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라이프] 죽은 책도 살려내는 '북텔러' 정현숙 박사
[마이라이프] 죽은 책도 살려내는 '북텔러' 정현숙 박사
  • 장기성 기자
  • 승인 2020.03.20 16:39
  •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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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싶어 하는 심리적 욕구와 현실의 물리적 장애를 한방에 해결해주는 사람, 두꺼운 책을 얇게 만들어 주는 요술사가 바로 ‘북텔러’다.

 

강의에 열중하는 정현숙 북텔러. 그는 독서를 열심히 하면 노화를 지연시키고 젊음을 연장시킬 뿐 아니라, 무궁무진한 창의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장기성 기자
강의에 열중하는 정현숙 북텔러. 그는 독서를 열심히 하면 노화를 지연시키고 젊음을 연장시킬 뿐 아니라, 무궁무진한 창의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장기성 기자

 

최근 지상파 방송을 비롯한 유튜브에서 ‘책을 읽어드립니다’, ‘책을 읽어주는 남자(여자)’, ‘책을 읽어주는 어플’, ‘책을 읽어주는 라디오’,‘책을 읽어주는 선생님’ 등과 같은 프로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독자들이 알고는 싶지만 어려운 책, 책장에 꽂혀있지만 차마 펼치지 못했던 책, 이제는 나 대신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를 만났다. 북텔러(Book Teller) 정현숙(53) 박사다. 그는 독일 아이슈테트(Eichstätt)대학에서 수학(修學)하고 독일 자르란트(Saarland) 국립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간략한 이력(履歷)이 신학기 강의계획서에 이렇게 소개되어있다.

후속세대들을 위해 대구대학교 리더십센터 전문교수, 대구가톨릭대학교 겸임교수 및 글쓰기 말하기 센터 상담교수, 경북대학교 외래교수. 대구경북창업포럼협회 멘토링 강사, KLC 한국리더십센터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국제 공인 FT, 국가교육평생진흥원 학부모교육 우수강사, 대구시립중앙도서관 사람 도서관( Human Library, Human Book) 자유학년제 청소년 인문학 강사, 한국에니어그램 진로상담 강사 등과 같이 다채롭고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최근에는 군부대(軍部隊) 독서활성화를 위한 ‘사랑의 책 나누기 운동본부’에서 주관한 ‘2020 독서코칭강사’로도 활동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의 독서 사회화를 향한 활동이 넓고도 크게 느껴졌다. 다양하고 화려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독서는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해주며, 이를 통해 내적 통찰력과 사고력을 키울 수 있고, 이를 통해서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세상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판단력이 생긴다고 흔히 말한다. 이런 것들이 한걸음에 이 북텔러를 찾아 나선 이유이고 동기다.

- ‘북텔러’라는 말을 처음 들으면, ‘책을 말하는 사람’으로 언뜻 이해된다. 구체적으로 북텔러는 어떤 일을 하는 전문가인가?

▶북텔러는 쉽게 말해서 바쁜 현대 사회에서 책의 핵심적 내용을 요약해서 생동감있게 전달해주는 사람이다. 또한 책을 읽고 말하는 절차와 방법을 지도하는 전문가이기도하다. 통상적으로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심리적 욕구와 현실에서의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은 늘 상충되는 경우가 많다. 효율적인 측면에서 가장 큰 이점이라면 자신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수업진행자가 책을 읽는 방법과 내용 등을 소개해준다. 집중 독서 강좌식의 프로그램으로 문학, 역사, 경영, 철학, 자기계발 등에 관한 영역의 책들로 구성된다.

덧붙어 이러한 독서프로그램이 전혀 새로운 분야의 과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구권 대학이나 대학부속 평생교육원에서 북텔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과정이 개설된 대학은 ‘대구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대구 달서구 감삼동 소재) 이외에는 현재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일반적인 독서 토론 모임과는 어떻게 다른가?

▶기존의 독서토론 모임과는 차이가 크다. 일반적으로 독서토론모임은 구성원들이 2백 쪽 전후의 책을 미리 읽어 와야 수업이 가능하다. 하지만 북텔러가 진행하는 강의에서는 책을 읽어 와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무척 자유롭다.

또한 소개되는 책의 핵심을 여유 있게 경청할 수 있고, 책 읽는 물리적인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 이것이 전통적인 독서모임과 크게 차별되는 측면이다. 심리적, 시간적인 압박 없이 참석 가능하다는 것인데, 책을 반드시 읽고 참석해야만 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독서법이다. 물론 수업 전에 책을 읽는 것 또한 개인의 선택이기는 하다. 12주의 특강형식으로 매주 1~2권의 책을 다룬다. 그러니 적어도 한 학기에 15권정도 책을 읽는 셈이다.

특히 책을 읽는 행위가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여러 상황들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사람,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짧은 기간에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유용하다. 자기계발과 소양을 기르고 싶은 사람, 더 나아가 책의 전체 흐름을 듣고 혼자서 곰씹고 싶은 사람에게 최적화된 강좌라고 생각한다. 이 강좌에는 다양한 장르의 책들로 구성되어서, 개별 책들에 관해서 수강생들이 수업시간에 문제점들이나 중요성을 체크할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된 자료들이 제공되니 그렇게 큰 부담은 없다.

