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클로드 안쉰 토머스 '조금 더 일찍 당신을 만났더라면'
[장서 산책] 클로드 안쉰 토머스 '조금 더 일찍 당신을 만났더라면'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3.01.0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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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삶의 또 다른 기회로 만든 사람의 이야기

저자 클로드 안쉰 토머스는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로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어 항공훈장과 공군수훈십자훈장을 비롯한 수많은 훈장과 상을 받은 전쟁 영웅이다. 전쟁에 대한 심각한 트라우마로 죽음 직전까지 갔던 그는 비영리 기구인 'Zaltho Foundation'을 창립해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각 곳에서 평화와 비폭력에 대한 강연 및 순례 활동을 하는 명상수행자로 거듭났다. 역자 황선효는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요가의 길>, <요가·영혼의 과학>, <아티샤의 명상요결>, <초생명 공동체> 등을 번역했다.

저자는 열일곱 살에 미 육군에 입대했고, 베트남 복무를 자원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직접 가담했던 저자는 훈장을 달고 명예롭게 제대하여 고향으로 돌아오기 직전까지 그런 살육을 멈출 줄 몰랐다. 하지만 전쟁으로 산산이 부서진 마음을 발견하고, 정당화될 수 있는 살인이란 없으며 올바른 폭력과 그릇된 폭력에도 별다른 차이가 없고, 전쟁이란 단지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비롯되어 나오는 행위일 뿐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저자가 이러한 이해에 도달하고, 살생하지 말라는 불교의 첫 번째 계율을 받아들이기까지는 노숙자 생활, 교도소에서 명상을 가르치는 일, 보스니아와 아프가니스탄, 아우슈비츠와 캄보디아에 이르는 전쟁으로 파괴되고 상처 입은 세계 각지를 순례하는 길고 힘든 여정이 필요했다.

이 책의 목차는 '머리말 - 한 병사의 기도, 1. 전쟁의 씨앗, 2. 촛불, 3. 마음챙김의 종소리, 4. 다리를 폭파했다면 다시 지어라, 5. 그저 걷기, 6. 평화를 찾아서, 부록 - 명상수행의 시작, 감사의 말'로 되어 있다.

1. 마음챙김

불교와의 만남은 내 생각과 느낌과 지각의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주의할 수 있는 의식적인 삶을 가르쳐 주었다. 이런 삶의 방식을 정의하는 용어는 마음챙김(mindfulness)이다.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서, 마음챙김은 내가 깨어나서 고통과 파괴의 순환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주의깊게 깨어 있는 삶을 사는 것은 사실 새로운 방법이 아니다. 이 가르침은 2천6백 년 이상 존재해 왔다. 물론 그것은 부처님께서 명백히 팔정도(八正道)의 하나로 가르치셨지만, 불교의 가르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챙김은 모든 영적 가르침의 핵심을 표현하고 있고, 모든 영적 가르침의 핵심은 마음챙김이다. 마음챙김은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에 온전히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온전히 살 수 없도록 자꾸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강력한 수행법들을 제시하셨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는 호흡을 의식하는 것이다.(86~87쪽)

2. 호흡 알아차리기

내가 현재에 머물 수 있도록 해주는 방법 중의 하나는 호흡 알아차리기다. 그저 숨을 쉬면서 내가 숨을 쉬고 있음을 의식한다. 자기의 호흡을 온전히 의식한다면 현재가 아닌 다른 곳에는 있을 수 없다.

여러분은 스스로 이것을 경험해보고 알 수 있다. 지금 시도해 보라. 편안히 앉아 배에 손을 얹어라. 숨을 들이쉴 때 배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껴라. 숨을 내쉴 때 배가 수축되는 것을 느껴라. 들이쉬고… 내쉬고… 생각의 흐름에서 당신의 호흡으로 중심을 이동하라.

마음이 산란해진다면, 그 산란함은 여러분을 호흡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부드럽고 고요한 종소리라고 생각하라. 하나하나의 의식적인 호흡과 함께, 여러분은 현재의 순간에 살고 마음챙김 속에서 사는 능력을 연마하고 있음을 알라.(88쪽)

우리의 마음은 상념, 과거와 미래의 영상, 꿈, 희망, 후회 등으로 쉽게 산만해진다. 프랑스의 플럼빌리지에 살면서 나는 하나의 종을 이용해 호흡으로 돌아오도록 일깨우는 수행을 배웠다. 그것이 마음챙김의 종소리다. 주지 스님의 말씀을 듣거나 우리가 수행하는 도중에는 드문드문 종소리가 울린다. 그 종소리는 호흡으로 돌아오라는 신호다.(90쪽)

3. 그저 걷기

순례 여행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왜 걷습니까? 그 목적이 뭡니까?"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저 걷기 위해서 걷습니다."라는 대답으로 응수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불합리하고 아주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순례 수행의 본질은 그저 걷기 위해서 걷는 것이다. 내게 어떤 계획이나 목적이 있다면, 미지의 삶은 나의 인도자가 될 수 없고 나는 진실로 현재에 있을 수 없다. 만약 내가 목적을 성취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면, 삶이 지금 나에게 주는 온갖 풍요로움과 부를 볼 수 없다.

아우슈비츠에서 베트남으로의 순례에서 나는 평화를 행하고 평화가 되기 위해서 걸었지, 평화라는 목적을 위해서 걸은 것이 아니다. 만약 내게 평화에 대한 어떤 고정관념이 있었다면, 결코 그 여정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평화는 하나의 관념이나, 정치적 운동이나, 이론이나 교리가 아니다. 평화는 삶의 방식이다. 마음챙김을 가지고 현재를 살고, 하나하나의 호흡을 즐기는 것이다. 평화는 하나의 과정이며, 매 순간 새롭고 신선하다.

걷는 동안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한다. 내 이야기는 치유에 관한 것이고, 그 치유가 어떻게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가에 대한 것이다. 자신이 치유될 때, 그 치유는 수면에 번져나가는 파문처럼 가족과 사회에 퍼지기 시작한다. 나 자신이 이런 영향을 직접 실천해야 했다. 이 순례의 물결은 곧 다른 물결을 일으킬 것이다.(149~150쪽)

우리는 누구나 즐겁고, 조화롭고, 만족스럽고, 손쉬운 행복을 원한다. 하지만 반대로 삶은 좌절과 불만족, 불완전과 슬픔을 안겨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과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고통이며 이 고통과 화해하는 것만이 궁극적으로 폭력을 종식시키고 평화롭게 세상을 사는 유일한 길이다. 이 책은 폭력에 시달리는 중에도 뭔가 다른 것, 곧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베트남을 가지고 있다. 저마다 자신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우리 함께 이 전쟁을 종식시키고 진실로 평화롭게 살기 위한 순례 여행을 떠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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