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황건 '세계사를 바꾼 17명의 의사들'
[장서 산책] 황건 '세계사를 바꾼 17명의 의사들'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2.12.18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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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이식부터 백신 개발까지 세상을 구한 놀라운 이야기

저자 황건은 인하대학교 성형외과 펠로 교수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해부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5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으며, 성형외과학과 수술해부학 분야에 기여한 공로로 2018년 대한민국 과학기술훈장 진보장을 수훈했다.

이 책은 의학 역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17명의 의학자를 주요 진료 과목별로 소개한다. 이 책에 나오는 의사들은 흉부외과, 내과, 응급의학과, 신경외과 등 연구한 분야가 저마다 다르며 살던 시대도 제각각이다. 삶의 궤적도 다양하다.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와 돈을 모두 쟁취한 이들도 있으며, 그러지 못한 이들도 있다. 또한 훌륭한 학문적 업적만큼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도 있지만 잘못된 행위를 한 이들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은 분명하다. 그 시대에 '꼭 필요한 일'을 해냈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병과 바이러스, 수술법의 한계 등 풀리지 않는 문제에 호기심을 품고 과감하게 접근했다.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이 옳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실험에 몰두했다. 선배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를 끈기 있게 검토하고, 스승과 선배, 동료에게 질문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연구와 실험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마침내 난관을 극복하고 의미 있는 발견을 해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들의 치열한 노력과 연구 과정, 삶과 업적에 대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여기에 의사로서의 지난 경험을 되살려 위대한 의사들에 대한 저자 나름의 생각을 덧붙이고 있다.

1. 크리스티안 바너드(Christiaan Barnard, 1922~2001)는 세계 최초로 심장이식 수술에 성공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외과 의사다. 1967년 12월, 55세의 남성환자에게 심장을 이식했다. 환자는 폐렴을 앓다가 18일 만에 죽음을 맞았다. 첫 수술이 끝나고 한 달 후인 1968년 1월 2일, 바너드는 58세의 치과 의사에게 한 두 번째 심장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번에는 환자가 18개월 동안 생존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2. 해럴드 길리스(Harold Gillies, 1882~1960)는 오늘날 '성형외과의 아버지'로 부르는 의사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얼굴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군인을 5,000명 이상 수술했다. 길리스는 노년에도 계속 환자들을 치료했으며, 죽는 순간까지도 수술을 했다. 그는 78세 때 18세 소녀의 다친 다리를 수술하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한 달 뒤에 세상을 떠났다.

아치볼드 매킨도(Archibald McIndoe, 1900~1960)는 영국에서 활동한 성형외과 의사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으로 복무하며 현대 화상 치료의 기반을 마련했다. 화상 환자를 생리식염수로 목욕시키는 방식을 개발하고, 넓은 부위의 화상은 피부이식을 병행해 치료했다. 600명이 넘는 화상 환자들이 매킨도의 손을 거쳐 삶에 대한 열정을 다시 회복했다.

3. 알렉시 카렐(Alexis Carrel, 1873~1944)은 잘린 혈관을 부작용 없이 연결하는 방법을 개발해 19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프랑스의 의사다. 혈관을 정삼각형으로 만들어 꿰매는 '삼각봉합법'으로 장기이식이 가능하게 했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하자 카렐은 독일 나치에 동조하고 인종청소를 정당화한 의사로 학계에서 추방당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파리에서 사망했다.

