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기자의 포토 에세이] 접시꽃이 피었습니다.
[방 기자의 포토 에세이] 접시꽃이 피었습니다.
  • 방종현 기자
  • 승인 2021.06.21 1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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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가 된 꽃

 

접시꽃   방종현 기자
접시꽃 방종현 기자

 

문지기가 된 꽃

유월은 접시꽃의 계절입니다.

접시꽃은 여염집 대문간에도 돌담에도 산기슭, 강기슭에도 도처에 함초 럼 피어 자태를 뽐냅니다.

접시꽃의 꽃말은 풍요. 다산. 애절한 사랑. 집 보기랍니다.

접시꽃에 전해오는 애절한 전설이 있어 소개합니다.

먼 옛날 꽃 나라 황제는 궁궐 뜰에 세상에서 제일 큰 어화 원을 만들어놓고 세상에 있는 꽃은 한 가지도 빠짐없이 모아서 기르고 싶었습니다.

“천하의 모든 꽃은 나의 어화 원으로 모이도록 하라.”

花 황제의 명령이 떨어지자 세상의 모든 꽃은 어화 원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 무렵 서천 서역국 어느 곳에는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세상의 모든 꽃을 모아 심어 가꾸는 꽃 감관이 있었습니다. 꽃은 갖가지 종류가 철 따라 아름답게 피기 때문에 산과 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온 고을이 모두 꽃밭이었습니다. 꽃 감관의 집은 꽃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창 앞에는 모란과 옥 매화를 심고 장독대에는 땅나리와 들국화를 가꾸었습니다. 울 밑에는 봉숭아와 맨드라미를 심고 대문 밖에는 접시꽃을 심었습니다. 꽃은 제철에 맞추어 고운 색깔과 향기를 자랑하며 번갈아 피어났습니다. 꽃 감관은 그 꽃들을 가꾸며 색깔과 모양과 향기가 더 좋아지도록 돌봐 주고 있었습니다.

“황제님께서 천하의 모든 꽃은 어화 원으로 모이라고 말씀하셨대요.”

“우리도 그 어화 원에 가서 살면 안 될까요?”

“감관 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을 텐데. 어떻게 가요?”

서천 서역국 꽃들은 모두 자기들도 황제의 어화 원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꽃 감관의 허락 없이는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꽃 감관은 계명산 신령님을 만나러 가고 없었습니다.

“어화 원에는 내일까지 도착하는 꽃들만 받아 준대요.”

“감관님이 계시지 않으니 우리는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잖아요?”

서천 서역국의 꽃들은 가고 싶었지만 꽃 감관의 허락을 받을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샛노란 금매화가 다른 꽃들의 눈치를 보며 감관님 허락 없이 어화 원으로 가겠다고 입을 여니까 연보라색 용담꽃도, 하얀색 금강초롱도, 진홍빛 개 분란도 어화 원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꽃들은 너도나도 모두 어화 원으로 가겠다고 나섰습니다.

처음에는 망설이던 꽃들도 다른 꽃이 떠나니까 모두 따라서 어화 원으로 향했습니다.

순식간에 꽃으로 가득했던 산과 들이 텅 비었습니다.

꽃들이 떠난 뒤에 계명산 신령님을 만나러 갔던 꽃 감관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꽃들은 모두 가버리고 산과 들은 쓸쓸하게 비어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꽃 감관은 헐레벌떡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꽃들을 불렀습니다.

자기는 꽃들을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 바쳤는데 꽃들은 몰래 자기 곁을 떠났다는 사실에 큰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다리를 뻗치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하늘 저편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이 온통 꽃봉오리만 같습니다.

"아! 모두 나만 두고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때였습니다. 어디에선가 작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였습니다.

“감관 님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저는 여기 있습니다.”

대문 밖에서였습니다. 벌떡 일어났습니다. 대문 밖으로 나갔습니다. 울타리 밑에서 접시꽃이 방긋이 웃으며 곶감 관을 쳐다보았습니다.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야! 너였구나. 너 혼자니? 다른 꽃들은 모두 어디 갔니?”

“모두 감관님이 안 계시니까 제멋대로 화 황님의 어화 원으로 갔습니다.”

“내 허락도 없이 가다니. 괘씸하구나. 그런데 너는 왜 떠나지 않았니?”

“저는 여기에서 감관 님의 집을 지켜야지요. 저마저 떠나면 집은 누가 봅니까?”

“고맙구나. 내가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꽃은 너였구나.”

꽃 감관은 혼자 남아서 집을 지켜 준 접시꽃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너에게 관심이 적었는데 너만 내 곁을 떠나지 않았구나.”

꽃 감관은 그때부터 접시꽃을 대문을 지키는 꽃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감관 님! 저는 언제까지나 여기 있겠습니다.”

그래서 접시꽃은 지금까지도 시골집 대문 앞에 많이 심게 되었습니다.

문지기가 된 꽃   사진 현산 황영목
문지기가 된 꽃 사진 현산 황영목

 

그 후 어화 원으로 갔던 다른 꽃들은 다시 불러와서 서천 서역국에서 쫓아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 여러 꽃이 고루 퍼져 사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합니다.

많은 시인은 접시꽃을 노래합니다.

대구 사는 세 분 시인이 노래한 접시꽃을 소개합니다.

무리지어 핀 접시꽃 사진 현산 황영목
무리지어 핀 접시꽃 사진 현산 황영목

 

접시꽃 피어 있는 곳

박방희(시인. 전 대구 문인협회 회장)

어디 계세요? 내 소녀가 물었다

접시꽃 피어 있는 곳에, 라고 내가 말했다

약속장소에는 한 가득 접시꽃들이

우리보다 먼저와 피어 있었다

어두워가는 하늘 아래에서

소녀를 기다리는 동안

접시꽃들이 분주히 접시를 내놓았다

맛과 빛깔과 향기 속에

옛 기억 한 접시도 담아낸다

어느 땐가 장미꽃 피는 유월

나비 같은 소녀가 마당을 건너와

탁자 위에 접시를 내려놓았다

방울토마토가 방울을 울렸다

그 방울소리 듣고 있는데,

어디 계세요? 한 번 더 울리는 소리

언뜻, 깨어 뒤돌아보니

방울토마토 소리를 굴리며

어른이 된 그 소녀

20년을 건너 내 앞으로 왔다.

들에도  무리지어  피어나는 접시꽃 사징 현산 황영목
들에도 무리지어 피어나는 접시꽃 사진 현산 황영목

 

접시꽃

박숙이(시인. 2019 대구문학상 詩 수상)

신천을 걷던 한 남자가

접시꽃을 사랑스럽게 바라봅니다

키가 크고 살색또한 고운

음전한 성품의 접시꽃에게

그 남자는 하모니카도 멋지게 불어주고 싶나봅니다

눈을 맞추고 사진을 찍어주고

첫사랑 만난 것 처럼 설레이더니

참 싱그럽습니다.

그 남자의 속사포 같은 이 유월이

마주보고 피어난 접시꽃  사진 현산 황영목
나란이 피어난 접시꽃 사진 현산 황영목

 

모닝콜

이선영(시인. 대구아동문학회장)

좋은 아침

나의 친구야

고향의 접시꽃은

지금이 한창 이라네

몰래 드는 사랑이

그리움을 키운다는

울타리밖 환한 소식에

진분홍 꽃잎 속

황홀한 편견 너머로

마구 쏘아 올린

금빛 화살 주으며

어깨 걸고 부르던

우리 노래는

침잠의 해구에서

다시 피는 꽃이기를

좋은 아침

접시 꽃 같이 환한

유월 모닝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