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살 때 5남매 어머니 역할을 맡은 맏딸 이혜경 씨
15살 때 5남매 어머니 역할을 맡은 맏딸 이혜경 씨
  • 유무근 기자
  • 승인 2021.03.31 20: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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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숭고한 염원 담긴 대추밭 지켜
동생들 뒷바라지로 결혼도 미루어

 

아버지와 함께 일궈 낸 대추농장에서 밝게 웃고있는 이혜경 대표.  유무근 기자

'여자는 연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꿈 많은 십 대 소녀가 졸지에 어머니를 잃고 어린 5남매 어머니 역할을 대신하였다. 결혼까지 미루고 동생들 뒷바라지에 '민들레'라는 별칭이 붙은 여장부 이혜경 씨가 있다.

아들 또래와 같은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여 2016년 57세의 늦은 나이로 경북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한 만학도이다. 가업인 경산 대추농장을 잇는 그녀가 살아 온 이야기를 들어 본다.

코흘리개 막냇동생이 5살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 큰딸 15살, 남동생 2명 여동생 2명 등 5남매와 아버지는 대단한 충격이었다.

아버지 나이 43세때 일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달 되지 않아 아버지께서 저를 불러 말씀하셨다. 새어머니 되실 분은 순교자 집안으로 믿음이 돈독한 분이라며 재혼을 하셔야 겠다고. 어린 동생들과 과수원 일손 부족이 다급한 상황이라 새어머니를 맞이하게 된다. 좋으신 분으로 우리 가족은 행복했다. 당시 경산시 압량면에는 성당이 없어서 새어머니와 경산 시내까지 걸어 다니며 굳건한 신심으로 가정의 난관들을 헤쳐 나갔다. 맏딸이라 그때는 투정도 많이 부렸지만, 나이가 들어보니 그때 우리들에게 베푼 사랑이 참 크다고 느꼈다.

- 학원 운영의 열정으로 선진 교육을 배우다.

일본에서 사업에 크게 성공하신 외삼촌이 계셨다. 외삼촌의 경영 비전에 매료되어 겁없는 20대 나이에 유치원 학원 운영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경북대학교 북문 부근에 1호, 중고등학교가 많은 수성구에 2호 학원을 확장하였다. 수강생 인원이 늘어나고 강사 선생님도 증원되었다. 수익금 절반 이상은 아버지가 구입하신 사과밭 대출금 변제에 충당하였다. 

아버지는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시고 외가분 인척도 일본에 살고 계셨다. 우리나라 교육보다 20년 앞선다는 일본 학원계를 선진교육 연수 겸 아버지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자 자주 왕래했다. 지리적 환경도 있지만, 한겨울에 핫팬츠 차림으로 스파르타식 하는 정신교육과 한편으로는 온화한 교육을 하는 선생님들의 커리큘럼이 그녀를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다.

선진 문물을 접하고 보니 지금까지 내가 하고 있는 교육방식이 구조적, 정서적으로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학원을 하나 더 확장할 경제적 여건은 되었지만 얇은 선지식을 가지고 재탕, 삼탕 하다 보니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여 교단에 서기가 민망하였다.

학원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소위 일류급 강사 스카우트 면접에서 엄청난 강사료 요구에   학원 사업을 내려놓는 계기가 되었다. 학원 수입 대부분을 강사료로 지급하고 나면 운영이 어렵다는 결론을 얻었다. 학부모들의 간곡한 만류를 뒤로하고 학원을 정리한 후 일본으로 거처를 옮겼다. 20년 앞선 일본 선진교육을 배우기 위해서.

- 그토록 믿고 따랐던 새 어머니의 변심.

지병으로 고생하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 소식에 3년 만에 귀국했다. 귀국해 보니 새 어머니는 병든 아버지를 두고 짐을 챙겨 나간지 몇 달 이 지났다고 한다. 과수 농사는 아버지가 건강을 잃은 후 줄곧 소작농에게 맡겨 경작해 오고 있었다.

막내가 5살 때부터 20살이 넘도록 키운 기른 정 16년 따위는 새엄마의 탐욕 앞에서 다섯 남매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가 일궈 놓은 과수원을 압류해서 경매에 이르렀다. 우리 남매의 유일한 삶의 터전인 것을 알면서도 보상금을 법으로 요구한 것이다. 우리 다섯 남매는 새 어머니의 기른 정을 가슴 깊이 새겨 보답한 기회만 보고 있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은 허탈감에 망연자실했다.  다섯 남매를 키우면서 희생한 숭고한 마음을 생각하며 진심이 아니길 바랐지만, 그녀의 마음은 잘난 일회성 현금 쪽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경산시 일대 압량면은 토질과 일조량이 좋아 대추 농장이 많다. 경산 대추농장 입구  유무근 기자

- 아버지의 분신 2,500평 과수원

가진 사람에게는 작은 땅이겠지만 이 땅은 아버지의 선견지명으로 어렵게 매입하여 후대에 물려줄 우리가족의 에덴동산이기도 했다. 압량지역은 토지가 비옥하고 일조량이 많아 대추나무 재배가 잘 되는 지역이다. 사과나무를 대추나무로 바꾸면서 언덕배기 간이 쉼터에서 쉬면서 손주들뿐만 아니라 자자손손이 맘껏 웃을 수 있는 공간을 꿈꾸었다. 동편 200평은 손녀 미술실, 저기 200평은 큰딸 연구실 짓고, 아래쪽 공터는 아이들 운동장으로 만들자고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 하느님은 자비하시도다.

