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죽음의 의학적 정의1
(3) 죽음의 의학적 정의1
  • 김영조 기자
  • 승인 2019.03.12 18: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죽음을 "소생할 수 없는 삶의 영원한 종말" 이라고 정의 하고 있다. 죽음의 사전적 의미는 생명체의 삶이 끝나는 것 즉 생()의 종말을 가리킨다. 이는 다분히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조건, 어떤 상황, 어느 시점에서 죽음 또는 사망이 있다고 보느냐 하는 내용은 없다. 따라서 이에 대한 의학적 규명이 필요하다.

의학적으로 죽음에 대해 심정지설(심장정지설, 심폐정지설)과 뇌사설의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심정지설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장기 중 하나인 심장의 활동이 정지되는 것을 죽음으로 본다. 뇌사설은 뇌간을 포함한 전뇌의 기능이 불가역적으로 소실된 상태, 즉 뇌 전체의 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경우를 죽음으로 본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 태아<출생>사람()<사망>사체(死體)의 과정을 거친다. 이에 따라 권리주체성과 보호법익 및 범죄 명이 달리진다. 그리고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서 가끔 정상인식물인간뇌사심정지의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서는 정상인과 식물인간의 상태를 합쳐 살아있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출생>

 

<뇌사>

<심정지>

 

태아

사람()

죽은 사람

(死體)

살아있는 사람(생존자)

뇌사자

정상인

식물인간

 

자발적 호흡

인지기능

자발적 호흡

인지기능×

자발적 호흡×

인공 호흡

자발적 호흡×

인공 호흡×

장기이식×(일부 이식 )

장기이식

장기이식

장기이식 외 신체 훼손×

신체 훼손

권리주체×

(, 상속)

권리주체

권리주체×

낙태죄

상해죄/살인죄

사체 오욕죄/

손괴죄

 

모체 내에 있는 태아는 출생이라는 사실에 의하여 사람()’으로 된다. 태아는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일반적인 권리를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상속권은 가진다. 태아는 아직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살해하더라도 살인죄가 되지 않는다. 낙태죄가 될 뿐이다. 2018년 외도를 의심한 20대 남편이 임신한 부인을 무차별 폭행하여 유산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법원은 태아에 대한 살인죄가 아닌 부인에 대한 상해죄로 징역 10월을 선고하였다.

  사망의 시기에 관해서 전통적으로 심정지설이 지배적 견해이다. 그러나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등 생명을 연장하는 기계와 기술의 발달로 뇌사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뇌사상태가 되면 기계의 도움 없이 자발적인 호흡과 심장 박동을 할 수 없다. 의식회복 및 소생이 불가능하다. 보통 2주내로 심정지로 반드시 사망한다. 잠자고 깨는 행위, 무의식적 반사 반응 등도 불가능하다. 다만 기계로 체내 장기에 영양분과 산소 공급은 가능하다. 뇌사자는 일정한 조건 하에서 장기기증이 가능하다.

2016년 미국 대학생 웜비어(Otto Warmbier)가 북한 여행 중 정치 선전물을 훔치려 했다는 이유로 15년 노동교화형 선고를 받았다. 17개월간 북한에 억류돼 있다 혼수상태로 고향으로 송환돼 왔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한 지 6일 만에 공식 사망 선고를 받았다. 그의 부모가 북한 정권을 상대로 약 11억 달러의 배상금 소송을 냈다. 경제적 손실액과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보상금, 가족에 대한 위자료, 징벌적 손해배상금 등 명목이다. 미국 연방지법은 북한에 약 560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건강하고 영리했던 웜비어가 앞을 못보고 귀가 먹은 뇌사상태로 돌아왔다는 것을 강조했다.

뇌사와 달리 식물인간은 대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어 모든 인지 기능이 소실된 경우를 말한다. 대뇌가 판단하여 이루어지는 의미 있는 반응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의식이 없고, 외부 환경과 자극에 대해 반응하는 능력이 없다. 그러나 뇌간에는 손상이 없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호흡과 심장박동은 가능하다. 잠자고 깨는 행위, 무의식적 반사 반응, 위장·호흡·심장 운동은 가능하다. 대부분 합병증에 의하여 1~2년 내에 사망한다. 극히 일부이지만 의식회복의 가능성도 있다.

식물인간은 임신이 가능하다. 2017년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간호해 온 대만 여성이 임신하여 아이를 낳았다. 이웃 사람들이 외도를 하여 출산한 것이라고 욕을 하였다. 그러나 친자 확인 결과 남편 아이가 맞았다. 2018년 미국 애리조나(Arizona)주에서는 식물인간인 여자 환자를 남자 간호사가 성폭행하여 임신·출산케 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식물인간은 살아있는 사람에 속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장기기증을 할 수 없다. 2000년 잠실야구장에서 롯데자이언츠의 거포로 활약하던 L선수가 경기 중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원인은 심한 부정맥으로 인한 발작이었다. 그는 9년간 식물인간으로 있다가 사망하였다. 그동안 엄청난 나쁜 비판이 그와 가족을 괴롭혔다. 왜 장기기증을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뇌사와 식물인간의 차이를 잘못 이해한 결과이다.