4. 조너스 소크(Jonas Salk, 1914~1995)는 미국의 의학 연구자이자 바이러스 학자다. 소아마비 백신을 처음 개발해 수많은 어린이의 생명을 구했다. 그는 백신을 개발한 공로로 미국 대통령훈장과 의회 명예황금훈장을 받았다. 소크는 말년에 에이즈 백신을 만들고자 했으나 끝내 완수하지는 못하고 1995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5. 이그나즈 제멜바이스(Ignaz Semmelweis, 1818~1865)는 헝가리의 산부인과 의사다. 19세기 산모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던 산욕열의 원인을 발견해 '어머니의 구세주'로 불린다. '손 씻기'로 대표되는 소독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알렸다. 제멜바이스는 말년에 알츠하이머형 치매를 앓다가 1865년 정신병원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감염 예방법까지 제시한 제멜바이스의 논문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6. 도미니크장 라레(Dominique-Jean Larrey, 1766~1842)는 나폴레옹 군대의 수석 군의관을 지낸 외과 의사다. 인류역사상 최초로 구급차를 고안했으며, 부상이 심각한 환자를 빠르게 치료할 수 있는 분류법을 만들어 '응급의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나폴레옹이 죽고 나서도 라레는 계속 군의관으로 일하다가 76세에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인들은 라레의 이름을 개선문에 새겨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7. 카를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 1868~1943)는 오스트리아의 병리학자다. 사람의 혈액형을 처음으로 분류해 10억 명 이상의 생명을 구했다. 그 공로로 193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8. 프레더릭 벤팅(Frederick Banting, 1891~1941)은 캐나다의 내과 의사다. 당뇨병 치료의 핵심인 인슐린을 세계 최초로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인술린 주사를 개발한 공로로 193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9. 윌리엄 보비(William Bovie, 1882~1958)는 미국의 과학자이자 발명가다. 근육의 수축을 일으키지 않고 조직을 자를 수 있는 고주파를 이용해 '보비'라고 불리는 전기수술기를 만들었다. 획기적인 수술 도구를 발명했는데도 돈에 관심이 없었던 보비는 그가 개발한 장치의 특허권을 의료기기 회사에 단돈 1달러만 받고 팔았다. 그래서 그는 만년에 가난하게 살았다.

10. 우지 다쓰로(Tatsuro Uji, 1919~1980)는 일본의 외과 의사다. 일본의 광학기기 회사인 올림푸스사와 협업해 사람의 위장 내부를 촬영하는 소형 카메라를 개발했다. 이는 위내시경의 상용화를 앞당겼다.

11. 게르하르 한센(Gerhard Hansen, 1841~1912)은 노르웨이의 의학자다. 1879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나균을 발견했다. 오랫동안 유전되는 병이라 여겨지던 나병이 감염병이라는 것을 알렸으며, 환자를 격리하고 소독하는 치료 방법을 제시했다.

12. 윌리엄 모턴(William Morton, 1819~1868)은 미국의 치과 의사다. 1846년 외과 수술에 에테르 마취제를 사용해 성공했다. 이 마취제의 특허권을 두고 여러 의사들과 기나긴 소송을 벌이다가 생을 마쳤다.

13. 존 헌터(John Hunter, 1728~1793)는 영국의 외과 의사다. 많은 동물을 해부하고 표본을 수집해 외과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 1749~1823)는 존 헌터의 제자이자 영국의 의사다. 세계 최초로 천연두 백신을 만들고 '종두법'을 시행했다. 제너는 누구나 백신을 사용하도록 특허를 내지 않았다. 1980년 세계보건기구는 천연두 종식을 선언했다.

14. 와일드 펜필드(Wilder Penfield, 1891~1976)는 미국의 신경외과 의사다. 환자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뇌수술을 거듭한 결과를 바탕으로 뇌가 우리 신체의 어느 부위를 얼마만큼 관장하는지 보여주는 지도인 '뇌 난쟁이 지도'를 완성했다.

15. 빌헬름 뢴트겐(Wilhelm Röntgen, 1845~1923)은 독일의 실험물리학자다. 음극선을 연구하다가 검은 종이, 나무 조각 등의 불투명한 물체를 투과하는 방사선을 처음 발견했다. 이 방사선의 정체는 엑스선으로, 오늘날에도 의료 분야에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뢴트겐은 평생 부유한 적이 없었다. 1919년에는 모든 일자리에서 은퇴했는데, 당시 전 세계에 닥친 경제대공황으로 생활고를 겪다가 1923년 뮌헨에서 78세에 세상을 떠났다.

전 세계에 퍼진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우리 사회에서 의사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인류에 기여한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은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이 되려는 청소년뿐 아니라, 의학과 관련된 생명과학이나 의공학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유익한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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