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가장 오래된 비석, '포항 중성리 신라비(국보 제318호)'
(13) 가장 오래된 비석, '포항 중성리 신라비(국보 제318호)'
  • 오주석 기자
  • 승인 2020.05.28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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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최고의 신라비는 공사 현장에서 우연하게 발견되었다
'포항 중성리 신라비'의 비문 내용과 해석
국보 제318호 포항 중성리 신라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국보 제318호 포항 중성리 신라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포항 중성리 신라비'는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중성리 도로공사 현장에서 2009년 5월 주민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신라비다.

2009년 5월 초순 어느 날, 포항시 흥해읍 주민 김헌도씨는 포항시가 주민생활개선사업 일환으로 그가 사는 중성리 일대에서 추진하는 도로개설 작업장 한쪽에 놓인 넓적한 판돌 하나를 발견한다.

"파낸 흙을 모두 트럭이 실어나갔는데, 이틀이 지나도 그 돌은 그대로 있더군요. 생긴 게 조경석 돌로 쓸만하다 생각해서 집으로 옮겨다 놓았습니다. 집사람이 왜 그런 걸 쓸데없이 가져왔느냐고 핀잔을 주더군요."

그러다가 5월 11일 김 씨는 이 돌을 씻게 된다.

"물 조리로 물을 뿌리면서 빗자루로 흙을 쓸어냈습니다. 한데 이상하게 돌 표면에서 뭔가 느껴졌습니다. 가만히 보니 한자가 잔뜩 적힌 비석이었습니다. 이에 제 친구인 지방신문 편집국장에게 제보하고, 포항공대 초빙교수인 배용일 선생을 비롯한 전문가가 탁본하고 판독을 했습니다." (발견자 김헌도씨의 증언내용 중에서 발췌)

포항 중성리 신라비는 공사 현장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밀집모자를 쓴 사람이 최초 발견자 김헌도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포항 중성리 신라비는 공사 현장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밀집모자를 쓴 사람이 최초 발견자 김헌도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이렇게 해서 비석 발견 사실은 5월 13일 포항시에 공식 신고가 이뤄지고, 포항시에서는 다음날 문화재청에 보고함으로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의한 공식 조사가 시작됐으며 이후 '포항 중성리 신라비'는 조사를 거쳐 최고(最古)의 신라비임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김 씨가 집으로 옮겨다 놓지 않았다면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옮겨져 다시 땅속에 묻혔거나 아니면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철렁해진다.

발견 당시에는 '학성리비'로 보고됐지만, 정밀 측량 결과 발견 지점이 학성리가 아닌 중성리로 확인됨에 따라 '포항 중성리 신라비'로 명칭이 변경됐다.

이 비는 모양이 일정치 않은 자연석 화강암(최대 높이 104cm, 최대 폭 49cm, 두께 12∼13cm, 무게 115kg)에 한 면에만 글자가 음각돼 있다. 글자는 전체 12행(行)이며 행별로 최대 20자까지 새겨져 있어 모두 203자가 확인됐다. 반면에 비석 하단부의 약 20cm 공간에는 글자를 새기지 않았다. 비석은 비면 맨 위쪽 일부와 우측면 일부가 떨어져 나갔을 뿐, 글자 대부분은 판독이 가능할 정도로 양호한 상태였다.

포항 중성리 신라비의 발견 당시 모습.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포항 중성리 신라비의 발견 당시 모습.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포항 중성리 비문의 제작 시기에 대해서는 학계의 논의가 있는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측은 비문 첫 대목에 신사(辛巳)라는 간지가 보이며, 비문 내용이나 표기법 등으로 볼 때 신라 지증왕 2년인 501년으로 추정되지만, 비석의 한문 구사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신라의 옛 국호인 '斯盧(사로)'를 사용했다는 추정에서 이보다 60년 빠른 441년으로 보는 연구자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성리비의 제작 시기가 501년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신라 비석으로 알려진 ‘포항 냉수리비(503년)’보다 2년 앞서는 것이므로 중성리비가 신라 최고(最古) 비로 확인되었다.

경주국립박물관에 전시된 '포항 중성리 신라비'의 안내판. 오주석 기자
경주국립박물관에 전시된 '포항 중성리 신라비'의 안내판. 오주석 기자

'포항 중성리 신라비’는 비문 판독 결과, 재산 분쟁과 관련된 판결 내용을 담고 있다.

'과거 모단벌(인명으로 추정)의 것을 다른 사람이 빼앗았는데 진상을 조사하여 진실을 밝혀 본래의 주인에게 되돌려 주며, 향후 재론을 못 하도록 한다. 이런 판결 과정을 반포해 현지인과 후세에 경계로 삼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비문 내용 중에는 신라 관등제의 성립 과정, 신라 6부의 내부 구조와 지방 통치, 분쟁 해결 절차, 궁(宮)의 의미, 사건 판결 후 재발 방지 조치 등 신라의 정치·경제·문화상을 알려주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역사·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특히 비문의 글씨체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와 통하는 ‘고예서(古隸書)’ 채로, 신라 특유의 진솔미를 잘 보여준다.

