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 생가를 찾아서
박목월 생가를 찾아서
  • 장희자 기자
  • 승인 2020.09.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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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의 언어를 들으며
생가 맞은편 언덕에서 바라본 시낭송장과 박목월생가 전경. 장희자 기자

지상(地上)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詩人)의 가정(家庭)에는
알 전등(電燈)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삼(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地上)
연민한 삶의 길이어.
내 신발은 십구문반(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반(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地上)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 가정(家庭) 박목월)

위 시는 박목월의 가정(家庭)이라는 시로, 생활인으로 돌아온 시인이 아버지로서의 고통을 토로한다. 자식사랑과 책임 의식을 스스로 확인한다. 현실적 세계를 시적 대상으로 삼은 진면목을 보여 주고 있다. 박목월 시인이 50여년후의 코로나 상황을 예견하고 이시대의 아버지들을 비춰주는 시처럼 보인다.

박목월생가는 김유신의 수도장으로 유명한 단석산 자락에, 전방으로는 인내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덕천이 되어 형산강 상류에서 건천들을 형성하는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 666번지에 위치한다. 시인은 1915년 아버지 박준필씨와 어머니 박인재씨 사이에 2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박영종으로 시인이 살던 어린 시절은 삶이 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시인의 유년시절은 부친이 수리조합장을 지내서 나름 유복한 생활을 했다. 

주차장 방면에서 바라본 생가와 나그네정 모습. 장희자 기자

이곳 생가는 시인이 유년시절을 보낸 장소로서 시인은 10리 길을 걸어 다니던 건천읍내의 초등학교, 들녘의 밀밭, 형산강 강나루 등의 자연속에서 살았던 감성들이 문학적 상상력으로 키워졌으며, 대표시 「윤사월」과 「청노루」가 바로 이곳을 배경으로 쓰여졌다. 1935년 대구 계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일()해서 영화인들과 교류하다가 귀국했다.

1939년 「문장」지에 정지용의 추천으로 등단한 이후 수많은 시를 썼다. 또한 1946년 대구 계성중학교 교사 이후 한양대학교 학장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의 생애에 가장 주목되는 것은 1946년 박두진·조지훈과 함께 「청록집을 간행하며 청록파로의 활동이다. 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정지용은 북에는 소월, 남에는 목월이라고 했다.

1955년 첫 시집 「산도화(山桃花)」로 제3회 아세아자유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1959년에는 시 세계에 전환을 가져와 사소한 일상의 편린들에 관심을 기울인 시집 「난(蘭)·기타(其他)」를 내놓는데, 많은 평자들에게 섬세함과 고유한 정서로 리리시즘을 구현해냈다는 찬사를 듣는다. 1968년 시집 「청담(晴曇)」으로 대한민국문예상 본상을, 1969년 「경상도(慶尙道)의 가랑잎」으로 서울시 문화상을, 1972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

출입문 맞은편으로 안채, 좌측으로 디딜방앗간, 우측으로 사랑채 모습. 장희자 기자

1973년 월간 시 전문지 「심상(心象)」을 발행하고 1976년에는 시집 「무순(無順)」을 발행하는 등 1978년 생을 다하기 전까지 출판인으로서, 교육자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청록파’라는 이름을 지상에 남긴 한 시인으로서 성실한 삶을 살았다. 시집 외에도 수필집 「구름의 서정」, 「토요일의 밤하늘」, 「행복의 얼굴」, 「보랏빛 소묘」, 동시집 「산새알 물새알」, 「초록별」, 「사랑집」 등이 있다.

그가 태어나고 유년과 청년 시절을 보냈던 생전의 토담집은 1980년대 초에 사라졌다. 그 후 2011년 1300여평 부지에 건축을 시작하여 2014년 생가가 완공되었다. 복원된 생가에는 안채·사랑채·디딜방앗간·우물, 동상과 약력을 새긴 비, 나그네와 연관된 밀밭이 조성됐다.

안채는 산자락을 바라보며 서향으로 큰방·작은방·부엌이 있고, 북향의 사랑채는 작은방·부엌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에는 박목월의 사진과 책 등 여러 유품이 놓여있다. 또한 시를 즐길 수 있도록 생가 옆에 시 낭송장을 조성하였다. 경주시는 이 고장 대표적 문인 박목월과 김동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6년 동리목월문학관을 건립하고 동리목월문학제 등을 운영하고 있다.

좌상은 윤사월시비와 나그네정, 우상은 디딜방앗간 내부모습, 죄하는 사랑채 뒷편으로 뒷간이 보이고, 하우는 우물토를 조성한 모습이다. 장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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