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정희원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장서 산책] 정희원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3.01.30 05: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몸의 시간은 젊게

저자 정희원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전문의를 취득했으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의과학대학원에서 이학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전문의로 재직 중이다.

저자는 노년을 건강하게 맞이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 핵심 목표는 삶의 기능적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내재역량을 계발하며 노화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목차는 ‘1부 당신의 삶이 노화의 속도를 결정한다, 2부 노화를 이기는 몸, 3부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무기, 마음, 4부 나이를 먹으면 아픈 것이 당연하다는 착각, 5부 지혜롭게 나이 들기 위한 덜어내기의 기술’로 되어 있다.

1. 가속노화와 내재역량

노화생물학자들이 꼽은 한국 최고의 위기는 '가속노화'다. 가속노화란 신체 기능의 노쇠화를 속도로 나타낸 생물학적 개념으로 자연노화보다 빠른 노화를 의미한다. 부족한 신체 활동, 불균형한 식사, 술과 담배, 비만 등 건강하지 못한 생활 습관이 가속노화를 가져온다.

내재역량(intrinsic capacity)은 세계보건기구가 2015년에 제시한 개념으로 얼마나 건강하게 나이 들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다. 내재역량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인 기능 요소 모두를 종합적으로 점수화한다. 질병 유무, 혈압, 운동시간 등 가시적인 건강지표뿐만 아니라, 적절한 휴식, 마음챙김, 인생의 목표와 자기 효능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변수를 모두 고려하는 것이다. 삶의 요소를 다면적으로 관리해야 건강한 나이 듦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재역량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생물학적 노화를 앞당기는 악순환, 곧 가속노화 사이클을 불러일으킨다.

2. 4M

삶을 이루는 여러 영역, 곧 도메인(domain)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내재역량의 주요 도메인으로는 이동능력, 인지, 정신적 행복, 활력, 감각기-시청각, 사회적·물리적 환경 등이다.

내재역량을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접근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분류는 미국병원협회와 미국노인병학회 등이 만들고 보급한 4M이다. 4M은 이동성(Mobility), 마음건강(Mentation), 건강과 질병(Medical Issues), 나에게 중요한 것(What Matters)의 앞 글자를 땄다.

3. 이동성

노화를 늦추는 첫 번째 기둥은 신체기능, 활동, 운동을 포함하는 이동성이다. 이동성 도메인의 내재역량, 곧 신체기능은 에너지대사체계의 건강상태를 결정해서 노화속도를 제어하고 정서와 인지에도 영향을 주는 삶의 중요한 요소다. 특별히 장애가 없는 사람이라도 이 도메인의 성능이 어느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일상생활의 모든 움직임에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우리 몸은 생각보다 더 많이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루 20킬로미터를 걷고 뛰는 정도까지는 끄덕없다. 뛰면 무릎 연골이 닳아서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물론 적절한 근골격계 내재역량을 갖추지 않고 몸이 가분수인 상태에서 견딜 수 없는 부하가 걸리면 관절이 손상된다. 하지만 근골격계 내재역량을 갖춘 상태에서 올바른 자세로 적절하게 달리면, 오히려 무릎 주변의 근육과 인대가 강화되면서 장기적으로는 관절의 마모 속도를 늦출 수 있다.

또, 우리 몸은 더 편하려고 안간힘을 쓸수록, 예컨대 더 비싼 의자를 사서 오래 앉아 있거나 가까운 곳도 차량을 타고 이동하려 할수록 미래에 더 많은 고통을 얻는다. 사실 매우 비싼 의자를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기업의 의도는 건전하지 않다. 몸이 망가질지언정 비싸고 편안한 의자에 더 오래 앉아 일을 더 열심히 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뒤집으면, 단 하나의 원칙으로 이동성 도메인의 내재역량을 보존하면서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편안함을 얻기 위한 습관을 만들어낼 수 있다. 운동과 이동을 굳이 분리하지 않으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동성 습관은 사회적, 환경적으로도 지속 가능하다.

