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오늘날 아버지로 살아가려면
[어버이날] 오늘날 아버지로 살아가려면
  • 정재용 (엘레오스) 기자
  • 승인 2020.05.0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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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세계에서 수컷처럼 고독한 존재
아내와 더불어 즐거움을 누리고
사회적 관심과 다양한 취미생활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야
1980년대 회갑잔치 모습. 정재용 기자
1980년대 농촌의 회갑잔치. 정재용 기자

 

1959년 10월 현대문학에 발표된 이범선 단편소설 ‘오발탄(誤發彈)’이 있다. ‘잘못 쏜 탄환’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계리사(공인회계사의 옛날 명칭) 사무실 서기로 일하고 있는 송철호다. 그의 집은 6.25전쟁으로 월남하여 실향민 마을인 ‘해방촌’에 있다. 집에는 산월(産月)이 된 아내, 고향을 그리워하다 실성해 간헐적으로 “가자!”라고 외치는 노모, 양공주인 여동생, 그리고 한탕주의를 노리는 제대군인 남동생이 함께 살고 있다. 주인공은 은행 강도범으로 잡혀있는 남동생을 만나러 경찰서에 들렀다가 집으로 오는데, 아내가 위독하여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병원으로 달려간다. 아내는 이미 죽어 있었다. 그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앓던 충치를 두 개나 뽑고 택시를 탄다. 택시운전사는 해방촌으로, 병원으로, 경찰서로 행선지를 자꾸 바꾸는 손님을 보고 난감해한다. 송철호는 “가자!” 노모로부터 수도 없이 듣던 말을 내뱉는다. “어디로 갑니까?” “글쎄, 가” 운전사가 푸념조로 말한다.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송철호가 가장(家長)으로서 느끼는 책임감의 무게는 60년이 지난 오늘날의 ‘아버지’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맏이로서 동생을 건사하는 것 대신 자녀와 손자 뒷바라지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나마 국가적으로 절대빈곤 상태를 벗어난 것은 다행이다.

 

◆날아가 버린 노후 여가

A(69) 씨 부부는 교직 은퇴 후 연금소득으로 아흔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아들과 함께 아파트에 살고 있다. 딸은 결혼하면서 같은 아파트단지에 집을 구했고 지금은 애 둘을 키우느라 육아휴직 중이다. 딸이 복직하게 되면 친정어머니로서는 큰 부담이다.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B(68) 씨는 매일 아침저녁 아흔이 다 돼가는 노모를 요양원에 출퇴근시키는 게 일과다. 아들 하나 딸 둘 모두 출가시켰으나, 그의 아내는 친손자 외손자 돌보느라 정신이 없다. 외손자 키워놓고 친손자 안 봐줄 수는 없어서 허리가 휠 지경이다.

C(67) 씨는 아예 부인과 떨어져 객지에 가서 살고 있다. 아들네 집에 가서 맞벌이 나간 며느리 대신 손자 둘을 돌보느라 좋아하던 산행도 접고 각종 모임에도 얼굴을 안 내민 지 오래다.

D(70) 씨 부부는 주중에는 집을 비워놓고 외손자 보러 서울로 가 있다가 주말에만 자기 집으로 내려온다.

E(75) 씨는 노년에 본의 아니게 주말부부다. 아침 일찍 딸네 집으로 가서 외손자를 집으로 데려오면 딸이나 사위는 퇴근길에 아이를 찾아간다. E씨의 아내는 주중은 아들집에서 손자를 돌보고 주말에 집으로 온다. 아들 부부는 의사다.

이런 예를 들려면 끝이 없다.

“남을 들이더라도 자기 자식은 자기가 곁에 두고 키워야지.” 

“그동안 부모가 고생해서 시집장가 보내줬으면 됐지, 거기다 자기 자식까지 부탁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말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힘들더라도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크는 것하고 남에게 맡기는 것하고 천지 차다”라며 자녀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이웃을 보면 홀로 뻗대기도 힘들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은퇴하고 나서 해외여행도 가고 부부만의 여가시간을 보내려던 꿈은 시작도 해 보기 전에 접을 수밖에 없다. 보육제도와 시설도 제대로 안 해 놓고 애 많이 낳으라고 홍보하는 나라가 밉상이다. 손자 다 키우고 나면 여든 줄이다.

어쩌다 F(69)씨 같은 경우도 있다. 그의 딸은 서울로 시집가서 아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아들은 처갓집 곁에 집을 장만해서 장모 손에 부탁했다. 이래저래 F씨 부부는 ‘편한 백성’이 됐다.

 

◆내비에 밀려난 애비

옛날에는 자식은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하면 됐다. 아버지는 선경험자로서, 그동안 겪은 시행착오와 터득한 삶의 지혜를 바탕으로 아들을 지도할 상당한 수준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른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속담은 그냥 생긴 게 아니다. 도제제도(徒弟制度)로 전수되는 수공업은 지금도 그렇다.

