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와 비경, 고창 선운사
문화재와 비경, 고창 선운사
  • 장희자 기자
  • 승인 2021.06.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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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도솔암 마애불 등 보물 6점, 동백나무숲 등 천연기념물 3점
천마봉 전경. 장희자 기자

 

달빛에 마음을 내다 널고
쪼그려 앉아
마음에다 하나씩
이름을 짓는다
도둑이야!
서로 화들짝 놀라 도망간다.
마음 달아난 몸
환한 달빛에 씻는다
이제 가난하게 살 수 있겠다.

( 월광욕,    이문재)

 

선운사(禪雲寺)는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158-6번지에 있다. 선운산(336m) 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 제24교구 본사이다. 선운산은 도솔산이라고도 불리는데 선운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다. 도솔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이다.

선운사는 577년(백제 위덕왕 24년) 백제의 고승 검단(檢旦 또는 黔丹)이 창건했다는 설과 신라 진흥왕이 의운국사(義雲國師)에게 명하여 창건했다는 설이 함께 전해지고 있다. 당시 이 근처에는 도적이 들끓었는데 검단선사가 도적들을 교화하여 소금 굽는 일을 시켰다고 한다.

만세루에서 구황봉, 인경봉, 노적봉 능선이 나래를 편다. 장희자 기자

폐사되어 석탑 1기만 남았으나 고려 공민왕 3년(1354년)에 효정선사가 중수하였다. 조선 성종 3년(1472년)부터 10여년 동안 극유라는 승려가 성종의 숙부 덕원군의 후원을 받아 대대적으로 중창하였다. 그러나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으로 본당을 제외하고 모두 불타버렸다.

광해군 5년(1613년)에 재건을 시작하여 3년에 걸쳐 대웅전, 만세루, 영산전, 명부전 등을 건립하였다. 선운사 사적에는 17세기부터 19세기 초에 이르기까지의 건물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시기의 선운사의 역사를 아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 영산전, 관음전, 팔상전, 명부전, 만세루, 산신각, 천왕문, 대방(大房), 요사(寮舍) 등의 건물이 있다. 이 가운데 대웅전은 정면 5칸의 맞배기와집으로 조선 중기 이후의 양식을 간직하고 있으며, 보물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만세루는 보물 제2065호로 지정되어 있다.

선운사앞 도솔천. 장희자 기자

주요 문화재로는 보물 제279호인 선운사 금동보살좌상, 보물 제280호인 선운사 지장보살좌상 등 보물 6점이 있다.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제184호), 장사송(천연기념물 제354호), 송악(천연기념물 제367호) 등 천연기념물 3점이 있다. 추사가 쓴 백파율사비(전북 유형문화재 제122호)를 비롯한 19점의 유형문화재가 있다.

도솔암 내원궁(전북 문화재자료 제125호)은 기암절벽 위에 조성된 우리나라 3대 지장기도처 가운데 하나로 연중 기도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다. 동학혁명 때 배꼽에서 비결을 꺼내갔다는 도솔암 마애불이 발 아래 있다. 위로는 검단선사에게 쫓겨 달아나던 용이 뚫었다는 용문굴이 입을 벌리고 있다.

19세기 전반기까지는 이 절에 속한 산내(山內)의 암자가 무려 50여 곳이나 있었다. 지금은 동운암, 석상암, 참당암, 도솔암 등 4개의 암자만이 남아 있다. 참당암(懺堂庵) 대웅전은 보물 제803호로 지정되어 있다.

도솔암 서편의 거대한 암벽(천인암)에 마애여래좌상. 장희자 기자

도솔암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은 보물 제1200호로 높이 13m, 너비 3m이다. 배꼽 부분에 네모난 감실이 있다. 여기에 불경 등을 넣지만 전설에 따르면 선운사 마애불에는 검단선사의 비결(秘訣)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전라감사 이서구가 꺼내보다가 벼락이 쳐서 다시 봉인하였다고 한다. 그후 동학농민운동 때 동학 접주 손화중이 비결을 꺼내갔다고 한다. 후세에 그 비결이 바로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경세유표라는 전설이 있다.

절 주변에는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 검단선사에게 쫓긴 이무기가 당황하여 바위를 뚫고 나갔다는 용문굴(龍門窟), 조망이 뛰어난 만월대(滿月臺)가 있다. 절 입구에 있는 부도와 탑비 중에는 김정희(金正喜)가 쓴 백파대사 사적비와 채제공(蔡濟恭)이 쓴 설파대사 사적비가 있다.

대웅전 뒤편으로 마애불이 세겨져 있는 거대한 암봉이 보인다. 장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