뇌사설은 1968. 8. 9. 시드니(Sydney)에서 개최된 제22차 세계의학학회(World Medical Assembly)에서 채택된 시드니선언에서 사망 시기의 기준으로 인정되었다. 현재 미국, 프랑스, 일본, 대만 등에서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뇌사에 대한 찬반 논쟁이 뜨겁다.

먼저, 뇌사를 인정하자는 찬성 쪽의 주장이다.

뇌사자는 뇌 기능이 완전히 정지되어 있고, 호흡 또한 불가능하여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뇌사자는 이미 인간적 생명을 잃은 채 생물학적 생명만으로 살아가고 있다. 단지 인공적 보조 장치에 의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뇌사인 상태를 연장시키는 것은 환자 자신과 가족에게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처사이다.

인공적 보조 장치의 사용에 엄청난 비용이 들고 경제적 부담을 준다.

의료자원의 한정성에 관한 문제이다. 즉 뇌사를 인정해야 의료진과 보조 장치를 회복 가능한 환자에게 우선 지원할 수 있다.

뇌사에서 회복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불가역성).

뇌사를 인정해야 장기 이식 제공이 가능하다.

다음, 뇌사를 인정하지 않는 반대쪽의 주장이다.

뇌사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뇌는 크게 대뇌·소뇌·뇌간 등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대뇌·소뇌·뇌간 등 뇌 전체의 기능이 상실한 상태가 전뇌사이다. 대뇌 기능을 상실하는 것은 대뇌사 또는 고등뇌사이다. 이 경우 식물인간과의 구별이 애매하다. 영국 왕립의과대학에서 제시하고 있는 뇌간 기능의 상실은 뇌간사이다. 따라서 뇌사의 개념 자체가 불명확하다.

뇌사를 확인하고 납득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준과 방법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의사의 주관적·재량적 판단이 개입할 소지가 많다. 특히 식물인간 상태를 뇌사자로 판정할 위험성도 있다.

숨이 멎다”, “숨을 거두다등과 같이 사람의 생명을 호흡이나 맥박, 심장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사회통념이고 국민감정이다. 뇌사는 이에 어긋난다.

뇌 기능이 정지되어도 아직 숨을 쉬고 있고 몸에 온기가 남아 있다. 이를 죽은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도덕적·윤리적으로 옳지 않다.

이 두 가지 견해에 따라 뇌사자를 보는 입장이 달라진다.

먼저, 뇌사자를 살해한 경우이다. 뇌사 찬성 쪽에서는 뇌사자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살인죄가 되지 않는다. 뇌사 반대쪽에서는 당연히 살인죄가 된다.

다음, 멀쩡한 사람을 폭행하여 뇌사시킨 경우이다. 뇌사 찬성 쪽에서는 살해행위이므로 살인죄가 된다. 그러나 뇌사 반대쪽에서는 뇌사 자체가 살해행위가 아니므로 살인죄가 되지 않는다. 다만 뇌사 후 사망에 이른 경우 인과관계에 의하여 살인죄가 될 수 있다.

2010년 사건이다. K씨가 술을 마시고 말다툼하다 L씨를 때려 뇌사시켰다. L씨는 뇌사상태가 되어 장기기증을 한 후 사망하였다. 이에 대한 재판에서 L씨 가족은 K씨의 폭행으로 L씨가 사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K씨 측에서는 뇌사가 사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법원에서는 K씨의 주장에 따라 살인죄가 아닌 폭행죄로 처벌하였다. 장기 기증을 하지 않고 사망하였다면 살인죄가 되었을 것이다.

뇌사자에 대하여 하나의 보험계약에 장해보험금과 사망보험금 둘 다 가입되어 있는 경우이다. 뇌사상태에 있다가 사망하였다면 뇌사는 사망이 아닌 장해상태이므로 두 가지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을 법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망보험금만 인정하였다. 뇌사는 그 증상이 고정되어 있지 아니하고 사망으로의 진행단계에서 거치게 되는 일시적인 상태라는 근거에서이다. 즉 뇌사는 인과관계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사망한다는 이유이다. 식물인간인 상태에서 사망하였다면 사정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뇌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장기기증을 위한 경우에 한해서만 뇌사를 인정하고 있다. 200029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서 일정한 요건 하에서 뇌사로 인정하고 장기 등을 이식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