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의 섬, 세부(CEBU)에 빠지다 ⑧
천연의 섬, 세부(CEBU)에 빠지다 ⑧
  • 임승백 기자
  • 승인 2020.12.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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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은 아름다움의 파라다이스 비치
평온한 안식처(A Haven Of Tranquility)로 불리는 해변
야자수 파라솔 아래의 노부부 모습. 임승백 기자
야자수 파라솔 아래의 노부부 모습. 임승백 기자

새벽 바다가 분주하다. 고기를 잡으러 나갔던 배가 돌아왔다. 배 난간과 돛대에 걸려 있는 옷가지들이 고되었던 생활을 알려준다. 예닐곱 명의 어부의 초췌한 모습은 바라보는 이들마저 안쓰럽게 한다. 잡은 고기를 모두 팔고 나서야 앳된 어부들의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여행 다큐멘터리에서나 봄 직한 광경이다.

초췌한 모습의 앳띤 어부들이 분주하고 움직이고 있다. 임승백 기자
초췌한 모습의 앳된 어부들. 임승백 기자
마을 어귀에 마련된 간이 공판장 모습. 임승백 기자
마을 어귀에 마련된 간이 공판장 풍경. 임승백 기자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구멍가게(Sari Sari Store) 주인이 소개해 준 트라이시클(Tricycle)에 올라 파라다이스 비치(Paradise Beach 또는 Sandira Beach. 섬의 서남쪽 해변)로 향한다. 비포장도로는 우리의 몸을 공기놀이하듯 가지고 논다. 이십 여분을 달려 도착한 매표소에는 이미 여행객으로 붐빈다.

파라다이스 비치 매표소 전경. 임승백 기자
파라다이스 비치 매표소 전경. 임승백 기자

파라다이스 비치는 필리핀 방송에서 '평온한 안식처(A Haven of Tranquility)'로 소개된 숨은 관광지이다. 해변은 첫날밤 신부처럼 야자수 숲으로 꽁꽁 감싸고 있다. 한참 만에 풀어진 옷고름 사이로 드러난 해변은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장면으로 다가온다. 백설탕 같은 고운 모래와 에메랄드빛 바다는 멋들어지게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야자수 잎으로 만들어진 어설픈 파라솔은 오히려 운치를 더해준다.

여행객이 즐겨 찾는 해변 인근의 포토 존(Photo Zone). 임승백 기자
해변 인근의 포토존(Photo Zone). 임승백 기자

관광객을 태운 배가 해변 가까이 다가오더니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바라본다. 우리가 구경꾼인지 그들이 구경꾼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파라솔 아래 앉아 있는 노부부가 부럽고 바다에 뛰어든 청춘이 얄밉다. '파라다이스'라는 해변 이름이 멋들어지다. 그냥 그곳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딴 세상의 나를 느끼게 한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신선놀음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해가 기운다. 숙소에 들렀다가 바로 나가는 우리를 보고 지배인 도니(Dony)가 행선지를 묻는다. 석양을 보기 위해 코타 파크(Kota Park. 섬의 북쪽 관광지)로 간다고 하자 도니는 지저분하다며 가까운 코타 비치(Kota Beach, 섬의 동남쪽 해변)를 추천한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코타 비치는 우리가 매일 가던 곳인데”라며 의아해하는 우리에게 코타 비치의 석양 사진을 보여주며 멋진 석양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고즈넉한 바(Bar)에 앉아 지는 해를 기다린다. 색들의 향연이 시작이다. 붉은색을 시작으로 온갖 색의 파노라마(Panorama)가 펼쳐진다. 그려낼 수 없는 신들의 색이다. 귓가에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의 교향곡 4번 G 장조 '천상에서의 생활'이 잔잔히 울려 퍼진다. 지는 해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미처 알지 못했다. 넘어가는 석양 뒤로 또 다른 별빛 세상이 밝혀진다. 별들이 총총하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별들이 하늘 가득 수를 놓는다. 반타얀의 마지막 밤이 아쉬워 술잔만 비워간다.

'해가 진다고 슬퍼하여 눈물을 머금다가 눈물에 가려 아름다운 별빛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마라'는 어느 시인의 이야기가 새삼 다가온다.

코타 비치(Kota Beach) 석양. 임승백 기자
코타 비치(Kota Beach)의 석양. 임승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