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친구, 이제는 잊고 싶다
이 친구, 이제는 잊고 싶다
  • 강지윤 기자
  • 승인 2020.09.21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때로 기억의 갈피 어딘가에 숨어 있다 떠 오르는 이름이나 얼굴이 있다. 퍼즐 조각처럼 간직해온 기억의 조각들은 지층이 되어 묻혀졌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만이 가 닿을 수 있는 강의 끝자락이 있다. 그곳에 가 닿아야 비로소 바다를 알 수 있고 바다가 될 것이다.

 

강의 끝자락에 가 닿아야 비로소 바다를 알고 바다가 될 것이다.  강지윤 기자.
강의 끝자락에 가 닿아야 비로소 바다를 알고 바다가 될 것이다. 강지윤 기자

여름에 들어서면서 긴 장맛비에 태풍이 지나가며 물폭탄을 터트리듯 헤집어 놓은 상처들이 미처 다 아물기도 전에 어느새 불쑥 가을 속으로 들어왔다.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공기 속 습기가 줄어들고 살갗에 닿는 바람결이 삽상하다. 길섶에서는 풀벌레들이 은박지로 만든 종을 흔들 듯 가늘고 긴 소리로 운다.

모든 일은 그렇게 불쑥 예고도 없이 일어난다. 어느날 갑자기 외출할 때 마스크 쓰는 일이 옷을 입는 일과 같아졌고, 우리는 집에 가두어졌고, 영화도 연극도 볼 수 없으며 악수도 외출도 마음대로 못한다. 왜 이렇게 징조도 없이 모든게 하루 아침에 변하고 만 것일까. 그렇다. 모든 것은 그렇게 문득 변하는 것이다.

무상(無常). 만고의 진리를 내가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또한 인연이 닿아 있는 동안 가족이나 연인 친구의 이름으로 함께 하다 문득 헤어지고 빈자리를 아쉬워하며 그리워하고 마음 아파도 한다. 그러니 매 순간을 마지막이듯 함께 하라는 옛 사람의 말은 진리인 것이다. 내가 그 사실을 잊고 있었을 뿐...

때로 기억의 갈피 어딘가에 숨어 있다 떠오르는 이름이나 얼굴이 있다. 중학교 입학식후 반 배정이 끝났다. 낯선 교복에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는 부담감으로, 아는 얼굴 하나 없는 교실에서 한껏 긴장되어 있는데, 내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뒤돌아 보며 말을 붙인다. '너 어느 국민학교 나왔어?' 쌍꺼풀진 눈이 살짝 위로 찢겨 올라가고 숱많은 곱슬머리는 핀으로 단단히 고정해 두었다. 야무져 보이는 입가에는 하얗게 마른버짐이 피어 있었다.

입학 첫날 내게 말을 붙여준 친구와 단짝이 되었다. 나는 맏이로 자라 어리숙한 데다 눈치도 별로 없었다. 친구는 네 살 위의 언니가 있었는데 내가 입학한 학교는 여중 여고가 한 울타리 안에 있어 친구는 언니와 함께 등교하곤 했다. 감정 표현이 분명하고 아는 것도 많은 친구는 여러모로 나를 리드했다. 친구는 내가 모르는 새로운 책 소개도 많이 하고 둘이서 점심 시간이면 손잡고 도서관도 들락거렸다.

친구가 맨 처음 소개한 책은 ‘빨강머리 앤’이었다. 사춘기에 막 접어든 소녀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이 그려내는 세상에 바로 감정 이입이 되었다. 눈 앞에 있는 세상보다 허구의 세계가 보여주는 매력은 마술과도 같았다. 그 다음부터는 박화성의 ‘고개를 넘으면’, 김말봉의 ‘찔레꽃‘,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 등 한국문학전집을 거쳐 브론테 자매의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등 세계문학으로 보폭을 넓히며 탐독하게 된다. 물론 도서목록은 대부분 친구에게서 나왔고, 친구는 언니의 독서 감상평을 듣고 우리의 독서를 리드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뜻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조숙한 독서였지만 사랑의 주인공들이 겪는 시련과 인간에게 깃든 섬세한 감정들, 기나긴 애욕과 파멸의 이야기는 마약처럼 어린 소녀들을 끌어 들였다. 그 시절 맛본 ‘읽는 일의 즐거움’은 평생의 낙이 되었다. 같은 여고를 가고 문과 이과로 나눠지며 아래 위층으로 다른 교실을 쓰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며 친구와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조회시간이면 먼 빛으로 어떤 친구와 함께 있나 살피기도 하고, 복도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몇 마디 주고 받고 헤어지곤 했다. 때론 팝송가사나 소월이나 청마의 시 등을 베껴쓴 노트를 슬쩍 교환하기도 하고...

