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내 말 좀 들어보세요
여보세요, 내 말 좀 들어보세요
  • 허봉조 기자
  • 승인 2021.03.17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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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 길가, 텃밭 언저리 등 어디서나 잘 자라는 개불알꽃

 

“할머니, 이 꽃 이름이 뭐예요?”

“응, ‘개불알꽃’이란다.”

“정말? 이렇게 귀여운 꽃이 왜 하필 개불알꽃이래?”

“글쎄, 열매 모양이 개의 불알처럼 생겨서 그렇게 지었다던가?”

햇볕 따스한 봄, 공원 입구에서 할머니와 손녀가 꽃을 바라보며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꽃 이름에 관심이 많은 어린아이의 호기심이 사랑스러워, 슬쩍 끼어들었다.

“‘봄까치꽃’이라고도 불러.”

예닐곱 살 정도의 아이가 손뼉을 치고 팔짝 뛰면서 좋아했다. 앞으로는 그 이름만 불러야겠다며, 이름이 새나가지 않도록 입술을 모아 중얼거리는 모습이 꽃보다 더 귀여웠다.

이맘때쯤, 산책을 하다보면 파르스름하고 앙증맞은 손톱만 한 꽃이 땅바닥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그 꽃을 보면, 두 번쯤 놀란다. 한 번은 너무 작은 깜찍함에 놀라고, 또 한 번은 요상한 이름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이다. 그래서 꽃은 억울하다. 어쩌다 그런 낯 뜨거운 이름을 듣게 되었는지. 따질 수도, 이름을 바꿔달라고 떼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정 많은 사람들이 개불알꽃의 심정을 먼저 알고, 봄까치꽃이라고 바꿔 불러주는 것은 아닌지' 상상만으로도 미소가 번진다.

‘네이버 지식백과’를 이용해 여러 정보를 요약해보았다.

“개불알풀(학명: Velonica didyma var. lilacina)은 현삼과의 한해살이풀로 5~6월에 잎겨드랑이에서 연한 홍자주색으로 꽃이 피며, 꽃의 직경은 5㎜, 꽃자루 길이는 1㎝ 미만이다. 줄기 아랫부분에서부터 갈라져서 땅에 누워 기면서 자라고, 무리를 만든다. 열매는 신장 모양으로 가운데가 잘록하며, 8~9월에 익는다. 농촌의 들녘, 둑, 길가, 텃밭 언저리 등 볕이 드는 곳이면 어디서나 잘 자라며, 우리나라 중남부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만약 개불알풀 종류가 보이지 않는 밭이나 과수원이라면, 화학제 농약의 과도한 살포를 의심하게 한다”고 나와 있다.

각종 농약에 취약한 것이 개불알풀 종류라니, 환경 지표식물로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최근에 귀화한 ‘큰개불알풀’과 ‘선개불알풀’에게 서식지를 점령당하고 있다니, 그들에게도 생존경쟁이 있는 모양이다. 원산지에 대해서는 유럽이나 서남아시아 또는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니, 참고하면 좋겠다.

꽃은 말을 할 것이다. ‘비록 이름은 우습고 천박하지만, 예쁘게 봐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또 혼잣말을 할 것이다. ‘군함처럼 크고 묵직한 사람들의 발에 짓밟히면, 너무 놀라 기절하게 된다’고. 그런 연약한 개불알풀이 사람에게 약용으로 쓰인다고 한다. 부기를 빼주고, 여성들의 백대하증에도 효과가 있다니 얼마나 고마운가.

식물의 이름은 생김새나 형태, 향이나 쓰임새, 발견된 장소, 서식지 등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그러니 특이하고 재미있는 이름이 많을 수밖에. 누가 어떤 상황에서 이름을 붙이게 되는지도 중요한 것 같다. 같은 개불알풀도 유럽에서는 학명과 같이 ‘베로니카(Velonica)’라는 성인(聖人)의 이름으로 부른다는데….

억울한 이름에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쥐오줌풀’이라는 것이 있다. 불면증에 효과가 있고, 안정작용과 경련 해소에 도움이 되는 약용식물인데, 말리면 쥐 오줌 냄새가 난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반면, 이 냄새를 고양이들이 좋아해 독일에서는 ‘고양이풀’이라고 부른다니 비교가 될 만하다. 그밖에도 동물이나 사람과 관계가 있는 유형으로 낙지다리, 도둑놈의갈고리, 며느리밑씻개, 범꼬리, 애기똥풀, 여우오줌 등 특이한 이름이 무수히 많다.

사람에게 이름이 중요한 것처럼, 식물의 이름 또한 중요하다. 사람에게는 그나마 개명(改名)할 수 있는 제도가 생겨 법적절차를 통해 마음에 드는 이름으로 바꿀 수 있으니 다행이다. 하지만 식물의 이름은 한 번 정해지면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왕 정해진 이름은 어쩔 수 없다 손치더라도, 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만은 변치 말아야할 것이다.

꽃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을 미소 짓게 한다. 앞으로도 처음 발견하는 식물이나 꽃이 있다면, 두고두고 불리어질 이름에 깊은 배려와 고뇌가 작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부르기 쉽고, 정감이 넘치도록.

대구 달서구 대구수목원 입구에 핀 깜찍한 개불알꽃 무리. 허봉조 기자
대구 달서구 대구수목원 입구에 핀 깜찍한 개불알꽃 무리. 허봉조 기자

 

예쁜 개불알꽃이 10원짜리 동전보다 훨씬 작다. 허봉조 기자
귀여운 개불알꽃이 10원짜리 동전보다 훨씬 작다. 허봉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