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실 성당, 경북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성당
가실 성당, 경북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성당
  • 장희자 기자
  • 승인 2020.06.30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으로 2004년 ‘신부수업’ 영화 촬영
근대건축사, 교회사적 가치가 큰 오랜 신앙의 요람지.
종교미술의 전시공간 및 문화유산(경북 유형문화재 제348호)
신앙 유산과 신앙선조들의 숨결을 체험할수 있는 공간
낙동강변이 내려다보이는 , 동화에서 나올 듯한 아담하면서도 아름다운 시골교회모습이다. 장희자 기자

가실(佳室)성당은 경북 칠곡군 낙산1리 614번지에 소재하는 대구대교구 소속의 가톨릭 교회다.  대구 계산성당에 이어, 1895년 9월경에 경북에서는 최초로 설립된 천주교회이다. 한국교회로 15번째이다.  

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 대주교좌인 계산성당에 이은 두 번째로 오랜 연륜을 지녔다. 장희자 기자

칠곡군 왜관읍 낙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오랫동안 ‘낙산성당’으로 불려오다가 2005년 가실(佳室)이라는 마을의 본래 이름을 되살려 가실성당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성당으로 오르막길을 가다 왼편에 보이는 사제관으로 1923년에 완공되었으며, 소박하면서 주변농가와 잘어울린다. 장희자 기자

이 성당 터는 원래 1784년 한국 천주교회 창립 시부터 실학자 성섭의 가족이 살고 있었다. 성섭의 증손자인 성순교는 1861년 경신박해 당시 상주에서 순교를 했다. '가실'이란 마을의 본래 이름이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집', 즉 성순교 가문의 집을 뜻하기도 한다.

성당은 아치의 로마네스크와 뾰족 첨탑의 고딕 건축양식이 절충되어 아름다운 자태를 보인다. 장희자 기자

성당을 세워 초대 본당 신부를 지낸 이는 파리 외방 선교회의 파이아스 가밀로(C. Pailhasse, 한국명 하경조) 신부이다.

성전을 나가면서 문이 열리면 가장먼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성가정상 모습이 온유하게 다가온다. 장희자 기자

1886년 한불수호조약 이후 프랑스 선교사들이 한층 자유롭게 포교활동을 할 때 1894년에 조선에 나온 파이아스 신부는 칠곡에 도착하여 가실에 자리를 잡고 천주교회를 세울 장소를 물색했다.

성당 내부는 간결한 제대와 깨끗한 외벽으로 꾸며져서 어머니 품같이 포근함을 안겨준다. 장희자 기자

성당 설립 당시에는 본당 관할에 칠곡, 성주, 김천, 선산, 상주, 문경, 예천, 군위, 영천 지방 31개 공소가 있었다. 그는 낙동강 수로를 이용해서 쉽게 대구, 안동, 부산 방면으로 오고 갈수 있는 장소인 낙산리에 이 성당을 세웠다.그때에는 본 신부가 각 공소에 매년 적어도 2회 이상 순회 사목을 했는데 말과 도보로 다녔다.

성전 제대,대형십자가 나무조각, 감실 칠보작품(주제는 엠마오). 장희자 기자

 1943년 제6대 주임으로 부임한 베르몽 신부 때 이름을 바꾸어 낙산본당으로 불렀으며, 제7대 주임신부인 이명우 신부 때부터는 대개 왜관본당 신부가 이곳 신부직을 겸임하다가, 1952년 왜관에 감목 대리구가 설정되면서 그에 속하였다.

성전제대 우측에 있는 안나상으로 가실성당의 주보성인으로 성모마리아의 어머니이다. 장희자 기자

한국전쟁 때에는 낙산마을이 전투가 심해 마을이 모두 파괴되었지만, 가실성당 건물만은 인민군의 병원으로 사용돼 그대로 남을 수 있었다. 전쟁 관계로 월남한 성 베네딕도 수도회의 신부들이 1952년부터 성당을 위한 사목을 맡았다.

2000년 독일화가 에기노바이너트가 그린 반달형 창문에 유리화가 따뜻하게 다가온다. 장희자 기자

1986년에 왜관 감목 대리구의 폐지로 대구대교구 소속 본당으로 변경되었으며, 1990년에는 설립 100주년 기념관을 설립하였다.

성당 전체가 아름다운 현대 종교미술의 전시장이자 소중한 근대 문화유산인 셈이다.(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48호) 장희자 기자

현재의 가실성당 건물은 1922~1923년에 지어졌다. 건축양식은 신(新)고딕 양식을 띤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설계자는 프랑스인 박도행(V. L. Poisnel) 신부이다. 박도행 신부는 1896년부터 1925년까지 30년간 대구 계산성당과 왜관성당을 비롯하여 한국 천주교의 많은 교회 건축물을 설계했다.

성당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으로 낙산성당으로 바뀌었다가 2005년 옛 이름인 가실성당을 되찾았다. 장희자 기자

1995년 성당 설정 100주년을 맞아 잔디밭과 정원을 꾸며 성모당을 마련하였으며, 교육관을 건립하는 동시에 성당 정면에 순교자 성순교 가문의 신앙 유적비를 세웠다.

사제관옆에 나란히 있는 교육관 건물화단에 여름꽃들이 만발하다. 장희자 기자

성당 내부는 엠마오의 제자들을 칠보로 형상화한 감실, 예수 전생애를 묘사한 창문 색유리화, 성당건립 당시의 나무 액자 동양화가 손숙희가 그린 ‘십자가의 길 14’ 등으로 새로 단장하였다.

성당 건물 왼쪽 너른 잔디밭에 야외 제대와 성모동굴이 있다. 장희자 기자

성당은 지상 1층, 지하 1층, 연건평 217㎡규모인데, 하늘 향해 원추형 종탑이 성당 입구를 지키고 있다. 성당의 지배적인 색조는 주황색이다. 조금씩 빛이 바랜 석류색 함석지붕과 감색벽돌들이 성당의 오랜세월을 보여주고 있다.

성모굴굴안에 묘셔진 성모미리아 상. 장희자 기자

가실성당의 신자 수는 관할 지역이 좁아지고 또 산업화·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줄고 있다. 2011년 현재 관할구역은 왜관읍 낙산 1~3리, 금남 1~2리, 금산 1~2리 등이고, 성당에 속한 하산공소는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하산 1~2리, 본촌 1~2리 및 감문 1~2리를 관할하고 있다. 반면 좋은 기도처로 알려져 많은 신자들이 단체로 피정(避靜)을 위해 찾고 있다.

야외 제대 동굴에 칡 넝쿨이 늘어져서 자연미를 더해 주고 있다. 장희자 기자

성당과 사제관은 2003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48호로 지정되었으며, 주보성인 안나의 상은 1924년 이전에 프랑스에서 석고로 제작된 한국의 유일한 안나상으로 알려져 있다. 성당 앞에 서 있는 순교자의 기념비는 성섭과 그의 증손자 성순교를 기리는 것이다.

야외 제대 동굴속의 예수님 십자가상. 장희자 기자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