사람의 근골격계는 ‘내구성과 성능이 좋은 교통기관’으로 설계됐다. 애초에 설계된 보폭과 걷는 속도에 따르면 사람은 1킬로미터를 10분 이내에 걸을 수 있고, 빠른 걸음으로는 7~8분이면 충분하다. 이 정도의 성능이면 서울 시내의 웬만한 도로에서 2킬로미터 이내는 버스나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보다 걸어서 움직이는 것이 더 빠르다. 10층 이하는 걸어서 오르내려도 힘들지 않다. 사람마다 그리고 업무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평과 수직 이동의 기본값을 ‘근육 사용하기’로 만들면 하루에 수백 킬로칼로리를 더 소모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최소한으로 이용하고 수평 이동에는 보행을 최대한 사용할 때, 스마트워치로 자신의 활동을 계산해보면 이것만으로도 하루 400~500킬로칼로리를 소모한다. 굳이 헬스장에 가서 트레드밀을 걷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전혀 몸을 쓰지 않던 사람들은 이동수단으로 몸을 사용하기 위한 내재역량 자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조금씩 습관을 바꿔나가면 점진적으로 성능을 개선할 수 있다.(92~93쪽)

4. 마음건강

노화의 속도를 늦추는 두 번째 기둥은 정서, 인지, 회복을 포함하는 마음건강이다. 인지와 정서의 내재역량을 기르는 방법으로 마음챙김이 있다. 사람의 마음은 모든 행동과 계획의 근원이다. 모든 도메인에 영향을 끼쳐 장기적인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내비게이션 역할도 한다. 그 내비게이션의 설정값이 가속노화의 악순환에서 멀어지게 만들기 위해서는 마음의 엔트로피(entropy)를 가다듬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난 2,500년 동안 인류가 연구한 결과 만들어낸 효과적인 방법이 좌선(坐禪)과 이를 현대적으로 적용한 마음챙김 명상이다. 그리고 마음챙김의 가장 기본은 몸 안팎의 감각이나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다.

마음챙김의 요소로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가 있다. (1) 현재 떠오르는 생각이나 몸 안팎의 감각기관을 통해 느껴지는 여러 가지 정보를 관찰하고 자각하며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명령하기 (2) 이러한 정보들에 대해 옳고 그름 또는 참과 거짓 등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기 (3) 현재 순간에 집중하기

호흡이나 감각에 집중하기 위해 떠오르는 생각을 억제하려고 애쓰지 않는 점이 중요하다. 관찰과 자각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마음이 현재에 머물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훈련은 우울증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끊임없는 과거 기억의 반추나 불안장애에서 문제가 되는 미래에 대한 걱정을 다스리는 효과가 있다. 나아가 2020년대를 사는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준다. 도파민(dopamine) 중독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운 뇌를 되찾기 위한 회복 훈련인 것이다.

마음챙김 훈련도 운동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배우고 실천할 수 있다. 짧게는 5분, 길게는 1시간 이상 호흡에 집중하는 훈련을 매일 습관화하면(공식 수련), 자연스럽게 먹기, 걷기나 집안일 등 여러 가지 일상생활을 하는 과정에서도 그 순간에 집중하는 훈련(비공식 수련)을 하게 된다. 명상을 위한 앱이나 마음챙김 가이드 관련 유튜브 동영상들을 사용해보는 것도 괜찮다. 근력운동의 효과가 정서, 인지, 대사 등의 다른 영역으로 파급되는 데 2~3개월이 걸리는 것처럼, 마음챙김이 광범위한 효과를 발휘하는 데에도 비슷한 시간이 걸린다. 또 충분히 수련하고 나면 그 효과가 1년 이상은 유지될 수 있다.(130~135쪽)

5. 건강과 질병

노화의 속도를 늦추는 세 번째 기둥은 식습관, 건강관리, 의료 등을 포함하는 건강과 질병이다. 노화에 따른 인지기능저하를 예방할 수 있다고 밝혀진 식습관, 일명 ‘머리가 좋아지는 식단’으로는 MIND(Mediterranean-DASH Diet Intervention for Neurodegenerative Delay) 식단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는 여러 만성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지중해식단과 고혈압을 예방하는 DASH(Dietary Approach to Stop Hypertension) 식단의 요소를 합친 것이다.

이 식단에서는 녹색 채소를 비롯한 모든 채소, 견과류, 산딸기류 열매(딸기, 블루베리 등), 올리브오일, 통곡물, 콩류, 가금류, 생선 등의 섭취를 특히 강조한다. 와인은 하루 한 잔까지만 마실 것을 권고하며, 당분이나 정제곡물, 패스트푸드, 붉은 고기, 버터나 마가린, 치즈는 절제한다. 한 연구에서 5년 동안 식단에 따른 인지기능 변화를 관찰했는데, MIND 식단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최악의 식습관을 유지한 사람들에 비해 무려 10년당 7.5년치의 뇌 노화지연 효과가 있었다. 남들은 10년이나 나이 드는 동안 2.5년만 노화했으니, 뇌 노화속도가 4분의 1로 느려진 셈이다.

