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3월의 신천
[수필] 3월의 신천
  • 장기성
  • 승인 2019.02.12 15: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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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봄은 신천에서 시작된다. 장기성기자
대구의 봄은 신천에서 시작된다. 장기성기자

 

대구의 봄은 신천에서 시작된다.

신천 변에 흐드러지게 핀 노랑 개나리가 그 전령사다. 노란색 수채화 물감을 도화지에 뿌려놓은 듯 빛을 발한다. 신천은 예나 다름없이 조잘거리며 굽이쳐 흐른다.

오래전 내가 알고 있는 신천은 실개천에 지나지 않았다. 돌과 쓰레기로 가득 찬 거대한 자갈밭 공터였다. 그 옛날 한때는 냇물에 웅덩이를 파서 낮에는 빨래터로, 밤에는 남탕 여탕으로 나눠 목물을 하던 장소가 되기도 했다. 6-70년대에는 정치인들의 유세장 구실을 톡톡히 할 정도로 위세를 떨친 곳이기도 하다. 수십만 명이 모여 후보의 이름을 연호할 때도 신천은 싫은 기색이 없이 그 자리를 기꺼이 내주었다. 한 시절 정치인들의 세몰이 현장이 여기였다고 생각하니 그저 속절없이 신기루를 보는 것처럼 마냥 멍할 뿐이다. 세월은 산을 강으로 만들고 강은 산으로 만든다더니 그 역사의 현장을 내 눈앞에서 다시 보니 격세지감이 든다. 신천은 언제나 이 곳 이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달구벌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대구의 내일을 걱정했으리라.

대구의 심장, 신천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자갈밭이 구비치는 물길로 변모하면서, 아담한 샛강이 만들어졌다. 허물어져가던 자갈밭 둔치는 사시사철 푸른 잔디로 옷을 갈아입었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상전벽해’의 현장을 여기이곳에서 다시 볼 줄이야. 천지개벽이요 격세지감이 든다.

파리의 세느강이, 런던의 템스강이, 부다페스트의 도나우강이 그들의 자랑이듯, 신천은 분명 대구의 자랑이고 대구의 젖줄이다. 신천은 오늘도 유유히 물결치며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려간다. 장손의 의젓함이 곳곳에 묻어난다. 대구의 도심을 가로질러 본류인 금호강으로 오늘도 쉼 없이 잰걸음을 재촉하니 말이다.

이 신천이 오래오래 전에는 용두머리에서 건들바위, 반월당, 서문시장으로 이어져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어느 관찰사가 지금의 신천 쪽으로 물길을 돌려놓았다. 이 같은 치수로 수해를 입지 않게 되었을 뿐 아니라, 대구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이루어냈다. 지금도 건들바위 가장자리에는 그의 공덕비가 세워져있다.

오늘도 신천의 다채로운 풍광에 푹 빠져본다. 청둥오리와 백로 그리고 왜가리들의 보금자리가 된지 오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분주히 노닥이며 그네들 터전으로 자리 잡았다. 그 춥던 지난겨울에도 신천에 몸을 담근 채 칠흑 같은 밤중을 지켜냈으니 터줏대감이란 말이 따로 없어 보인다. 외롭지 않기 위해서일까, 한 곳에 옹기종기모여 앉아 신천 예찬의 노래를 멈추지 않으니 말이다.

아침나절 신천은 알록달록한 아웃도어로 일순간 뒤덮여진다. 둔치의 잔디밭 오솔길이 울긋불긋 단풍 색 세상으로 바꿔지는 순간이기도하다. 다정한 부부의 속삭임이 신천을 온통 감싼다. 자유롭고 유유자적함이 먼발치에서도 몸으로 느껴진다. 멋진 모자로 한껏 멋을 부린 여성 어르신들은 패션쇼를 연상하리만큼 발걸음도 도도하다. 멋진 노후가 저런 모습이 아닐까, 아니 그러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내심 부럽고 질투가 인다.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신천은 한가롭다 못해 적막함까지 느껴진다. 한낮의 자외선이 산보객들을 한사코 말렸기 때문이니라. 가끔씩 자외선을 즐기는 노랑머리 이국인 모습이 생뚱맞게 보일뿐이다. 햇볕 향한 그리움을 늘 가슴에 안고 사는 그네들이 신기할 따름이다. 일조량이 부족한 유럽이나 미주 쪽 산보객들이 일광욕 삼아 산보길에 나선 것이 아닐까 그저 내심 짐작해 볼 뿐이다.

