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70) 감자와 감자꽃
[꽃 피어날 추억] (70) 감자와 감자꽃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2.07.01 2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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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꽃을 보고 땅속의 감자색을 짐작하였다.
감자 수미의 흰꽃. 유병길 기자

 

1950년 ~60년대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의 모내기 적기는 하지 전 삼일 후 삼일이었다. 하늘에서 비가 올 때까지 감자를 캐지 않고 비를 기다렸다. 비가 오려 하면 감자를 캤고 비가 오면 모를 심었다. 7월 하순이 넘어가면 대파로 조(서숙)을 파종하였다.

집 집마다 봄에는 감자를 많이 심었고 보리를 베고 고구마도 많이 심었다. 여름에는 감자, 겨울에는 고구마를 밥 대용으로 많이 먹고살았다. 봄이 되면 일찍 감자심을 논에 퇴비를 내고 갈고 이랑을 만들었다. 눈이 움푹 들어간 재래종 자주색 감자의 눈을 중심으로 1개의 감자를 3~4쪽으로 잘랐다. 자르는 칼은 수시로 화롯불에 넣어 소독하여 전염병의 전염을 막았다. 조상님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감자 쪽 뒤에 흰 살이 많은 쪽은 조금씩 잘라 아침 밥솥에 넣어 먹었다. 자른 감자 쪽은 나뭇재에 버무려 자른 면의 물기를 빨리 마르게 소독하였다. 이랑에 호미로 구덩이를 파고 씨감자 한쪽씩 넣고 흙을 덮었다. 감자 싹이 올라오면 수시로 감자밭의 풀을 매었다. 6월 초순 보리를 베며 비가 오기 전에 감자도 캤다. 비가 오지 않고 가뭄이 계속될 때는 조금씩 캐어다 먹었다. 감자는 늦게 캐어야 수량이 많았다. 비가 온 후에 감자를 캐면 빨리 썩어서 비 맞지 않고 캐려고 하였다. 보리타작, 모내기할 때 참으로 감자를 볶아서 먹었다. 집집마다 감자 껍질을 벗기는 헌 숟가락이 있었다.

재래종 감자 같이 짙은 자주색 감자는 찾을 수가 없었다. 유병길 기자

 

씻은 자주색 감자를 항아리에 넣고 헌 숟가락으로 껍질을 벗겼다. 어느 정도 양이 되면 무쇠솥에 들기름을 바르고 감자를 넣고 솥뚜껑을 덮고 불을 때었다. 조금 후에 솥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찔러서 들어가면 감자가 익었다. 솥에 닿은 쪽은 노릇노릇하거나 검게 탄 곳도 있었는데 단단하고 바삭바삭하여 맛이 있었다. 일하는데 참으로 가져가면 별미로 먹었다. 식구끼리 있을 때도 감자를 볶아서 점심, 저녁으로 많이 먹었다. 처녀들은 친구 집에 모여서 수를 놓거나 삼을 삼을 때도 감자를 참으로 볶아 먹었다. 재래종 자주색 감자는 맛은 있으나 수량이 적었다. 비를 맞아 썩는 감자는 큰 항아리에 담고 물을 부어 썩혀서 전분 가루를 만들었는데 감자 썩는 냄새는 고약하였어도 전분 가루로 요리를 하면 매끈매끈하고 맛이 있었다.

감자 수미의 수확 장면. 유병길 기자

 

감자는 우리나라에서 벼, 보리, 콩, 옥수수와 함께 국가 5대 작물로 지정되어 대관령 원종장에서 씨감자를 생산 보급하고 수확 후 저장까지 관리되고 있는 식재료다. 70년대 후반에 미국산 감자 수미가 보급되면서 수량도 많고, 맛도 있어서 재래종 감자는 사라졌다. 재래종 자주색 감자는 꽃의 색이 붉은색이었다. 수미는 흰색 꽃이 피어 처음에는 꽃을 보고 땅속의 감자가 자주색 재래종인가 흰색 수미인가를 구분하였다. 요즘은 어디를 가도 흰 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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