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철모 (28)
녹슨 철모 (28)
  • 시니어每日
  • 승인 2019.10.0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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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에게는 이제야 정상적인 군대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부대는 태원이 오기 직전에 미군들이 본국으로 철수하였고 한국군은 그 막사를 계속 쓰고 있었다. 양철 콘세트 막사인데 야외 공연장도 있고 샤워 시설도 있을 정도로 부대가 크고 화려했다. 그러던 것이 한국군이 들어오면서 시설들을 다 부숴 버려 지금 부대는 마냥 넓고 황량하기만 했다. 그동안 태원이 병주에게서 받아 뿌려 둔 사루비아 꽃씨는 싹이 나자마자 들쥐들이 다 갉아먹고 살아남은 게 거의 없었다. 막사 주위는 여전히 황량한 상태였다.태원은 근 넉 달 가까운 천막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와 이제는 숙소를 정해야 했다. 이 기지촌은 아직 몇 군데 미군 부대가 남아 있고 한국군은 태원이 속한 연대본부 그리고 3대대와 2대대가 한 동네에 있었다. 태원이 연대에서 파견 나와 있는 2대대의 건너편에는 자그마한 개천이 흐르고 그 너머에는 산 아래로 무건리라는 자그마한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 부근에 한국군 206 포병부대가 있었다. 위치로 보면 태원의 2대대는 무건리와 포병부대의 삼각점에 자리하고 있었다. 2대대에서 연대까지 이어진 길은 북으로는 임진강으로 가고 남으로는 서울까지 이어져 있었다.

2대대 앞은 전형적인 기지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기지촌은 여느 한국군 부대의 기지촌과 달리 완전한 미국식 동네가 되어 있었다. 마치 미국 서부영화에 나오는 모습과 똑같았다. 길 양쪽으로 판자집 가게가 줄 서 있는데 간판은 거의 영어로 되어 있었다. 길 가운데로 걷다 보면 자신이 서부의 총잡이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대부분의 지붕은 루핑되어 있고 방에는 침대가 들어 있었다. 태원은 온돌방을 하나 얻었는데 월세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주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대놓고 먹는 조건이었다. 이 식당 주인은 화끈한 성격이었고 그 여자가 경영하는 식당은 이 동네에서는 단 하나뿐인 고기집으로 불고기와 찌개류가 주 메뉴였다. 나중에 주인과 친해지고 들은 이야기로는 그녀는 미군들이 주둔하던 시절 미군 하사관과 동거를 하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양갈보’ 출신이다. 간호학교를 나와 간호사 노릇을 하였는데 어떤 놈팽이와 사랑에 빠졌다가 사기를 당했다고 한다.

미군 기지촌에서 돈이나 벌어보겠다고 서부전선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는 지금처럼 식당을 하지 않았고 잡화점을 하였는데 그 미군 하사관과 작당하여 미군 부대 PX 물건을 적당히 빼돌려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한다. 그녀가 방값을 받지 않는 것도 원래 통 큰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돈이 그리 아쉽지 않다는 표현 같았다. 미군이 철수하면서 동거하던 중사도 떠나고 지금은 식당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사람다운 생활을 하니까 사는 게 재미가 있었다. 기지촌에는 다방도 있고 술집도 있고 창녀촌도 있었다. 해가 지면 손전등을 켜고 깜깜한 천막으로 찾아 돌아가던 생활에서 이제는 불 켜진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 해도 행복하였다. 게다가 다방이나 술집에서 계집애들과 노닥거리는 것도 재미가 났다. 이곳의 술집이나 다방은 단골 장교들끼리 가면 돈을 받지 않았다. 월말에 가면 경비를 만났던 사람들 수대로 나누어둔 장부를 보고 돈을 청구했다. 그리고 술집은 미국식으로 대개는 장교용과 사병용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런 풍습은 미군들만 있던 시절에 생겨난 모양이다. 미군이 떠난 뒤 기지촌은 조금씩 한국분위기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회식 때 장교와 사병들이 함께 오면 손님을 분리해서 받지 못하니까 점차 장교나 사병이 뒤섞인 술집으로 변해 갔다. 하지만 개울가에는 아직 미군이 주둔하고 있어 그 부근 가게에는 그런 관습이 아직도 엄격히 지켜지고 있었다. 또 한국군도 그런 가게에는 잘 찾아가지 않았다. 태원은 시간이 조금 지나자 동네 가게 주인이나 종업원 그리고 손님이 전부 한 식구처럼 지내게 되었다. 6·25 이후 유엔군과 살다가 드디어 같은 민족이 들어오니까 모처럼 우리 식으로 변해 가는 탓인지 이 동네는 여느 기지촌과 달리 군인과 민간인이 매우 가까웠다. 다방 아가씨들은 장교들의 숙소에 가서 연탄을 갈아 주거나 청소도 해주었다. 또 장교 중에는 저녁 식사 뒤에 술집으로 가 제집처럼 안방에 앉아 화투도 치고 노닥거리다가 그들의 숙소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태원의 부대가 원대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주가 찾아왔다. 마음 속으로 병주를 한시도 잊은 적은 없지만 평일 불쑥 이렇게 나타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이제 모든 것이 결합된 상태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그 무렵의 병주는 매우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짙은 주홍색 스웨터를 입고 왔는데 그 색깔은 태원이 좋아하는 색이었다. 그 진 주홍색은 원래 태원이 좋아하는 색깔이기도 했지만 서울 있을 때 언젠가 그녀가 한 번 입은 적이 있는데 상당히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오늘 그녀가 그 옷을 입고 온 것이다. 주야로 상대방을 그리며 생각하노라면 그 머릿속의 말들이 무전처럼 허공을 날아 상대방의 머릿속으로 전달되는 것일까.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그 주파수가 서로 맞부딪치면 느닷없이 보고 싶어지고 왠지 돌발적인 행동이 일어나는 것인가. 이런 현상은 나방의 암놈이 페로몬을 풍기면 그 냄새를 맡고 수십 리나 떨어진 곳에 있던 수놈들이 모여드는 현상과 같은 이치일 것인지도 모르겠다.