영국정원 (Englischer Garten) 은 도심에 가장 근접해 있으며 뉴욕시의 센트럴파크보다 큰 3.7 km²의 면적을 뒤덮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심공원 중 하나로 손꼽힌다. 사람들은 잔디밭에 누워 일광욕을 하거나, 산책길을 따라 조깅한다. 이 공원은 벤저민 톰프슨에 의해 설계되었고, 본래 노동 지역의 환경 개선과 노숙자를 위한 공간이었다. 이곳에 있는 중국탑 인근에 맥주를 즐기기 위한 비어가어텐 (Biergarten) 이 있다. 위키백과
영국정원 (Englischer Garten) 은 도심에 가장 근접해 있으며 뉴욕시의 센트럴파크보다 큰 3.7 km²의 면적을 뒤덮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심공원 중 하나로 손꼽힌다. 사람들은 잔디밭에 누워 일광욕을 하거나, 산책길을 따라 조깅한다. 이 공원은 벤저민 톰프슨에 의해 설계되었고, 본래 노동 지역의 환경 개선과 노숙자를 위한 공간이었다. 이곳에 있는 중국탑 인근에 맥주를 즐기기 위한 비어가어텐 (Biergarten) 이 있다. 위키백과

 

순간 엉뚱한 사념들이 이리저리 뇌리를 충동질한다. 뮌헨에서 공부할 때다. 대학 울타리와 이웃해있는 ‘영국정원’(Englischer Garten)이 불헌 듯 생각난다. 1790년에 조성된 이 공원은 유럽에서 가장 큰 시립공원 중에 하나다. 원래 왕의 사냥터였던 곳을 20여년에 걸친 노역 끝에 지금의 멋진 공원으로 재탄생시켰다.

이곳이 '독일정원'이 아닌 '영국정원'으로 불리는 이유는 영국 사람들에 의해서 조성된 정원이기 때문이란다. '영국식 정원‘이란 최대한 자연 그대로의 느낌을 살려 만든 것이 특징이다. 반면에 프랑스식 정원은 인공적이고 기하학적인 구성이 가미한 기법이 특징이다. 프랑스에 있는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떠올리면 반듯한 인공적 정원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이 궁전은 자로 잰 듯 규칙적 배열과 기하학적 구조가 눈에 띄듯, 정원수에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문양으로 깎아놓은 미로정원이 따로 없을 정도니 말이다. 가끔씩 우리 주변에서 이런 정원을 흉내 낸 것을 본 것 같기도 한데.

370 헥타르 넓이의 영국정원은 방대하게 큰 규모로도 자랑꺼리다. 이 정원 중앙에는 아담하고 아늑한 샛강이 있다. 금방이라도 첨벙 뛰어들고만 싶은 시냇물이 흐른다. 여름에 이곳은 우리에게 문화충격을 줄만한 ‘나체족 구역’(FKK)이 있다. 팬티를 입고는 출입이 불가능한 알몸 구역이란 뜻이다. 나체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여름에는 성시를 이룬다. 이 처럼 중북부 유럽인들은 햇볕에 무척 우호적이고 호의적이다. 대낮 마당에 훌렁 벗고 일광욕을 즐기는 광경은 일상의 한 부분이 된지 오래다.

저녁시간 신천은 가족단위의 산보객들로 넘쳐난다. 직장에서 막 퇴근한 사람, 유모차를 끌고나온 새내기 부부, 애완견에 목줄을 묶어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젊은이들과 더불어 까까중이 학생들도 여기에 가세한다. 이 시간의 신천은 활력과 역동성으로 넘쳐난다.

자전거 전용도로에는 멋진 안전장구를 갖춘 일군의 무리들이 전광 빛을 깜박이며 쏜살같이 내달린다. 멋진 헬멧과 쫄자켓 그리고 쫄바지는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기본 장구이자 자랑꺼리다. 가끔씩 위험천만한 스쿠터의 행렬도 밤풍경을 아슬하게 만들지만 풍요롭게 하는데 일조한다. 짜릿함 없이는 볼 수없는 오싹한 광경이다.

저녁에서 밤으로 이어지는 신천은 카멜레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구에서 해마다 개최되는 ‘Colorful Daegu Festival' 축제명의 이름 속에 colorful이 왜 들어가 있는지 알 것만 같다. 다채롭고 여유로운 삶이 향유되는 이곳 신천에 흠뻑 빠져 의식 밖으로 빠져 나오질 않는다.

온통 노란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 신천변 곳곳이 향기로 넘쳐난다. 병아리의 부드러운 솜털이 천변의 개나리와 닮아있다.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개나리,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병아리가 설렘이란 이름으로 포개진다. 3월의 신천은 예나 다름없이 오늘도 조잘거리며 굽이쳐 흐른다. 대구의 봄은 신천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