또 단양적성비에서 보이는 ‘고해서(古楷書)’의 전초(顚草, 아주 괴상하고 마구 쓴 초서(草書))이며, 선구가 된다는 점에서 국보 제242호 울진 봉평리 신라비와 국보 제264호 포항 냉수리 신라비보다도 더욱 신라적 품격을 보인다.

'포항 중성리 신라비' 비문의 글씨체도 독특하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포항 중성리 신라비' 비문의 글씨체도 독특하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포항 중성리 신라비’는 발견지인 포항에 마땅히 둘 박물관이지만, 전시관이 없다 보니 발견 직후부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10년째 보관하고 있어 타향살이 중이다. 다만 복제품이 제작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포항 중성리 신라비'의 진품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보관 중이며 국립경주박물관에는 복제품이 전시되고 있다(비석 앞면과 뒷면). 오주석 기자
'포항 중성리 신라비'의 진품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보관 중이며 국립경주박물관에는 복제품이 전시되고 있다(비석 앞면과 뒷면). 오주석 기자

‘포항 중성리 신라비(국보 제318호)’를 비롯해 6세기 초반 신라비인 ‘포항 냉수리 신라비(국보 제264호)'와 ‘울진 봉평리 신라비(국보 제242호)' 등 동해안 3개의 신라비를 묶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포항 중성리 신라비의 비문.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포항 중성리 신라비의 비문.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포항 중성리 신라비’의 비문은 다음과 같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하는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에서 해당 비문을 가져왔으며 종(縱)으로 된 비문을 편의상 횡(橫)으로 이기했다)

◆ 비문 내용

[01] 辛巳▨▨中折盧[?]▨…▨

[02] 喙6)部習智阿干支沙喙斯德智阿干支

[03] 敎沙喙尒抽智奈麻喙部卒智奈麻本牟子

[04] 喙沙利夷斯利白爭人喙評公斯弥沙喙夷須牟旦

[05] 伐喙斯利壹伐皮朱智本波喙柴干支弗乃壹伐金評

[06] ▨干支祭智壹伐使人奈蘇毒只道使喙念牟智沙

[07] 喙鄒須智世令于居伐壹斯利蘇豆古利村仇鄒列支

[08] 干支沸竹休壹金知那音支村卜岳干支走斤壹金知

[09] 珍伐壹昔云豆智沙干支宮日夫智宮奪尒今更還

[10] 牟旦伐喙作民沙干支使人卑西牟利白口若後世更

[11] 噵人者与重罪典書与牟豆故記

[12] 沙喙心刀?▨

◆ 비문 해석

辛巳년 (某月)中에 折盧□

喙部의 習智 阿干支와 沙喙의 斯德智 阿干支가 沙喙의 ?抽智 奈麻, 喙部의 本智 奈麻에게 敎(지시 또는 명령) 하였다.

本牟子와 喙沙利와 夷 私利가 사뢰기를(白) ‘爭人(소송 당사자)은 喙의 評公 斯彌, 沙喙의 夷須 牟旦伐, 喙의 斯利壹伐과 皮末智, 本波喙의 柴干支와 弗乃 壹伐, 金評 沙干支와 祭智 壹伐이고, 使人(재지 촌주)은 奈蘇毒智이며, 道使는 喙의 念牟智, 沙喙 鄒須智, 居伐의 壹斯利이다’라고 하였다.

蘇豆古利村의 仇鄒列支 干支와 沸竹休 壹金知, 那音支村의 卜岳 干支와 走斤 壹金知 등이 世間에 명령한다.

珍伐의 壹(地番 혹은 里?)은, 옛날에 말하기를(昔云), 豆智 沙干支宮과 日夫智宮이 빼앗았던 것이라 하였는데, 이제 다시 (그것을) 牟旦伐에게 돌려주어라.

(이에) 喙의 作民 沙干支의 使人 果西牟利가 ‘만약 後世에 다시 말썽을 일으키는 자가 있으면 重罪를 준다’라고 하였다.

典書인 與牟豆(또는 典書와 牟豆)가 (이러한) 연고로 기록한다.

沙喙 心刀里□(세운다?)

◆ 비문 요약

진벌(珍伐)의 일(壹·지번 혹은 리?)은, 옛날에 말하기를(석운·昔云), 두지(豆智) 사간지궁(沙干支宮)과 일부지궁(日夫智宮)이 빼앗았던 것이라 하였는데, 이제 다시 (그것을) 모단벌(牟旦伐)에게 돌려주어라. (이에) 훼(喙)의 작민(作民) 사간지(沙干支)의 사인(使人) 과서모리(果西牟利)가 ‘만약 후세(後世)에 다시 말썽을 일으키는 자가 있으면 중죄(重罪)를 준다’라고 하였다. 전서(典書)인 여모두(與牟豆·또는 전서와 모두)가 (이러한) 연고로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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