친구는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가고 나는 대구에서 사범대학에 입학했다. 첫 학기를 보내고 여름방학이 되었다. 서울서 내려온 친구가 말해줬다. 얼마 전 은희가 죽었다고. 갑자기 쓰러졌는데 그 길로 끝이었다고. 선천적으로 심장이 좋지 않아서 집안에서는 늘 걱정을 하고 있었다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듯하고 허공을 딛는 것 같았다.

외할아버지의 죽음을 보긴 했지만 오랫동안 병석에 계시던 할아버지였고 사람은 나이가 들면 죽는다고들 하니까 슬프긴 했지만 충격은 아니었다. 그러나 ‘친구가 죽었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받아 들일수가 없었다. 왜냐고. 그럴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왜 그때 내겐 아프다고 한마디도 해주지 않았지. 그리고 주위를 둘러 보아도 겨우 스무살에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함께 있지는 않아도 늘 마음 한 자락을 쥐고 있던 친구였다.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끝내지 못한 숙제처럼 끊어진 실가닥처럼 망연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은 그림자처럼 늘 따라 다녔다. 그러다 마음속 어디쯤에 깊이 묻혀져 갔을 것이다

언젠가는 다시 만나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젊은 느티나무’를 얘기하고 ‘닥터 지바고’의 눈덮인 시베리아와 라라의 사랑을 애기하고, ‘폭풍의 언덕’을 떠도는 ‘히스클리프’의 유령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이야기의 온도가 올라가면 빠른 말투에 때론 침방울이 튀고, 입꼬리에 살짝 하얀 거품이 묻어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귀여우면서도 우스꽝스런 모습도 더는 볼 수 없다. 어떤 한 시절, 둘이서 깊이 빠져들던 일이나 시간, 두 사람 말고는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럴 때는 조용히 기억의 문을 닫고 묻어 두는 수밖에...

그건 슬픔이었을까? 내 기억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은. 홀로 남겨진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는 게 아니라 나의 이기심 때문인가? 오랜 시간 들고 다니던 화두였을 것이다.

퍼즐 조각처럼 간직해온 기억의 조각들은 지층이 되어 묻혔다. 소중하고 애틋한 인연들, 열정과 의욕으로 넘쳐나던 한때 몰려 다니던 친구들, 분노와 굴욕감으로 가슴 터질듯한 순간들, 의무와 책임감으로 견뎌야 했던 되풀이 되는 일상,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첼로의 선율로 마음의 현이 툭 끊어지던 어느 아침, 그 끝에서 선물처럼 깨닫게 된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 대한 감사, 표현하지 못하고 흘려보낸 소중한 감정들, 허락된 시간에 대한 엄정한 자각.

먼 길, 오랜 시간을 걸어왔다. 숨죽여 우는 벌레 소리가 문득 마음속 지층으로 데려다 준다. 머리를 맞대고 참새처럼 지저귀는 두 소녀를 가만히 바라본다. 노래의 짧은 한 소절처럼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곡조처럼 둘 만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돈다. 더 이상 왜라고 묻지 않고 가슴 저미는 아픔이나 회한없이 바라 보는 나를 본다.

때론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만이 가 닿을 수 있는 강의 끝자락이 있다. 그곳에 가 닿아야 비로소 바다를 알 수 있고 바다가 될 것이다. 가을은 무상(無常)을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