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기자의 photo essay] 개망초 꽃
[방기자의 photo essay] 개망초 꽃
  • 방종현 기자
  • 승인 2021.06.28 10:00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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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이름 개망초

 

소금을 뿌려 놓은듯 군라락을 이룬 개망초  방종현 기자
소금을 뿌려 놓은듯 군락을 이룬 개망초. 방종현 기자

 

망초는 계란을 닮은 꽃으로 꽃말이 화해다. 시골길 산모롱이 돌 때 가녀린 몸에 앙증맞은 자태로 반겨주는 꽃이다. 망초는 밭두렁 따라 피기도 하고 버려진 빈집 마당에도 아기처럼 작고 새하얀 얼굴로 한가득 피어나는 꽃이다. 개망초꽃 향기는 아련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봄이 되면 도심 아파트 화단에도 아스팔트 옆 틈바구니에도 어김없이 돋아나 순한 연둣빛으로 봄소식을 알린다. 이런 귀여운 꽃에다 개망초라니 참으로 짓궂다.

우리나라에 맨 처음 철도를 부설할 때 북아메리카의 침목에 묻어온 꽃이다. 철로를 따라 흰 꽃이 줄줄이 피어나자 일본인들이 시샘해서 이제 조선이 망할 징조라고 주술적 의미를 부여해서 조선이 망조가 들었다고 붙인 이름이 망초다. 이마저도 성에 안 찼는지 접두사 ‘개’를 붙여 개망초가 되었다는 억울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다.

필자가 인제 원통에서 군 복무 중 야간 보초 근무 때 초소 앞 언덕배기에 소금을 뿌려 놓은 듯 하얀 망초 군락을 보며 시름을 달래주었던 꽃이다. 하나하나 외톨로 서 있으면 볼품이 없지만, 군락을 이루고 있으면 마음마저 편안해지는 꽃이다. 일제가 조선인들이 뭉치지 말라고 붙인 이유인지도 모를 일이다.

네분의 시인이 개망초를 노래합니다. 네 분 시인의 詩를 함께 음미하겠습니다.

계란 후라이 요리를 해놓은듯 하다  현산 황영목
계란 후라이 요리를 해놓은듯. 현산 황영목

 

달걀꽃과 할머니

심후섭 (아동문학가. 현 대구 문인협회 회장)

망, 망!

눈빛 맑은 강아지

쫄랑쫄랑

순이를 따라간다.

할머니 묵정밭 가득

피어난 달걀꽃

순이 가슴에 한 아름

강아지 눈 속에도 한 아름

하얗게 노랗게

달걀 속처럼 익혀들고

찾아오신 할머니!

* 심후섭 시인은 물망초(不忘草)니 개망초(慨亡草)니 하는 전설을 미처 듣지 못한 동심의 눈으로 삶은 달걀을 떠올리게 하는 이 꽃을 노래하고 있다. 어린이는 그저 있는 그대로 느끼고 마음을 다듬을 뿐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순이는 할머니가 가꾸던 묵정밭을 가득 덮고 있는 이 외래종 침략자들을 바라보며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다.

앙증맞은 얼굴을 하고있다  방종현 기자
앙증맞은 얼굴에 미소가득. 방종현 기자

 

개망초꽃

장 하 빈(시인, 다락헌시인학교 교장)

자전거 타고 달리다가 철길 건널목에 멈추었습니다

차단기 내려지고 종소리 땡땡땡땡 울려와

꼬리에 꼬리를 문, 검은 물체가 휙 지나갔습니다

훈장처럼 어깨에 꽂혀 나부끼던 개망초꽃

바람에 날리어 검은 바퀴에 깔리고 말았습니다

스무 해를 개망초꽃으로 떠돌았지요

등 뒤로 덤프트럭 언제 덮칠 지도 모르는 길섶에서

나의 페달은 자꾸 헛돌았지요

차단기 굳게 내려진 가슴 속, 종소리 울려 퍼질 때마다

검은 물체에 대한 기억을 벼랑 끝으로 밀쳐냈습니다

실어증 앓던, 개망초 같은 시절이었습니다.

*아뿔싸! 어깨에 훈장처럼 빛나던 '개망초꽃' 냉혹한 현실에 짓뭉개지고 말았군요! 그 트라우마로 인해 시인은 과거 스무 해 동안 심히 방황과 절망을 겪었나 봅니다. 삶의 벼랑끝에서 악몽을 떨쳐내고자하는 시인의 초극 의지가 실로 눈부십니다.

망초 삼형제   방종현 기자
망초 삼형제. 방종현 기자

개망초 봉고

김동원(시인. 2018 대구문학상. 『텃밭시인학교』대표.)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는

여름 방학만 되면,

일곱 살 동생과 함께 나는 들판에 앉아

개망초 봉고차에 엄마 아빠를 태워

개울 건너 바다 건너

외가 가는 놀이를 해요.

후끈후끈 숨 막히는 사십도 비닐하우스 속에서

엄마 아빠는 종일 블루베리를 따요.

매미 소리를 들으며

구름이 만든 솜사탕 먹으며

동생과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먼 나라 베트남 니짱 외가를 그려요.

엄마 아빠가 일 나가면

날마다 동생은 자꾸 개망초 봉고차에

수박 한 통을 싣고 가자고 그래요.

사진 속 웃는 까무잡잡한 외할머니께

갖다 드리자고 그래요.

까만 수박씨는 뱉어 꿈속에 심고

쪼갠 수박은 붉그적 붉그적 마음껏 먹자고 그래요.

이다음 돈 많이 벌면, 엄마는 꼭 외할머니 보러 가자며

밤마다 눈물을 이불 속에 숨겨요.

*김동원 시인의 동시 봉고차는 코시안의 애환을 다룬시로 읽힌다. 2세인 아이들의 눈에 비친 엄마의 서러운 눈물을 아프게 포착하였다. 개망초를 봉고차로 본 시적 상상력은 아주 볼만 하다.

두런 두런 이야기꽃 피어나는 망초  방종현 기자
무리를 이루어 보기좋은 망초. 방종현 기자

 

개망초꽃

이해리(시인. 2020 대구문학상)

모양이나 빛깔이 화려해 보이는 꽃을

아름답다 하는 건 쉬운 일이다

가령, 양귀비나 장미를 아름답다 하는 건

정말로 쉬운 일이다

해 질 녘 외롭게 버려진 공터 아무렇게 피어

자욱한 안개 물결 이루는 개망초꽃을 보면

아름답지 않은 것의 아름다움을 헤아려 주고 싶다

먼지 쌓인 삼거리 점방

가장 안 팔리는 상품 하나를 사 주고 싶다

가장 인기 없는 가수의 노래를 들어주고 싶다

이름 없는 시인의 시를 읽어 주고 싶다

한 포기만 피면 볼품없고 초라한 꽃이지만

무리를 이루면 가슴 두근거리도록 한들거리는

초라함이 눈부신 꽃

사람에게도 그 같은 비밀이 있는 것 같아

금방 보면 알 수 없는 어떤 낯익음의 낯설음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흔들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