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철모 (49)-전차병의 탈영
녹슨 철모 (49)-전차병의 탈영
  • 시니어每日
  • 승인 2020.03.0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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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단 전차부대 연병장에서 공개재판이 열렸다. 물론 군법회의는 공개재판이다. 하지만 이날은 시범 사례로 모든 전차부대 장, 사병들을 불러 모아 실외에서 의무적으로 재판을 참관케 하였으므로 강조하는 의미에서 공개재판이라고 부른 것이다. 연병장에 빼곡히 장교와 사병들이 모였다. 재판은 마이크까지 동원하여 진행되었다. 태원은 매달 재판에 참석해왔으므로 이제 공판장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공개로 재판을 하니 새삼 떨렸다. 무장탈영병에 대한 재판이었다.

"피고는 제1 전차여단 소속 일병 김영환이 맞는가?"

"네, 맞습니다.” 

신분 확인이 진행되었다.

“18시 정문 보초를 선 뒤 교대 후 내무반으로 가지 않고 부대 밖으로 총기를 휴대한 채 탈영한 사실을 인정하나?"

“네.”

"피고가 총기를 휴대하고 부대를 이탈한 것은 인마를 살상키 위한 목적이 있었던 것인가?"

"아닙니다.”

"그럼 탈영을 하더라도 맨몸으로 가야지 총을 휴대한 것은 그 목적이 무엇 때문이었나?"

그날의 주심인 중령이 크게 꾸중하듯이 심문했다. 아마 그는 보병 출신이어서 법에 어두워 자신의 역할을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는 자신이 검찰관인 듯 행동했다. 태원이 변호인 반대 심문을 시작했다.

"피고가 그날 임무 뒤 내무반으로 오지 않고 영 밖으로 나간 심정을 한 번 이야기해 보시오."

"제가 평소에 우울증이 있었습니다."

“그 우울증 증상을 어떤 것들인가요?.”

"밤에는 잠이 오지를 않고 온갖 생각들이 머리에 가득합니다. 일어나면 죽고 싶은 마음부터 찾아옵니다. 낮에는 기운이 없고요. 행동도 느려지고 말도 하기 싫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모두들 저를 꺼리고 또 고문관이라고 놀리더군요.”

“그래서?"

"그날 저는 근무가 끝나면 뒷산에 가서 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총을 갖고 부대를 나섰습니다. 산길을 가다 보니 구멍가게가 있었습니다. 안에는 나이든 남자 주인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분이 제 아버지처럼 느껴져 산으로 가던 발걸음을 가게 안으로 옮겼지요.”

"그 가게 주인에게 총을 겨누었나?"

"아닙니다. 저는 터놓고 얘기했어요. 저는 탈영했습니다’라고... 그러자 그 아저씨가 묻더군요. ‘왜 그랬냐?’고요. ‘자살을 하려고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후 주인이 소주를 갖고 와서 서로 나누어 마셨습니다. 자신의 옛날 군대 이야기도 해주며 라면까지 끓여 주더군요. 저는 주인이 주는 술과 라면을 먹고 나니 마음이 변해 자수하겠다고 했습니다.” 

변호인 신문이 끝나자 태원이 맒했다.

“재판장님. 피고는 방금 진술에서 말했듯이 자살을 시도한 것이지 탈영한 것이 아닙니다. 검찰관은 죄목을 ‘자살 기도’로 바꾸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변호인은 이 피고가 우울증 환자라는 주장입니까?" 

주심이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피고의 행동은 마땅히 중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비록 무장탈영이라는 어마어마한 죄를 지었다고는 하나 그 목적이 자살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병으로 고생하는 피고를 위해서 그동안 그 전우나 상급자들은 과연 무엇을 하였나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맹장염 환자는 밤중에라도 응급으로 후송해줍니다. 그러나 왜 마음이 아픈 사람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이런 법정에 서야 되는 것입니까? 이는 피고의 죄만이 아니고 지휘관 아니 모든 부대원의 책임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기 입대 전 피고가 정신과 치료받았던 사실의 진단서와 병록지를 증거물로 제출합니다.”

태원이 아무리 이치에 맞는 변론을 해도 정상 참작은 있을 수 없었다. 무장탈영은 무거운 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전 전차부대 사병들에게 시범으로 보여야 할 재판이기에 그는 정상 참작 없이 중형이 선고되었다. 재판이 끝나고 전 장병이 흩어지고 나서 법무관이 피고에게 따로 말을 하였다.

“자네 죄는 정신과 질환과 관계가 있는 듯하니까 다시 정신감정을 받고 그 결과를 갖고 고등군법회의에 항소하도록 해. 그러면 형량이 많이 깎일 수 있을 거야.” 

조언하듯이 말해주었다. 이 마지막 말이 태원에게 보람으로 느껴졌고 자주 보는 친한 법무관이지만 그날따라 더욱 믿음직한 생각이 들었다.

 

군법회의가 끝나면 그날은 회식을 한다. 부대를 벗어나 꽤 멀리까지 갔다. 보통은 불고깃집으로 가는데, 그날은 전차부대 부근에 좋은 집이 있다며 그리로 지프가 달렸다. 모두 싱글벙글 웃는 품이 수상했다.

“박 소령님, 혹시 보신탕집에 가는 거 아닙니까?" 

태원이 물었다.

"그럼 이런 날은 그런 거 먹어야 제격이야. 실장은 안 좋아하쇼?"

