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하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장서 산책] 하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2.05.08 09: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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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매 득도 에세이

저자 하완(송하완)은 그림으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터레이터이다. 글을 쓰는 에세이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홍익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어떤 직업을 택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3년을 지낸 후에, 선배의 권유로 편집 디자인 회사에 취업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회사에 다니며 일러스터레이터로 투잡을 뛰었다. 열심히 사는데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한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가 됐다. 그렇지만 그림 의뢰도 거의 없고 결정적으로는 그림 그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놀고먹는 게 주된 일이 됐다. 이제야 적성에 맞는 일을 찾게 되어 더욱더 게으르게 살다 보니 열심히 살지 않는데 도가 텄다. 특기로는 들어오는 일 거절하기, 모아놓은 돈 까먹기, 한낮에 맥주 마시기 등이 있다. 다수의 책에 그림을 그렸고, 쓰고 그린 그림책도 한 권 있지만 굳이 밝히지 않겠다고 한다.

저자가 굳이 밝히지 않겠다고 한 저서와 그림책은 다음과 같다. <가시 소년>(권자경 글/하완 그림), <지구촌 아름다운 거래 탐구생활>(한수정/송하완),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 탐구생활>(이기규/하완), <노경실 선생님이 들려주는 어린이 탈무드>(노경실/송하완), <과학이 해결해주지 않아>(장성익/송하완), <자본주의가 쓰레기를 만들어요>(장성익/송하완), <교통사고를 조심해!>(최옥임/송하완), <저는 측면이 좀 더 낫습니다만>(하완), <어린이에게 일을 시키는 건 반칙이에요>(장성익/송하완), <괴롭힘은 나빠>(고정완, 나누리/송하완), <응급처치가 필요해!>(최옥임/송하완), <누가 행복한지 보세요>(장성익/송하완), <도담이와 무지개 도깨비>(서지원/송하완), <왜 너희만 먹는거야?>(장성익/송하완), <혼자라서 지는 거야>(장성익/하완), <나 혼자 해볼래 운동하기>(권자경/송하완), <최소한의 밥벌이>(곤도 고타로/하완), <2021 작심삼일력>(하완), <나도 학교 가기 싫어>(송하완).

목차는 ‘1부. 이러려고 열심히 살았나, 2부. 한 번쯤은 내 마음대로, 3부. 먹고사는 게 뭐라고, 4부. 하마터면 불행할 뻔했다’로 되어 있다. 저자가 야매(가짜)로 득도한 내용을 몇 가지 소개한다.

1. 노력

우리가 지금 괴로운 이유는 우리의 믿음, 즉 ‘노력’이 우리를 자주 배신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어라 열심히 노력하는데 고작 이 정도고, 누구는 아무런 노력을 안 하고도 많은 걸 가져서다. 분명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배웠는데, 또 노력하면 다 이룰 수 있다고 배웠는데 이상하다. 뭔가 속은 것 같다. 잘못 살아온 것만 같다. 그렇다고 노력을 멈출 수도 없다. 노력하지 않으면 그나마 지금 정도도 유지하지 못할 것 같다. 어떻게 사는 게 맞는지 알 수 없어서 괴롭다.

왜 노력이 우리를 배신하는지, 그럼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어도 난 답을 알지 못한다. 다만 괴로움을 줄이는 법은 안다. 분하지만 ‘인정’해버리는 것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고, 노력한 만큼 보상이 없을 수도, 노력한 것에 비해 큰 성과가 있을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괴로움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다.(21쪽)

2. 열정

세상은 우리에게 열정을 가지라고 강요하고 그 열정을 약점 잡아 이용하고 착취한다. 그래서 열정을 함부로 드러내는 건 위험하다. 이런 세상이라면 차라리 열정이 없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열정은 좋은 거다. 나를 위해 쓰기만 한다면 말이다. 내가 어떤 것에 열정을 쏟고 있다면 그 열정이 나를 위한 것인지, 남을 위한 것인지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알기론 열정이라는 것은 그렇게 자주 생기는 것도, 오래가는 것도 아니다. 열정을 막 쥐어짜 내서도, 아무 데나 쏟아서도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열정도 닳는다. 함부로 쓰다 보면 정말 써야 할 때 쓰지 못하게 된다. 언젠가는 열정을 쏟을 일이 찾아올 테고 그때를 위해서 열정을 아껴야 한다. 그러니까 억지로 열정을 가지려 애쓰지 말자.

그리고 내 열정은 내가 알아서 하게 가만 놔뒀으면 좋겠다. 강요하지 말고, 뺏어 가지 좀 마라. 좀!(34쪽)

3. 용기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 노력과 시간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더라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용기. 실패했음에도 새로운 것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

현명한 포기는 끝까지 버티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체념이나 힘들면 그냥 포기해버리는 의지박약과는 다르다. 적절한 시기에 아직 더 가볼 수 있음에도 용기를 내어 그만두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는 것이 이익이니까. 인생에도 손절매가 필요하다.

타이밍을 놓치면 작은 손해에서 그칠 일이 큰 손해로 이어진다. 무작정 버티고 노력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겐 노력보다 용기가 더 필요한 것 같다. 무모하지만 도전하는 용기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포기할 줄 아는 용기 말이다.(55~56쪽)

4. 자유

지금처럼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면서 돈도 계속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어쩌면 욕심이다. 운 좋은 누군가는 둘 다 가질 수 있겠지만 나 같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나는 돈과 자유 중에서 자유를 선택했다.

