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스즈키 유 '무, 최고의 상태'
[장서 산책] 스즈키 유 '무, 최고의 상태'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2.06.0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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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통증에 항복하는 삶의 기술

이 책의 목적은 우리의 불안과 걱정을 깨끗하게 지우고, 마음속에 내재된 가능성을 되돌리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목차는 ‘여는 글, 프롤로그 고(苦), 1장 자기(自己), 2장 허구(虛構), 3장 결계(結界), 4장 악법(惡法), 5장 항복(降伏), 6장 무아(無我), 에필로그 지혜(智惠), 닫는 글’로 되어 있다. 2장과 6장, 에필로그를 중심으로 책의 내용을 요약한다.

1. 인간의 뇌는 이야기 제조기

인간의 뇌가 이야기 제조기라는 견해는 최근 신경과학 분야에서 자주 거론된다. 예전의 발상과는 달리 우리의 뇌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탄생한 기관이라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쳐 현실을 체험한다.

(1) 주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 사전에 뇌가 이야기를 만든다.

(2) 감각기관이 받아들인 영상과 소리 정보를 뇌가 만든 이야기와 비교한다.

(3) 뇌가 만든 이야기와 다른 부분만 수정해 현실을 만든다.

테니스를 예로 들어보면 상대가 서브를 넣기 위해 공을 위로 던져 올린 순간부터 뇌는 차례차례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과거에 상대가 넣은 서브와 같은 속도로 공이 온다, 공의 상승 속도가 평소보다 빠르기 때문에 상대는 실수를 한다, 손목이 오른쪽을 향했으므로 공은 코트의 오른쪽 구석에 닿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바탕으로 뇌는 사전에 현실을 시뮬레이션하고, 그 예측에 따라 선수는 실제 공보다 빠르게 신체를 움직일 수 있다. 그 능력이 없다면 날아오는 공을 받아낼 수 없다.

이런 사고를 이야기라고 부르는 것에 위화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이야기는 영화나 소설 같은 픽션의 스토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양한 이야기의 공통점을 생각해보면 최종적으로는 어느 것이든 ‘어떤 일의 인과관계를 설명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상대 선수가 던져 올린 공에서 만들어지는 무수한 예측 또한 이야기의 원시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77~80쪽)

2. 무아(無我)를 이끌어내는 방법

우리를 괴롭히는 이야기에서 자신을 완전히 분리하여 본격적으로 자기를 해체하는 방법으로는 ‘정지(停止)’와 ‘관찰(觀察)’이 있다.

(1) 정지

정지란 뇌의 자원을 다른 무언가에 사용하여 이야기의 제조 기능 그 자체를 멈추게 만드는 방법이다. 그 대표적인 방법으로 가장 유명한 것이 영창이다. 영창이란 예배의 기도문을 일정한 리듬과 절에 맞춰 노래하는 종교의식의 하나로 짧은 성구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패턴과 성가처럼 복잡한 구성의 악곡까지 여러 종류가 존재한다. 절에서 외우는 축문이나 염불도 영창의 한 종류이다.

영창과 정지의 관계는 2000년대 후반에 들어 분명해졌다. 바이츠만 과학연구소의 연구에서는 건강한 남녀에게 ‘원(ONE)’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고 반복시킨 결과 안정 상태의 기초선과 비교하여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 Default Mode Network, 멍한 상태이거나 몽상에 빠졌을 때 활발해지는 뇌의 영역)의 활동량이 떨어지고 자기에 관련된 이야기의 양도 유의미하게 줄어드는 경향이 보였다.

DMN은 우리가 무언가를 하지 않을 때 활동을 시작하는 신경회로로 전전두엽(MPFC)과 전방대상피질(ACC) 같은 폭넓은 영역에 구성되어 있다. 멍하니 상상을 펼치고 있을 때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두서없는 생각에 몸을 맡기고 있을 때 등 뇌가 의식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여러 가지 정보를 정리하여 새로운 발상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네트워크이다.