과수원의 압류에 갑자기 큰돈을 구할 방도가 없어서 눈앞이 캄캄했다. 더구나 어린 나이로 돈 거래는 더더욱 해본 적이 없어 눈앞이 캄캄했다. 할 수있는 일은 이른 새벽 개를 앞세워 대추나무 과수원에서 하느님께 통성기도를 목청껏 올리는 것 뿐이었다.

“하느님 아버지, 우리 아버지 땅 지킬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매일 틈만 나면 성당에서, 과수원 귀퉁이에서, 목놓아 울면서 통성기도를 하였다. 절체 절명의 순간에 하느님께서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지금의 남편이 나타나 땅도 지키게 되고 사랑도 얻었다.

결혼은 동생들 뒷바라지가 남아 있어 한사코 거절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막다른 길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3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결혼을 결심했다. 부모님 영전에 큰 딸로서 부족하지만 소임을 다했다는 마음으로 스스로 위안을 했다. 남편은 부모님께 못다한 부분은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면서 서로 도우면 될 것이라며 나를 달랬다. 주님께서 나에게 든든하고 포용심 넓은 후원자인 남편을 점지해주셨다고 믿었다.

- 여성으로 농장을 경영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우리 사회는 아직 남성 위주로 되어 있다 보니 형평성에 맞지 않는 일이 있을 때는 목소리가 커지고 악녀가 되기도 했다. 때로는 지켜보고 있는 상대의 양심을 성찰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그래도 안되니 소리가 높아지더라고 했다. 절규라고 할까? 사람이 최소한의 도리와 예의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을 보면 안타까웠다.

농장을 운영하는 나름대로 철학은 친환경 영농법을 사용한다. 주변 사람들은 해충(害蟲)이 자기 농장으로 날아오니 민폐라고도 생각한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충을 죽여야만 열매가 성장한다는 생각이다. 처음에는 기초부터 설명했지만 이해를 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저 “미안합니다.”라는 말만 계속하다 보니 오히려 익숙해졌다.

- 삶의 좌우명과 생활신조는

"자식들도 모두 성장해서 자립했습니다. 주부로 아이들과 묻혀 살다 보니 사회 활동을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다만 시간 나는대로 성당에서 가정위원을 하면서 결혼 생활 자문도 하고, 어머니회에서 아이들 캠프도 참여하고, 수녀님과 함께 시설에 요리봉사도 하고 있습니다. 그 때마다 봉사하러 온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봉사 받고 힐링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년생을 키우다 보니 너무 힘들게 살았어요. 3살 때, 5월 즈음 일인데 유치원에 보내놓고 대추나무 순을 따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요, 유치원 차에서 내려서 개한테 손을 물렸대요. 여기서 당장 갈 수도 없고, 그때 참 속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정신없이 살았구나! 그래서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지금 젊은 엄마들은 아이들을 너무 화초처럼 키웁니다. 연장자로서 다소 이견(異見)도 있어요. 주체성을 가지고 자립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눈물을 감추며 강하게 키웠던 것 같습니다. 다 키워 놓고 보니 자립성이 또래 보다 앞선다는 느낌이 와닿았습니다.”

그의 좌우명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 새 어머니가 나가신 후에 각인되었다. 또 ‘우리’라는 말을 좋아한다. ‘우리 함께’를 생활 신조로 삼고 있다.

신품종 식재 준비를 하는 경산 대추농장 일부 전경.  유무근 기자

- 앞으로 계획은 동기생과 신 품종 컨소시엄 결성 

소작농 임대 기간이 끝나고 방치하여 묵혀 놓은 농장에 무성했던 잡초가 퇴비가 되기를 반복하여 해마다 굵은 대추가 풍성하게 열린다. 재래종 일부 고목은 지형에 맞는 신품종으로 교체하고 품질 향상과 대량 생산에 주력할 예정이다.

그녀의 젊은 농대 동기생 여러명은  신품종 연구에 전념하여 석박사 과정을 이수하고 학위를 취득 했다. 영농 아이템이 있는 동기들과 대추밭 한편에 유망 신품종 시범단지를 조성하고 연구동을 건립할 예정이다. 6차 산업에 먼저 진입한 동기들과 일조량이 많아 우량품으로 인정받는 ‘경산 대추농장’과 컨소시엄을 결성하여 6차 사업에 동참할 계획이다.

다섯 남내의 맏딸로, 가정주부로서 바쁘게 사는 동안 동생들도 반듯하게 성장해서 고맙고, 무엇보다도 묵묵히 응원 해주고 보듬어 주는 남편과 믿고 따라주는 자녀가 있기에 그는 지치지 않는다. 누가 인생은 60대부터라 했던가? 맞는 말이다. 밟으면 밟을수록 더 강인해진다는 '민들레'라는 별명처럼 비상(飛上)하는 여장부 이혜경의 앞 길은 개척자의 길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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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선 2021-04-06 01:16:54
닮고싶습니다 감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