월급을 포기하고 그만큼의 돈을 써가며 매달 자유를 산다. 내 돈 주고 산 자유니 당당하게 즐기지 못하면 돈이 아깝다. 그러니까 통장 잔액은 그만 확인하고 좀 놀아라! 불안해하지 말고! 정 불안하면 돈을 벌던가.

아직은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는 것 보니 버틸 만한가 보다. 깔끔하게 정리가 됐다. 그럼 이제 자유를 마음껏 누려야겠다. 돈이 아깝지 않도록.(96쪽)

5. 혼자만의 시간

혼자 있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그 시간은 치유의 시간이다. 인간관계로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해주는 시간. 그렇기에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고 얼마든지 혼자 하는 걸 즐겨도 되지 않나 싶다. 단, 그리고 나서는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피곤하고 짜증 나는 사람들 속으로. 그 사실만 잊지 않으면 된다.

혼자만의 시간은 다시 돌아오기 위한 여행이다. 잠시 떨어져 바라볼 줄 아는 지혜다. 정말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감사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혼자 있는 걸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좋다. 혼자 있는 걸 못 견디고, 모든 걸 함께하려고 하는 사람보단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많은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들이 타인과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서 잠시 떨어져 있을 줄 아는 사람. 혼자 있는 외로움을 잘 알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혼자 있는 게 편하지만 결국 혼자서 살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 외로움을 충분히 즐기고 나선 다시 사람들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기꺼이 함께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고 싶다.(114~115쪽)

6. 꿈

시대가 변했는데 여전히 교육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낡은 가치관을 강요한다. ‘꿈’이 아닌 ‘성공’을 가르치는 교육 말이다. 그런데 요즘 갑자기 태도를 싹 바꿔 젊은이들에게 꿈을 꾸라고 말한다. 마음껏 꿈을 펼치라고. 마치 한 가지 길밖에 없다는 듯 대기업과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지 말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라고. 맞는 소리임에도 이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꿈을 꾸고 이루는 것이 어려운 ‘정답 사회’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정답이 정해져 있다. 그 길로 안 가면 손가락질 받는다.

애초에 꿈을 꾸지 못하게 한 것도, 꿈을 꾸며 조금만 다른 길로 가려 하면 온갖 태클을 거는 것도 어른들이었다.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그랬다. 이런 분위기에서 꿈을 꾸라니요? 꿈꾸지 말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왜 꿈이 없냐니요?

그런 이유로 꿈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대한민국에서 꿈을 꾼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꿈을 가지라는 것이 ‘도전 정신’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스펙’을 강요하는 건 아닐지 염려스럽다. 그래서 함부로 그 말을 못하겠다.

마음껏 꿈을 펼치는 게 가능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별한 꿈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꿔본다.(176~177쪽)

7. 느려도 괜찮아

내 삶이 완전히 불안하지 않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나도 종종 불안하다. 하지만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불안은 크게 없다. 어차피 나는 느리니까. 그리고 천천히 가다 보니 남들은 저만치 앞서 뛰어가 버려서 어느 쪽으로 따라가야 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어디로 갔든 상관없이 그냥 내 길을 걸어갈 뿐이다.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으니 앞서가네, 뒤처지네 하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게 되어버렸다.

혹시 지금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하다면 아마도 뒤처진 게 맞을 거다. 하지만 뒤쫓을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속도와 길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 느린 건 창피한 게 아니다. 인정하자. 우린 뒤처졌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런 뻔뻔함이 좋다.

이왕 늦은 거 천천히 가면 어떨까? 인생도 더 길어졌는데 빨리 가서 뭐 하려고 그러나. 나 혼자 느릿느릿 가려니 외로워서 그런다. 같이 천천히 가자. 만약 모두가 합심해서 뛰지 않는다면 이 지긋지긋한 경쟁 사회도 달라질지 모른다.(223~224쪽)

이 책을 읽고 40대 초반인 저자의 생각에 크게 공감하였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를 선언한 것을 보고 저자의 앞날을 걱정하기도 했다. 기우(杞憂)였다. 이 책은 2018년 4월 23일에 초판 1쇄를 발행했는데, 기자가 읽은 책은 초판 10쇄(2018년 7월 30일)였다. 열심히 사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기발한 제목과 ‘야매 득도 에세이’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제, 팬티만 입고 출연한 그림 속 저자의 시원한 모습 등으로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4년이 지난 후에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보니 저자의 책과 그림책이 20여 권이 넘었다. 들어오는 일 거절하고, 모아놓은 돈 까먹고, 한낮에 맥주 마시면서 여유 있게 에세이를 쓴 저자의 모험이 성공한 것이다. 우리나라 에세이가 일본에서도 인기가 있어서 여러 서점에서 전시하고 있는데 이 책도 그중 한 권이었다.

기자는 한 직장에서 40여 년을 지내고 정년 퇴임했다.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용기가 없고 실행력이 부족했다. 저자의 삶을 본받아 ‘열심히 살지 않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다. 기자는 기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