영창과 비슷한 사례로 음악도 비슷한 작용을 한다. 같은 음계나 가사를 반복하는 것이 역시 영창과 비슷한 효과를 일으키고, DMN이 만들어내는 자기의 감각을 지우기 때문이다. 같은 가사나 구절의 반복에 몸을 맡기면 사고의 마비가 일어나 그 곡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레고리 성가의 울림에 마음이 안정되거나 독경이나 축문의 음률에 장엄한 기분이 드는 등의 경험을 해본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 뇌 안에서는 DMN이 진정되고 원래는 자동적으로 움직일 것이 분명한 이야기가 기능을 멈춘다. 우리는 이야기의 자동 발생만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자기에 관련된 기능 전체를 멈추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정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이다.(230~237쪽)

(2) 관찰

관찰은 문자 그대로 자신의 뇌에 떠오른 이야기를 가만히 바라보는 작업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일을 망친 과거의 이미지, 거짓말을 들킨 후의 부끄러운 감정, 돈이 부족해 미래가 불안해질 거라는 걱정 등 모든 부정적인 이야기를 과학자가 된 것처럼 계속해서 관찰하는 것이 기본 방법이다. 어쩐지 어려워 보이지만 관찰의 감각 그 자체는 누구나 바로 느낄 수 있다. 시험 삼아 긴장을 풀고 앉아 다음의 단어를 소리를 내지 않고 읽어보자.

사과, 생일, 해안, 자전거, 장미, 고양이

단어를 읽을 때 자신의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사과나 고양이의 이미지가 그대로 떠올랐을지도 모르고, 생일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것 역시 상관없다. 이 실험의 포인트는 극히 평범한 단어에 자신의 내면이 어떤 반응을 했는지를 깨닫는 것이다. 단어를 반복해서 다시 읽어보며 뇌 안에 어떤 이미지나 생각이 떠오르는지 바라보는 과정이 바로 관찰이다.

이런 작업에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관찰의 원리를 사용한 방식은 기원전부터 세계 각지에서 사용되어온 정신 수양 방법의 하나로, 선종에서 사용하는 좌선, 원시불교의 위파사나 명상, 기독교의 묵상, 고대 인도의 요가, 힌두교의 디야나 등 다양한 종파에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다양한 종교의식에 같은 특징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많은 종파에 ‘그저 관찰한다’는 방식은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관찰의 과학적 연구가 진행되었다. 존스홉킨스대학교 등의 연구팀에 따른 메타 분석에서는 좌선과 명상에 관련된 과거의 연구에서 3,515명의 데이터를 정리하여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관찰하는 훈련을 8주간 계속하면 불안과 우울 증상에는 0.3, 통증에는 0.33의 유효량이 있다고 보고했다. 유효량은 관찰 방식을 수식으로 환산한 것으로 0.3포인트라는 수치는 일반적인 약물 치료에 상당하는 수준이다. 약을 사용하지 않고 동등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관찰 훈련은 뇌의 ‘나’에 관련된 영역에 변화를 일으키고, 이를 통해 정신의 개선 및 집중력과 기억력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238~240쪽)

3. 무아는 우리를 어떤 인간으로 만들까?

(1) 행복도의 상승

더비대학교 등의 조사에서는 관찰 훈련이 불안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행복도 역시 상승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는 일본, 태국, 네팔 등에서 평균 25년에 걸쳐 매일 명상을 지속한 승려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당연하지만 실험 전 단계에서부터 이미 전원이 높은 행복도와 지혜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2) 의사결정력의 향상

무아에 다다른 사람들은 의사결정 능력도 높아진다. 프랑스의 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 조사에서는 관찰 훈련에 관련된 90건의 선행 데이터를 정리하여 훈련을 지속한 사람에게서만 보이는 특징을 다음과 같이 뽑아냈다. ① 객관적인 판단이 뛰어나다. ② 정보처리의 질이 높다. ③피드백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3) 창조성의 상승

명상 숙련자를 조사한 라드바우드대학교의 연구에서는 훈련 기간이 긴 사람일수록 불안과 슬픔을 느끼기 어렵고, 경험에 대한 개방성도 높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경험에 대한 개방성은 인간의 성향 분류 중 하나로, 수용적이고 호기심이 강하며 감정에 민감한 성질을 가리킨다. 이 성질을 가진 사람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창조성이 높은 아이디어를 쉽게 떠올린다는 것이 밝혀졌다.

(4) 휴머니즘의 향상

휴머니즘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주는 태도를 가리킨다. 무아에 이른 사람일수록 이 태도를 강하게 가지고 있고, 자신과 의견이 다른 그룹에게도 너그러운 자세로 대하는 특징이 있다.

무아에 이른 인간의 뇌는 애초에 자기가 없기 때문에 세계를 자기와 그 이외의 것으로 나누지 않는다. 그렇게 자신과 타인의 구별이 사라져 하나가 된 것 같은 감각을 느끼고 거기에 커다란 안정감과 휴머니즘이 싹튼다.(277~283쪽)

괴로움은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강해지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무(無)’의 기술을 배워 괴로움에 항복해야 한다. 우리를 괴롭히는 뇌로부터 자신을 완전히 분리하여 본격적으로 자기를 해체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방법들을 통해 무아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무한한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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