둘은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미처 수인사도 나누기 전에 마치 오랜만에 만난 부부처럼, 긴 시간 굶주린 짐승처럼 서로가 익숙하게 부둥켜안고 몸부림치며 긴 입맞춤과 함께 방바닥으로 쓰러졌다. 아직 병주는 육체관계의 즐거움은 모른다. 다만 그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사랑의 표현이며 또 태원이 즐거워하면 그것으로 그녀의 가슴은 기쁨으로 벅차오르는 것이었다. 이들은 마치 육체만을 탐하는 짐승들처럼 말없이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몇 달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볼 겨를도 없이 그들은 말없이 잇달아 두 번째 육체적 결합을 이루고 있었다.

 

태원의 퇴근 후 일과는 술집 ‘춘매’에 출근하는 것이다. 태원의 숙소에는 같은 부대에 근무하는 통신대장 박 소위가 있었다. 박 소위는 학군단 출신으로 서울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입대하였다. 고향은 청도였고 그의 부모는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저녁을 먹고 나면 으레 술집 ‘춘매’를 매일 찾았다. 그들은 아예 그 집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이미 손님이 아니라 한 식구라는 뜻이었다. 그 방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작부 서너 명이 화투를 치거나 화장을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별다른 감정 없이 “오빠들 왔수?" 하고 건성으로 인사를 한다. “야, 뭣하고 있어?” 하면 막걸리 한 주전자와 동태찌개를 개다리소반에 차려서 내왔다. 홀이나 옆방에 손님이 오면 그녀들이 알아서 하는데도 가끔은 주제넘게도 “야, 이 멍청이들아 빨리 손님 받아야지”라고 하거나 “예쁘게들 하고 가!” 하고 주인 행세도 하였다. 이 집의 계집들과 그들은 이런 관계가 되어 버렸으므로 부대 회식이 있을 때는 아무 신비감도 없고 기대할 것이 없다.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태원은 춘매 집을 ‘꿈이 없는 집’이라고 불렀다.

전방부대라는 것이 민간인 보기엔 아무 할 일 없어 보이는데도 신통하게도 그들에게는 할 일이 많았다. 물론 최전방에서 철책선을 지키는 부대는 그런대로 할 일이 있었지만 태원의 연대처럼 그 전방부대의 배후 예비부대로 있는 부대는 문자 그대로 전시를 위한 대기를 하는 것이 주 임무이다. 그런 탓에 아무 할 일이 없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 대기라는 것이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항상 훈련을 하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훈련이 사람들 잡는다. 그래서 정작 군대에 가본 사람들은 전방 근무라면 훈련 없는 최전방인 G.P나 G.O.P에서 근무하기를 원하지 그 뒤 후방 예비부대 근무는 싫어하였다. 모든 전방부대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후방부대와 서로 교대근무를 하므로 어차피 3년을 근무하다 보면 부대가 철책선으로 가서 한두 번씩은 근무하게 되어 있었다. 예비부대는 훈련이 많고 힘들지만 밤에는 아무 일도 하는 게 없었다. 그래도 보병 장교들은 밤이 되어도 퇴근을 않고 거의 부대 안에서 부하들과 함께 기거하였다. 원래 장교들은 영외에서 출퇴근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대개의 보병 지휘관은 스스로 그렇게 영내의 좁은 공간에서 어렵게 부하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보병 장교들은 매일 밤 그들끼리 모여 그날의 훈련을 평가하고 다음 날의 계획을 세우고 또 사병들을 교육하였다. 하지만 통신이나 정훈, 의무 장교들은 매일 밤 모여 술집이나 다방에 가서 계집들과 노닥거리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전방의 보병 장교들은 진짜 군인의 삶을 살고 있는 진정한 애국자이며 훌륭한 민주시민이 아닐 수 없다. 태원은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기지촌의 대폿집은 다른 집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주 계집들을 새로 데리고 왔고 계집들 스스로도 자주 들락날락하였다. 그 ‘새로’라는 것이 처녀가 대폿집으로 온다는 뜻이 아니고 도회지의 술집이나 다른 기지촌에 있던 색시가 교대되어 온다는 말이다. 물론 고객인 군인도 그런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이 좋다고 일단 신참이 오면 한동안은 그 집의 수입이 올라갔다. 얼마 전에 춘매에도 색시 하나가 새로 왔다. 먼저 있던 애가 느닷없이 떠나는 바람에 주인이 황급하게 서울에서 구해왔다는 진짜 ‘아다라시’(새것)가 왔다. 그들의 오빠 격인 태원이 그녀를 만나 수작을 붙였다. 태원이 처음 만나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태어나 산전수전을 겪으며 온갖 여자를 다 보았지만 이처럼 못생긴 여자는 처음이었다. 못생겨도 그냥 못생긴 게 아니고 남에게 기이하고 불쾌하고 측은한 느낌을 주는 추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