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나이가 벼슬이던 시대는 지났다
(28) 나이가 벼슬이던 시대는 지났다
  • 김교환 기자
  • 승인 2019.09.08 19:2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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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급격히 발달하면서 언젠가부터 노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차갑다. 물론 농경사회 때처럼 어른의 생활경험이 지금의 정보화 사회에서는 소용이 없어진 원인도 있겠지만 노인 인구의 급격한 증가가 이제는 큰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3-40년 후엔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절반이 넘을 정도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노화 현상이 가장 빠른 나라라고 한다.

이제 젊은이들의 먹고사는 일에 노인들의 도움이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잔소리꾼 내지는 방해꾼으로 공경의 대상에서부터 천덕꾸러기 신세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

이러한 시대변화에서도 아직까지 ‘경로효친' ‘장유유서’만 찾으며 불평한다고 무슨 소용인가.

지금 우리에겐 노년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지금까지 가져왔던 고령사회에 대한 인식과 사회 대응 방안을 혁신해야한다.

왜냐하면 지금의 노년세대가 젊었을 때는 나이가 모든 사회 질서의 기준이었다. 어떤 경우이든 나이가 절대적 기준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사회질서가 형성되었던 시대였다.

대인관계에서도 처음 만나면 우선 본향이 어디인가, 어느 집 자손인가, 나이는 몇인가의 호구조사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형, 아우로서의 위계질서가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이러한 풍토가 아직까지도 옳고 그름을 따지는 자리에서 못 마땅하면 “너 몇 살이니 ?” 아니면 “나이도 어린 게 ...” 하며 나이가 무슨 벼슬인 것처럼 걸핏하면 나이를 들먹이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나이든 사람들은 남에게 쉽게 의존하고 도움을 받고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일에 나이가 우선인 우리사회에서 살다가 보니 몸에 익숙해진 습관으로 생각 되지만 이제는 어설픈 나이 자랑으로 젊은이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자주 보고 듣는 게 현실이다.

또한 유교 문화의 영향아래에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나이를 먹으면 무조건 점잖아져야 한다는 것도 다시 생각해 봐야한다.

여기서 점잖음은 입이 무거워서 말이 없고 무표정한 모습에 동작이 느린 조선시대의 양반의 전형과도 통한다.

자주 많이 웃는 사람은 경박하다느니 동작이 날렵한 사람은 체신이 없다느니 또는 못 배우고 부족한 사람으로 되고 만다.

이제 노인들에게 양반 흉내를 위한 무표정과 느린 동작은 안 통한다.

나이가 자랑일수도 없고 특권일 수도 없는 것이다.

모르는 건 누구에게나 배우며 인생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젊고 늙음에 상관없다. 개방적 사고를 갖고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자. 나이 때문에 머뭇거릴 이유도 없다.

무슨 일이든 자신에게 맞춰지는 상황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연령에 상관없이 능력만 되면 누구와 어디서든 어울릴 수 있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이를 기준으로 한 수직적 사회구조보다 노소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수평적 사회구조의 열린 공간을 만들어야한다. 노인의 고독한 외로움 병을 해결하기위한 사회적 시스템을 찾아 활발하게 참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