일부러 그는 억지소리를 했다. 태원이 번번이 반대하여 보신탕집으로 못 갔던지라 그날은 알리지 않고 보신탕집으로 향하여 태원을 골탕 먹이기로 작정한 터였다.

"너무 걱정 마. 그 집에는 닭백숙도 잘하니 말이야.” 

보신탕집에 도착하니 철조망 안에서 개들이 손님을 보고 짖어대고 있었다. 법무부 장교들은 입맛을 다시며 한마디 하였다.

“전부 다 맛있게 생겼군.” 

태원은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원래 개를 좋아하는 것도 이유지만 집안이 불교를 믿는 덕에 개고기는 금기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집에는 닭이 없었다. 개고기만 전문으로 하는 집으로 서울에서도 식도락가들이 몰려오는 그런 집이었다.

“우 대위, 이제 알겠지? 굶든지 먹든지 마음대로 해, 아니면 걸어서 부대로 가든지.”

태원은 어리둥절했다. 고향 집에서는 개고기는 천한 사람들이나 아픈 사람들이 먹는 음식으로 여겼는데,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이제 판검사 임용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이 저런 음식에 침을 흘리고 있다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요리가 나오는 동안 고스톱판이 벌어졌다. 법무부 선임하사인 이 상사가 자꾸 돈을 잃었다. 태원은 할 줄 모르니까 보고만 앉아 있는데, 안쓰러웠다. 박봉인 하사관이 저보다 돈 더 많이 받는 장교들에게 자꾸 돈을 갖다 바치니 보기가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돈을 잃고 있는 이 상사나 그 돈을 따먹는 장교들 모두 희희낙락하는 광경이었다. 꽤 많은 돈이 오가건만 그들은 아무런 부담 없이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훗날 태원은 의문을 풀게 된다.

남자가 먹는 음식 하나로 전체의 분위기를 흐릴 수 없었다. 까탈을 부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태원은 난생 처음으로 보신탕을 먹었다. 겉으로는 “아, 맛있다. 생각보다 맛있네" 하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속으로는 보리밭에서 첫 정조를 잃은 처녀 같은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유 소위에게서 편지가 왔다.

”태원씨에게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내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알고부터 아니, 나의 마음이 당신을 그리워하면서부터 난 나 자신의 감정에 대한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당신과 처음 만나서 이야기할 땐 단순히 동료로서 말이 통하는 친구처럼 느꼈습니다. 오랜 친구에게서 느끼는 편안함을 당신은 나에게 주었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만남이 아닌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에게 남편이 있지만 당신과 만나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서로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인생에서 얼마나 큰 기쁨이고 행복인지 당신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난 요즈음 당신 생각 때문에 나의 일을 그르치곤 합니다. 친구처럼 편안하게 느꼈던 당신의 모든 것이 왜 자꾸 생각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감정은 우리의 입맞춤 이후 달라진 감정입니다. 

머리는 항상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책을 읽을 수도 없고 일에 집중할 수도 없습니다. 이러다가 어떤 사고까지 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엔 정말 당신의 편안함이 그리워집니다. 항상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고자 했던 나의 꿈은 그때 그 순간부터 다 무너져 버린 느낌입니다. 두 가지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엔 많겠죠? 하지만 나의 결벽증적 성격과 당신의 강박증적 사고는 이런 두 가지 감정을 허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요즘 심란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계속해야 된다’는 마음과 ‘그만둬야 된다’는 마음, 정반대되는 두 마음으로 심하게 갈등을 느끼고 있습니다. 처음 단순한 호기심과 호감으로 시작했지만 이제 저의 마음이 그 단계를 넘어선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한 쪽을 속이는 즐거움, 나의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즐거움, 서로가 동일한 철학을 공유한다는 즐거움, 그리고 언젠가는 소설을 써야겠다는 희망에서 오는 즐거움이 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지요. 우리 만남의 끝은 어디일까요? 제가 믿고 있는 천주님께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군요. 하긴 대답이 있어도 결과는 뻔하겠지요. 아무래도 선영이는 태원씨 곁을 떠나는 것이 정답이겠지요. 마침 비도 오고 조용한 밤 근무여서 몇 자 적어 봤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유 소위에게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쪽에서 마음의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심정을 적어 보낸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자신의 곁을 떠나려고 다짐하는 것에 화도 나기도 하였다. 일부러 답장을 하지 않으면서도 태원은 속이 편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자 태원도 군단 생활에 적응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그가 그런대로 보람을 느끼는 것은 사병 모두가 그를 믿어주고 따른다는 점이었다. 일반 사회의 지도자들이 거대한 민심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따르게 마련이듯 군단 지휘부의 참모들도 사병들의 태원에 대한 애정이나 존경심이 높아지자 태원에 대한 압박이나 트집을 줄여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그런 태도 변화는 군대 내의 흐름과 더불어 부군단장, 헌병대장, 보안대장 등 힘센 자리의 장교들이 태원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세상의 큰 수레바퀴가 일단 구르기 시작하면 아무도 인력으로는 그 흐름을 막을 수가 없다. 처음 태원이 군단에 와서 공포심을 느낄 정도이던 고통의 수레바퀴가 이제는 반대로 기쁨의 바퀴로 변하고 있었다. 이 흐름은 저절로 시작되었고 이제는 누구도 그 앞길을 가로막지 못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