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1년] 고맙다 코로나-코로나로 바람 나다!
[코로나19 1년] 고맙다 코로나-코로나로 바람 나다!
  • 우남희
  • 승인 2020.11.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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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떠나다

습관이 반복되면 일상이 된다. 코로나19라는 팬데믹으로 마스크 착용이 일상이 되었다. 날이 갈수록 확진자가 늘어나고 대구가 고립되기에 이르렀다. 마스크를 구입하려고 늘어선 행렬을 보면 불안은 더욱 커졌다. 사람과의 만남을 꺼리고, 만난다 하더라도 ‘혹시나 걸린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눈만 뜨면 근무지로 출근했는데 형체도 없는 이 불청객으로 기약 없이 휴무상태에 들어갔다. 집에 있는 날이 많아지면서 기분은 물 젖은 솜마냥 축 처졌고 우울증세까지 나타났다.

새해가 되면 버킷리스트를 작성한다. 그 중에 하나가 혼행, 즉 혼자만의 여행이다. 몇 해 전부터 혼행을 꿈꾸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것은 용기가 부족해서였다. 고부간의 갈등으로 시금치의 ‘시’자도 듣기 싫다고 하듯, 일상을 얼음·땡의 얼음으로 만든 코로나이기에 ‘코’자도 듣기 싫지만 그것 덕분에 버킷리스트를 실천할 기회가 찾아왔으니 새옹지마라고 해야겠지.

외출을 삼가라,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라, 타 지역으로 가는 것을 자제하라고 연일 안내문자가 날아오지만 우울증에서 벗어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집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목적지는 전라도 장성에 위치한 필암서원과 정읍에 있는 무성서원이다. 지난해 대구 도동서원을 비롯해 9개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다른 서원은 다녀왔지만 두 서원은 아직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이 여행이지 실은 답사다. 유람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과 현장에 가서 보고 조사하는 답사는 엄격히 다르지만 애써 구별하고 싶지 않다. 일탈을 통해 힐링이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니까.

서원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매스컴에서 대구경북이 코로나19의 근원지인 양 떠들어 예방차원에서 대구경북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할까 하는 염려에서다. 허나 기우에 불과했다. 텅 빈 주차장이 말하듯 방문객은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었다. 나로서는 잘 된 일이다. 강태공이 세월을 낚듯 천천히 절간처럼 조용한 서원을 둘러볼 수 있으니 말이다. 돌다리를 건너 홍살문을 지난다. 형체, 색깔, 냄새도 없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내 몸에 붙었다 한들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세운 홍살문을 통과할 수 없을 것이다.

필암서원 전경. 우남희기자
필암서원 전경. 우남희기자

발길을 돌려 무성서원으로 향했다. 이곳에도 필암서원과 마찬가지로 홍살문이 있다. 홍살문에 담긴 의미를 믿고 싶었다. 마음 놓고 서원 안으로 들어가도 탈이 없을 것이다. 역시나 인적이 없다. 혼자서 마음껏 보고, 느끼고, 힐링하라는 배려 아닌 배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무성서원과 그리 멀지 않는 곳에 학창시절 다녀온 익산 미륵사지가 있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하듯 미륵사지를 향해 핸들을 돌렸다. 가는 그 길목에서 소야선생을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꿩 먹고 알 먹고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걱정했던 첫 여행은 대만족으로 성공적이었다.

소야 신천희 시인의 문학관. 우남희기자
소야 신천희 시인의 문학관. 우남희 기자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음 행선지를 정했다. 청도를 경유해 해인사에서 숙박하는 일정이다.

청도가 어떤 곳인가. 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대남병원이 있는 곳으로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그야말로 기피대상지역이 아니던가. 굳이 어수선한 시국에 거길 가야 하느냐고 탓할지 모르겠지만 못 갈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간다고 자랑삼아 떠벌릴 필요도 없었다. 서원으로 답사 갈 때처럼 간식과 음료수를 챙겨 차에서 해결하니 현지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청도로 정한 것은 오래 전부터 입소문을 통해 들은 내시마을을 가기 위해서였다. 위치 파악을 위해 검색하니 검색할 수 없었다. 유명하다고 생각했던 곳의 정보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이상했다. 어찌할 수 없어 청도투어를 담당하는 여행사대표에게 물으니 운림고택이란다. 운림고택보다는 내시마을이라고 하면 관광객들에게 더 어필되지 않겠느냐고 하니 후손들이 꺼린다는 등등 그만한 까닭이 있단다. 내친 김에 전형적인 양반집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운강고택과 6.25전쟁 때 이승만대통령이 하룻밤 묵었다는 만화정을 둘러보라고 소개해 주었다. 시골임에도 불구하고 가는 곳마다 주민들을 만나지 못했다. 다행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씁쓸한 마음 또한 없지 않았다.

내시마을이라고 하는 청도 운림고택. 우남희기자
내시마을이라고 하는 청도 운림고택. 우남희기자

혼행 온 사람을 보거나 혼행 간다고 하면 청승맞게 ‘왜 혼자야?’ 했었는데 막상 다녀보니 알겠다. 빨리 가자고 보채는 사람 없어 좋고 행선지를 추가하더라도 이의 제기할 사람이 없으니 느긋하게 둘러보고 생각할 수 있어 좋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생각했던 것보다 청도에서 머문 시간이 길었다. 해거름이 되어서야 핸들을 돌려 해인사로 향했다. 사찰에서 숙박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인연의 끈을 따라가니 해인사가 있었고 룰에 얽매이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 휴식형 템플스테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과 노트북뿐만 아니라 간식과 일회용 커피까지, 넉넉하게 챙겼는데 세속의 상황을 도외시할 수 없었다. 아쉽게도 하룻밤을 유(遊)하고 산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로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하더니 코로나 19로 혼행의 묘미에 푹 빠졌다. 살면서 춤바람 난 적은 없어도 혼바람난 적은 있다. 거기에 늦바람으로 혼행바람이 추가되었다.

바이러스가 소멸되어야 해설사의 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데 그날이 언제일지 요원하다. 며칠 집에 있으니 내 안에서 또 바람이 살랑살랑 분다. 다음 목적지로 정해둔 그곳으로 갈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