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66) 망종과 보리
[꽃 피어날 추억] (66) 망종과 보리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2.06.0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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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종은 보리 밀이 익어 수확하고, 모내기 하는 시기여서 바쁜 농사철이다.
망종이 가까워 지면서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 유병길 기자 

 

1972년 통일벼를 처음 재배하기 전까지는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 상주시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논밭에는 보리와 밀을 재배 이모작을 하였다.

망종(6월 6일)은 이십사절기 중 아홉 번째 절기로 “맥류(보리, 밀)의 회갑”이라는 말이 있고, “보리는 망종 전 삼 일, 후 삼 일에 거두라”는 말이 있었다. 이모작을 하기 위해서는 망종 때 일찍 보리를 베어야 논에 모내기를 빨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익어가는 산딸기와 오디. 유병길 기자

 

보리가 누렇게 익어 갈 때 뽕나무의 오디가 까맣게 익었고, 뒷산의 딸기도 붉게 익어 아이들은 오디, 딸기를 따 먹으며 허기를 달랬었다.

양식이 떨어져 먹을 것이 없어 힘든 농가는 양지바른 논둑 밑에 먼저 익어 누른빛이 나는 보리 이삭을 잘라 다래끼에 담아왔다. 막 때기로 두드려 타작하여 큰솥에 풋보리를 넣고 소금을 조금 넣어 불을 때어 주걱으로 저으며 보리를 말렸다. 디딜방아로 찧어 떡 보리쌀을 만들어 보리밥을 짓거나 죽을 끓여 먹었다. 보리를 수확하여 햇보리 밥을 먹게 되면서 배고픔의 고통을 주었던 보릿고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논에서는 모내기가 시작되는 시기이므로 농사철 중에서 이때가 가장 바쁘고 힘든 시기였다.

상주지역에서는 망종이 지나야 보리가 익었다. 망종을 지나면 보리 밀 이삭이 누렇게 익었고, 그냥 이삭이 마르기 시작하여 보리 베기를 하였다. 논보리는 베면서 보릿단을 묶어 논둑에 세워 말렸다. 비가 오면 모내기를 먼저 하였으나, 비를 맞은 보릿단에는 파랗게 보리싹이 올라와서 피해가 컸다. 비가 제대로 오지 않아 모내기를 못 하면 비를 기다리면서 보리를 타작하였다.

보리 밀 타작도 벼 타작과 같이 보릿단을 끈으로 묶어서 ‘챗돌’에 때려서 탈곡하거나, 도리깨로 때려 탈곡하였다. 보리타작할 때 살구나무의 떡 살구가 누렇게 익었다. 도리깨질하려고 보리를 마당에 가득 펴놓고 살구나무를 흔들면 보리 위에 떨어져 살구가 깨지지 않았다. 살구를 주어 허기를 달래며 도리깨질을 하였다.

 

족동식 탈곡기(발로 밟는 탈곡기)는 일제 강점기 때 소개되었다. 가격이 비싸서 6.25 전쟁 후에도 가지고 있는 집은 귀하였으나, 60년대 보급이 많아 보편화되어 그나마 쉽게 타작을 할 수었었다.

손 모내기하는 모습. 유병길 기자

상주지역은 72년 통일벼 재배 첫해에 수량이 두 배로 생산되는 성공을 거두었다. 73년도 통일벼 종자를 구한 농가는 일모작으로 일찍 통일벼를 심기 위하여 지난 가을에 파종한 보리를 갈아엎고 통일벼 재배를 확대하여 농가 소득이 오르게 되었다. 70년대 후반 상주에서는 논보리를 구경할 수 없을 만큼 통일벼 재배면적이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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