MIND 식단은 한식으로도 그 요소를 대부분 구현할 수 있다. 콩과 채소, 두부를 많이 먹고 올리브오일을 요리에 충분히 사용하며 소금과 설탕을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잡곡과 현미를 충분히 섞어서 밥을 하면 금상첨화다. 안타깝게도 집 밖에서 만나는 음식들은 MIND 식단과 정반대의 특성을 가진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이 일상에서 바깥 음식을 주로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하루 한 끼 정도는 올리브오일과 분리대두단백(또는 완두단백 등) 셰이크를 마시거나, 올리브오일을 듬뿍(정말 많이 넣어야 한다) 뿌린 샐러드로 끼니를 만들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가속노화 식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단순당과 정제곡물의 비중을 최대한 줄이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식사에서는 가급적 MIND 식단의 요소들로 영양소를 채워보자.(175~176쪽)

6. 나에게 중요한 것

노화의 속도를 늦추는 네 번째 기둥은 ‘나에게 중요한 것’이다. 4M에 관한 계획과 목표 설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메인이다. 이동성, 마음건강, 건강과 질병, 이 세 도메인을 아우를 뿐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과 지향하는 목표에 따라서 각각의 도메인을 어떻게 조율해야 할지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앞으로의 삶의 방식이나 우선순위 등을 전체적으로 조망해보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든 배우고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은 변화하는 세상에서 미래를 살아가기 위한 생존기술이자 내재역량의 밑거름이 된다. 만약 선천적 자질을 타고났더라도 일정 수준에 도달해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려면 지속적인 훈련시간이 상당히 필요하다. 글쓰기든 악기 연주든 관심이 취미를 넘어 경력이 되려면 다음의 결괏값이 일정 수준을 넘어야 한다.

투입한 시간×몰입 정도(시간 밀도)×습득 능력(인지기능)

이 때문에 새로운 능력을 습득하는 여정은 잠재력만을 보고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스타트업이나 기업의 주식에 장기투자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초기에 투입한 노력이나 시간이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고 기량을 갈고닦는 습관과 체계를 유지하면 나이나 바쁜 정도와 무관하게 능력의 포트폴리오를 두텁게 만들 수 있다. 자산 포트폴리오의 작은 일부를 잠재력이 높은 작은 회사에 투자하는 것처럼, 일주일에 2~3시간 정도는 새로운 능력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해봐도 좋다는 의미다.

이러한 방식으로 역량을 관리하다 보면 몰입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 경제적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의 순서가 조금씩 바뀔 것이다. 자산을 관리하듯이 자신의 능력들을 확인하고 우선순위를 조정하다 보면 점진적으로 본업, 부업과 취미가 바뀔 수 있다. 몰입하고 싶으면서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경제적 보상을 끌어낼 수도 있다. 사회경제적으로는 은퇴가 필요 없는 삶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은퇴한 것과 마찬가지로 충만하고 여유 있는 삶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굳이 파이어(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나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처럼 삶의 한 극단을 선택하는 방식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견고한 역량 포트폴리오는 더 고차원적인 욕구 충족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보상회로는 부작용이 적으면서도 충분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건강한 보상회로와 고차원적 욕구 충족이 ‘나에게 중요한 것’의 중심을 잡아주면서 싸구려 자극원에 기댈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저절로 가속노화 요인들을 피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해서 도파민 분비 방식을 바로잡는 삶으로 이어진다. 내적 충만은 외적인 것을 비교하는 마음을 잠재워 쓸데없는 지출을 줄여준다. 결과적으로 더 적게 일해도 경제적으로는 더 풍요롭다. 이렇게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스스로의 4M을 돌보는 데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이 발생한다. 불편하고 번거로워 보이는 공부의 습관이 거대한 보상으로 돌아오는 기전이다. 점차 낙도(樂道)를 즐기는 삶이 완성되는 것이다.(229~231쪽)

노화를 지연시키는 비결은 더하기가 아닌 덜어내기다. 번뇌와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우리를 현혹하는 건강식품과 보조기구 등도 늘리는 것보다 줄이는 것이 내 몸에 득이 될 수 있다. 장기적인 불편을 고려하지 않고 단기적인 편안함을 추구하는 가치관을 바꾸면 소비를 부추기는 자극에도 무뎌진다. 더 높은 안목과 넓은 시각으로 내재역량을 키우면, 사람의 불안과 번뇌를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를 굳건히 지킬 수 있게 된다. 이 책을 통해 당신이 자본주의의 수동적 객체에서 능동적 주체로 바뀌길 바란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성벽과 해자(垓子)를 만드는 것은 부유하고 행복한 미래를 살아갈 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