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윤화영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장서 산책] 윤화영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2.11.2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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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윤리의 미완성

저자 윤화영은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경제학사). 미국 University of Texas(Austin) 정치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고(정치학 석사), 같은 대학에서 철학과를 졸업하였다(철학 박사). 현재 평택대학교 교양학부(피어선 칼리지) 교수 및 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나라가 채택한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가 전통적인 봉건사회 윤리 체계나 공산주의 체계보다 더 우수하다고 주장한다.

목차는 ‘Ⅰ. 윤리와 한국 사회, Ⅱ. 서구적 가치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자본주의), Ⅲ. 유교 중심의 전통적 윤리와 사고, Ⅳ. 사회주의적 가치관과 행동 양식’으로 되어 있다.

책의 내용 중에서 ‘자유민주주의사회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개인적 윤리’(114~117쪽)와 ‘자유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262~267쪽)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1. 자유민주주의사회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개인적 윤리

(1) 자유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모든 시민의 독립적 사고를 요구한다. 이것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판단해서 영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윤리는 계약론으로부터 볼 수 있다. 사람을 스스로 판단해서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 독립적 사고를 개인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빈번히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혼동하는데 개인주의는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며 살아가는 삶의 기본자세를 의미한다.

(2) 자유민주주의는 구성원들이 자신들에게 어느 정도의 자존심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스스로 독립적이며 자기 삶을 영위해갈 수 있는 존재이므로, 마땅히 자존심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조건 나의 존재감을 강요하거나 지나친 우월감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예의를 갖추고 양보하거나 상대를 존중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한 가치를 깨닫고 마음 깊이 자신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태도는 다른 사람들의 자존심을 존중해주는 것과 통한다.

(3) 모든 자유의 행사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때로 몹시 힘든 결과를 감당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 누군가가 나의 책임을 대신 져주기를 바라는 것 등의 책임 회피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모든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능력의 평등이 있다고 전제함으로써 모두가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는 것이고 또한 동일하게 자유가 부여되는 것이다. 자유의 행사에 책임을 진다는 것 역시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는 자율적 인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4) 나의 자유와 함께 타인의 자유도 보장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내 자유를 무제한으로 주장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한다. 무제한의 자유를 허용하는 경우는 혼돈스런 약육강식을 조장하는 것과 같게 되고,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게 된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하에서는 상호간 자유의 보장과 나아가 질서를 존중하는 시민들의 자세가 필요하다.

(5) 자유민주주의 제도는 기본적으로 권리와 의무로 구성되어 있다. 그 누구도 무한의 권리나 의무를 질 수 없다. 따라서 각 개인에게 무한의 선행을 요구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된다. 의무는 아니지만 선행을 베푸는 것을 의무초과라고 하는데,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의무초과 행위를 강요할 수 없다.

(6) 자유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이 갖추어야 하고 존중해야 하는 덕성들은 동등한 존재로서 타인의 권리와 의무 존중, 나아가 인격 존중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잘 지켜진다고 할 수만은 없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시민들을 강자와 약자로 구분하고 약자에게는 원천적으로 더 많은 권리를 부여한다는 사고가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평등하지 않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권리와 의무도 평등하게 배부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적 사고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일시적으로 상대적인 약자가 있을 수 있고, 자유민주주의에서는 법으로 그들을 보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약자라고 규정하고 처음부터 더 많은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신분제적 사고 방식과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자유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

(1) 첫째, 자유민주주의 제도는 시민들의 선택과 결정에 의해 운영되는데, 시민들이 현명한 선택과 결정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항상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사회의 전문가 집단들이 좋은 의견을 제시해서 시민들의 결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시민들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1933년 독일 시민들이 나치당을 집권하게 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종식시킨 사건이 있었다.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 정도의 방법이 있다. 우선 전문가 집단의 조언이나 경고를 무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치, 경제, 기타 전문적 지식을 별것 아닌 것 같이 무시하거나 특정 전문가들의 의견이 정부정책과 맞지 않는 경우 그 전문가들을 온갖 명목으로 매도하여 전문가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물론 그런 전문가들에게는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공포심을 심어주기도 한다. 여기에 동조되는 시민들은 향후 전문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고 교활한 선동가의 말을 더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엉터리 전문가들도 다수 등장시켜 이말 저말 하게 함으로써 전문적 지식의 중요성을 믿지 않게 만든다.

그 다음으로는 언론의 자유 등 시민들의 자유를 점차 축소시켜 나간다. 명목상 이유는 많다. 그런 방법으로 선동가를 지지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전문가 또는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다. 정신 차리지 못하는 일부 시민들은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처럼 모든 사안의 옳고 그름과 호불호를 선동가 집단의 지시에 따르게 되는데 그때쯤이면 실질적 자유민주주의는 이미 끝나있는 것이다.

(2) 둘째,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 의존성과 의타심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자유민주주의는 스스로 독립적으로 살라고 말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고 있으므로 완전한 독립을 권고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삶에서 중요한 결정과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 의식이 크게 강조되지 않았다. 과거의 신분제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지시받은 대로 또는 관습대로 살면 되었다. 그런 삶이 어떤 이들에게는 더 편할 수 있다. 그러나 개개인이 주권자인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제도나 이념이 스스로 삶을 책임지도록 요구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삶을 책임지는 교육을 해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그런 교육이 약하다. 요즘은 특히 이런 교육을 가정에서 담당하려 하지 않고 유치원이나 학교에 미루고 있는데, 교육기관에서는 이런 교육을 중시해서 책임 있게 가르치지도 않는 것 같다. 겉으로는 화려한 교육과정을 가지고 있지만 막상 쓸 만한 시민을 양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엄격히 말하면, 가정이나 교육기관 또는 사회에서 어떤 정신을 가르쳐야 할지 잘 몰라서 과거 유교정신으로 회귀하거나 오히려 아이들에게 맡겨버리듯 방치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외국어를 잘하고 특정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삶의 바른 자세를 갖지 못하면 모두 쓸데없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바른 생각과 독립심 없이 양성된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정부 또는 사회가 나의 삶과 복지를 책임지라고 떼쓰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런 행동은 사회의 주권자이며 깊은 잠재력을 가진 시민이 할 행동이 아니다.

의존성과 의타심이 많은 채로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비대한 정부를 선호하게 된다. 정부가 만기친람식으로 사회의 모든 일과 개인사까지 관여하려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개인의 자유는 상당히 위축된다.

정치권에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없고 국민들은 스스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손쉽게 포기하면서 정부가 베풀 수 있는 물질적 혜택에만 관심을 둔다면, 자유민주주의가 독재 전체주의로 바뀌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주인은 국민이고 주인에게는 항상 책임과 행위의 결과가 뒤따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는 이상향을 실현하려는 도구가 아니라 예상치 못하게 닥쳐오는 불행들을 대처할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이 책임을 갖고 협력의 장에 참여하게 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어떤 결과가 닥쳐도 각 개인이 일차적으로 책임을 지게 된다. 사람 하나하나가 사회협력의 일원이자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꿈꾸는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를 꽃피우려면 단순히 제도가 아니라 문화와 윤리로 받아들여서 실천하고 성찰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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