9세 손인 송병선의 시가 눈길을 끈다. 이만영의 ‘방초정 10경’이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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