아이는 커가면서 세상에 가장 위대한 인물인 줄 알았던 아버지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다. 거기다 컴퓨터가 나오고부터는 그 누구에게도 물을 필요도 없게 됐다. 지금은 어린 손자조차 할아버지나 아버지께 묻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검색한다.

아버지가 아는 것은 제한적이고 틀린 것도 많으나 스마트폰이 가르쳐주는 정보는 빠르고 정확하다. 아버지(애비)에게 길을 묻느니 ‘내비(내비게이션, navigation)'를 따라가는 세상이다. 내비는 시키는대로 하지 않아도 절대 짜증내는 법이 없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아버지에서 손자로 전해지던 노하우(knowhow)가 무시를 당하면서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는 가르치려 하지 않고 아들은 배우려 들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아버지가 자식에게 묻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사람으로서의 도리, 윗사람에 대한 예의, 사회적인 윤리 도덕,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미묘한 기술, 인간미, 품성, 삶의 지혜는 전수되지 못하고 맥이 끊기게 됐다. 점차 지식은 넘쳐나나 지혜에는 목말라하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

오늘날 아버지의 권위를 찾기는 어렵다. 무리하게 찾으려다가는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다. 성경의 “자녀들아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구절을 함부로 들먹이면 곤란하다. 연이어 “네 자녀를 노엽게 말라”가 나오기 때문이다.

 

◆늙어서도 품위 있는 아버지가 되려면

유교사회에서 아버지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아버지 앞에서 자식은 불초소생(不肖小生)이었다. 아버지 닮기가 소원이었고 아버지를 닮지 못한 것이 불효였다. 캐나다 출신 제임스 S 게일 선교사는 조선의 1888~1897년 기록에서 ‘빨래해 놓은 바지를 보면 불상을 덮거나 자유의 여신상 속옷으로 사용할 정도’라고 표현했는데, 남편은 아내가 빨래하고 풀하고 다려서 입힌 이 바지를 장날 술이 취해서 흙에 뒹굴어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래도 ‘가장(家長)’이라는 이름으로 용납됐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변했다. 동물의 세계에서 수사자는 전성기를 지나면 외롭게 살다가 쓸쓸한 최후를 맞고 수컷 사마귀는 교미 후 암컷 사마귀에게 잡아먹힌다. 경로당에 가면 할머니들이 모여 있는 방은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으나, 할아버지 방은 장기판 바둑판만 뎅그렇다. 할머니는 늙어서도 집안일 하기, 손자 돌보기 등으로 자녀들에게 인기가 많으나, 할아버지는 인기는커녕 아내가 없으면 천덕꾸러기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 이상의 아버지에게는 마지막으로 수행해야 할 과업 하나가 있다. 바로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봉양하는 일이다. 100세 시대를 맞아 ‘노인이 노인을 부양하는 시대’라고 말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당시의 아버지는 ‘자식이 보험’이었다. 자식에게 전부를 줘버린 아버지를 나 몰라라 하는 것은 거리에 나가 앉아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다.

자식에게는 짐을 지우지 말아야 한다. ‘다 바치고 나서 무한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자식도 원하지 않는다. 이미 껍데기만 남은 사람은 어쩔 수 없다지만 부자간에도 유한책임으로 가는 게 옳다. 늙어도 품위 있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건강한 가운데, 자식들에게 의존하지 않을 정도의 경제력, 종교생활 또는 친구 모임을 통한 소통의 네트워크, 평생을 지루해 하지 않을 취미가 있으면 좋겠다. 김형석(101) 교수는 그의 ‘100세 일기’에서 늙지 않는 방법은 일하고, 여행하고, 사랑하는 데 있다고 했다. 남녀 간의 사랑만을 뜻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둥지에서 자라던 새끼 새는 날아가기 마련이다. 그래야 정상이다. 어미 새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동물의 세계가 다 그렇듯 인간도 성인이 되면 홀로서기가 맞다. 서양인들은 젖먹이도 따로 재운다. 자녀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가정을 이루면 육체가 되고 부모는 그 동안 자식 키운 보람으로 만족하면 된다. “너희는 이미 그 보상을 다 받았느니라”는 말이 있다. 효도하고 안 하고는 마음을 비우는 게 좋다. 만약 효도하면 그건 덤이다.

솔로몬은 “덧없는 모든 날에 너는 너의 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즐거움을 누려라. 그것은 네가 사는 동안에 세상에서 애쓴 수고로 받은 몫이다”라고 했다. ‘솔로몬의 지혜’로 유명한 현자(賢者)의 말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사도바울의 가르침대로 “아내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며” 살아 갈 일이다. 늘그막에 오발탄이 나면 만회할 길도 여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