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불안한 지금 김유신장군의 전설이 서린 명마산 장군바위를 찾았다 신종 바이러스가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바라며 오른 명마산은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와 음양리에 걸쳐서 위치한 501m 높이의 산이다. 와촌면 신한리에서 선본사로 오르는 팔공산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산의 능선은 화강암의 풍화토인 마사토(磨砂土)로 구성되어 있다.
이 산 아래의 하천이 박사천(博沙川)인데, 이는 명마산의 마사토가 운반되어 하천 양안에 퇴적되어 모래밭을 이루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박사리마을은 해마다 음력 시월이면 깊은 슬픔에 잠긴다. 1949년 11월 29일 발생한 공비들의 민간인 학살로 마을 주민 38명이 살해됐고, 16명이 전신 난자, 손목 절단 등 심각한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와촌면 동강리 사는 나무꾼이 양시골짜기(갓바위 주차장과 대한리 마을 중간 지점 도로 우측에 있는 골짜기)에 나무를 하던 중 우연히 공비의 소굴을 발견하였고, 공비는 신고하면 동민을 몰살시켜버리겠다고 하면서 나무꾼에게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나무꾼은 박사리에 산다고 대답하고 하산 후에 곧바로 지서에 신고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군경합동작전으로 공비 78명이 사살되고 7명을 생포하였으나, 공비 잔당들의 보복성 공격으로 1949년 11월 29일(음 10월10일)저녁 마을주민들이 위와 같은 피해를 당하고 가옥 108동이 불에 타는 등 참혹한 비극이 발생하고 말았다.
사건 당시 생후 7개월이던 박기옥(2016년-2018년 경산문협회장)회장은 사건의 실상과 공비들의 잔혹함을 알리기 위해 「박사리의 핏빛 목소리」라는 글을 썼다,
전체 800매에 이르는 원고 중 일부를 발췌해 2016년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에 응모, 논픽션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1985년 11월 유족 및 관계기관에 의해 박사리 687-1번지에 위령비가 건립됐으며, 해마다 한국자유총연맹 경산시지회와 유족회가 주관하여 10월 30일을 전후하여 매년 위령제를 열고 있다.
향토자료지에 따르면, 김유신(595~673) 장군은 소년시절 와촌면 강학리에 위치한 무학산(575m) 불굴사 홍주암내 원효굴에서 삼국통일의 대업을 위한 수련을 했다
장군이 석굴에서 나오자 맞은편 산에서 백마가 큰 소리로 울며 승천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여 이 산을 명마산(鳴馬山)이라고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1992년 4월 24일에 산불이 나서 공무원ㆍ주민 등 3백여 명과 산림청 소속 헬기 1대를 동원, 진화작업을 폈으나 바람이 세차게 불어 진화에 어려움을 겪던 중 5시간만인 이날 오후 8시께 진화되었으며, 임야 3㏊를 태우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명마산에서 용주암 방향으로 30분(2.2㎞)정도 걸어서 오르면 음양리 산9번지 해발 550미터 능선에 우뚝 솟은 장군바위가 위용을 드러낸다.
김유신 장군의 전설이 서린 이 바위의 윗부분은 돌화살촉을 닮았다. 맨 아래 길쭉한 바위 위에 평평한 돌을 받친 뒤 돌화살촉 모양의 바위를 올려 쌓은 3층 구조여서 구석기시대 거석유물을 연상케 한다.
장군바위를 뒤로 하고 100m가량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갓바위가 보인다. 오른쪽 길을 따라가면 용주암에 닿는다.
용주암과 갓바위의 거리는 1㎞쯤 된다. 용주암에서 임도를 따라 50분가량 내려가면 약사암 입구 정류장에 이른다. 출발지로 돌아가려면 803번 버스를 타고 능선재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명마산 장군바위 가는 가장 단거리코스는 와촌면 팔공로 1번지 능선재 식당옆에 차량 주차 후에 500m정도 지경길을 따라 올라가면 노고추(와촌식품)삼거리에 팔공산 숲길 안내표지판이 있다.
안내판 우측 소로를 따라 진행하면 잠시 후 영천이씨 묘지가 나오고 묘지 우측 산방향으로 1킬로미터 정도 암릉길을 올라가면 갓바위에서 명마산으로 뻗어내리는 주능선 상에 솟아있는 704m봉에 닿는다.(능선재에서 약 1.5㎞)
우측 명마산 장군바위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가다보면 장군바위 암봉에 도착한다. 하산은 장군바위에서 좌측 능선동 방면으로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샘터를 지나고 산사면 능선길을 내려오면 산행 거리는 약 6㎞정도에 산행시간은 3시간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