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적천사 압각수
다시 찾은 적천사 압각수
  • 김정호 기자
  • 승인 2021.05.31 1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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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년을 지켜온 노거수 - 천연기념물 403호
적천사 은행나무. 김정호 기자
적천사 은행나무. 김정호 기자

적천사를 찾아나선다. 압각수라고 불리는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신장처럼 버티고 서있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청도 땅 화악산 기슭 한쪽에 자리 잡은 적천사磧川寺 넓은 마당 입구에 두 그루의 나무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적천사 각 전각의 부처님과 보살들을 옹호하는 신장인 사천왕상이 있는데도 그 앞에 압각수 두 그루가 늠름한 자태로 지키고 서서 불보살들을 수호하고 있다.

동쪽 은행나무. 김정호 기자

5월 말 제법 무더워진 날씨에 아내와 부처님을 참배하러 오는 길이다.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수령樹齡 800년이란다. 높이가 28m이고 둘레가 11m라고 한다. 두 그루 모두 암나무로서 열매가 달리는 가지는 동서로 29m 남북으로 31m나 된다.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오랜 세월의 무게만큼 당당한 모습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고려 명종 5년, 즉 1175년에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이 사찰을 중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오랜 된 사찰에는 으레 믿거나 말거나 한 전설이 뒤따른다. 전설에 의하면 중건 당시 보조국사께서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자라난 것이라고 한다.

서쪽 은행나무. 김정호 기자
서쪽 은행나무. 김정호 기자

부처님 생각은 잊어버리고 은행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기쁨과 환희보다는 서러움과 슬프고 아픈 역사를 더 많이 가지고 살아온 민족이다. 800년 그 긴 세월 동안 용케도 잘 견디어 내면서 중생들의 온갖 풍상을 보았고 풍문으로 들었을 것이다. 고려 중엽이면 거란족과 원元 나라를 세운 몽골족이 무지막지하게 쳐들어와 백성들을 도륙 내던 시기였을 것이다. 백성의 삼분의 일이 살상되었다는 기나긴 전쟁이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조선 중엽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두 번에 걸친 왜구의 침입으로 얼마나 많은 백성이 살상되고 볼모로 잡혀갔던가. 그뿐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동족상잔의 비극을 불러온 6 ‧ 25 전쟁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백성들이 희생되었다. 이외에도 일일이 다 헤아릴 수 없는 크고 작은 수많은 전란과 내란으로 백성들이 죽어갔고 큰 상처를 입혔다.

화악산 적천사 현판. 김정호 기자
화악산 적천사 현판. 김정호 기자

대웅전 뜰 앞으로 소복을 입은 부녀자들의 그림자가 설핏 비치는 듯하다. 끼니를 잇기도 힘든 전쟁 통에 하늘같은 지아비를 떠나보내고, 생때같은 자식 죽이고 남은 한이 그 얼마나 컸겠는가. 자식들 입에 먹일 것이 없어 동분서주하던 어려운 시절이었다. 보리쌀 한 되 정성껏 머리에 이고 부처님께 공양 올리며 먼저 저승으로 간 가족의 명복이라도 빌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프고 쓰린 가슴을 토할 길이 없어 부처님께라도 하소연하여야만 했으리라. 그래야만 살아남은 사람의 한이 풀리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지아비를 전쟁에 보내놓고 밤새 등불 밑에 정화수 한 그릇 떠놓고 치성으로 날밤을 새우다가 전해지는 지아비와 아들의 전사 소식에 미치도록 서러운 삶을 부처님 전에 일일이 고하며 무릎에 피멍이 맺히도록 절하며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달빛도 교교한 야심한 밤에 행여나 효험이 있으려나 싶어 고목이 된 은행나무 앞에 촛불 켜놓고 통곡으로 치성을 드리던 우리 엄마와 할머니이시다. 밤을 지새우고 새벽 동녘 하늘이 밝아올 때까지 얼마나 빌고 빌었을까. 두 손이 닳도록 빌고 빌어도 가슴에 맺힌 한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남은 세월을 어떻게 살라고 통곡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발길이 천근만근이었으리라.

적천사 대웅전. 김정호 기자
적천사 대웅전. 김정호 기자

수백 년을 한자리에서 지켜온 은행나무다. 그토록 많은 백성의 아픔을 보고 듣고도 어찌할 수 없는 은행나무마저도 제 속을 까맣게 태웠으리라. 허나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묵언 수행으로 지켜보아야 했던 그 숱한 세월을 어찌 감당하였을까. 그렇게 지내온 세월이 장장 800년이다. 작은 상처들이 모이면 큰 상처가 되고 큰 상처는 도져 끝내는 속을 상하게 하였다. 제 속을 까맣게 태우며 필부필녀匹夫匹女들의 애환을 듣고 삭혀온 세월 앞에서 이제는 고목이 되어 속을 온통 비워버렸다.

적천사 대웅전 삼존불. 김정호 기자
적천사 대웅전 삼존불. 김정호 기자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던지 자치정부에서 천연기념물 402호 보호수로 지정하고 관계 당국에서 시멘트로 속을 단단히 채워놓았다. 아무리 여문 장인의 솜씨로 속을 채워 넣어 외형적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쓰리고 아픈 속을 어찌 다 메울 수 있겠는가. 부처님께 간절한 원으로 기도를 드리고 그도 부족하다 싶어 은행나무 고목 밑에서 비손하는 중생들의 아픔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부처님 나라 불국정토는 언제쯤 우리 앞에 펼쳐지려는지 아득한 세월 앞에 옷깃만 여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