최근 정현숙 북텔러가 강의에 사용된 책들이다. 책의 높이만큼 삶의 질도 짙어지고 깊어질 것이라 말한다.  장기성 기자
최근 정현숙 북텔러가 강의에 사용된 책들이다. 책의 높이만큼 삶의 질도 짙어지고 깊어질 것이라 말한다. 장기성 기자

 

- 일정기간 북텔러 강좌를 수강하게 되면 어떤 자격증을 받을 수 있나? 받을 수 있다면 자격증에도 레벨이 있는지, 그리고 수료 후에 일정요건을 갖추면 사회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나?

▶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주관하는 등록자격 취득과정이 있는데, 초급에 해당되는 2급과 상급과정인 1급이 있다. 자격증을 취득하면 작은 도서관을 직접 운영할 수 있다. 전문분야 수강을 통해서 ‘전문가 집단 양성’, ‘사회적 기여 및 향후 독서관련 지속적 프로그램 진행’에도 참여할 수 있다. 그 이외에도 초등학교 독서특강 강사, 도서관 진행강사, 학교출장강사 등으로 활동할 수 있다.

- 그럼 1급자격증과 2급자격증을 취득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이수하거나 혹은 시험에 합격해야하나?

▶ 필수적으로 시험을 치거나 통과되어야 하는 절차는 없다. 하지만 북텔러 자격코스에 준하여 2급의 경우에는 필독서 20권과 선택도서 10권을 읽고 독서노트를 작성할 수 있어야한다. 1급의 경우는 필독서 40권과 선택도서 60권이며, 본인이 선정한 책 1권을 반드시 필사(筆寫)해야 한다. 2급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한국창직역량개발원’에서 제시한 문학, 사학, 철학, 경제학 쪽 60권 가운데 20권을 예로 보자면, 서유기, 초한지, 죄와 벌, 데미안, 오만과 편견, 상실의 시대, 그리스인 조르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역사서설, 로마제국 쇠망사, 유토피아, 국부론, 인생론, 장자, 노자, 프로페셔널의 조건, 동물농장, 꾸뻬씨의 행복여행,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나쁜 사마리아 여인, 엔트로피 등이 포함된다.

- 실제로 강의한 책 가운데, 수강생들의 반응이 특히 좋았던 1-2권을 소개시켜 준다면 어떤 책을 들 수 있나? 또 그 이유는 무엇인가?

▶ 첫째로 소개할 책은 ‘스티븐 코비’가 쓴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다. 자기계발도서 가운데 ‘영원한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스티븐 코비는 개인과 조직을 위한 행동들을 목록화 하였는데 이것을 7가지 습관이라는 용어로 정의했다. 개인적으로 이 책과의 인연은 무척 깊다. 무엇보다도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정도로 오랜 세월동안 꾸준한 영감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리더십센터와 대학과의 공동협약으로 ‘성공하는 대학생들의 7가지 습관’ 이라는 대학의 교양과목으로 수년간 가르쳤다. 많은 학생들로부터 이 수업을 듣기 전과 후 자신의 일상에 유익한 변화들이 생겼고, 좋지 않은 습관들을 왜 지양해야 하는지를 근본적으로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 뿐만 아니라 15주간 이 수업을 수강한 학생들은 한국리더십센터와 프랭클린 코비(Franklin Covey)사가 공동협약 되었기 때문에 ‘성공하는 대학생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리더십 수료증을 함께 받을 수 있어서 매우 실용적이라는 수업이라고 평가되었다.

강의 시작에 앞서 강의 내용을 안내하는 정현숙 박사.

 

우연한 기회에 대학의 교육혁신평가원 ‘교수학습지원센터’가 주최한 교수법 공모전에 참가했었는데 기대하지도 못한 ‘최우수상’을 받게 되었다. 기분이 좋았다.

7가지 습관을 다룬 이 책은 방대한 양의 두께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서적임은 분명하다. 교수법이 재미없으면 이 책 자체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 하지만 북텔러의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실타래 같은 난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누가 들어도 귀에 쏙 들어오도록 가려운 데를 긁어주고, 헝클어진 것을 빗질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코비 박사가 제시하는 7가지 습관의 리더십 근원은 자연의 법칙과 일치되게 인간이 성장한다고 보고 있다. 이것을 3가지 단계로 상징화 시켰다. 그 첫 번째 단계가 ‘의존적 단계’이다. 구체적으로 이 ‘의존적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의 습관은 ‘상대방’이 주체가 되는 패러다임으로 무슨 일이 잘못된다면 모든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고 비난하는 언행을 한다는 것이 요지이다. 그 다음 2번째 단계로 ‘독립적 단계’ 이다. 여기에 머물러있는 사람들의 습관은 내 언행의 결과에 스스로 책임진다는 것으로 그 ’자신‘이 주체가 되는 패러다임이다. 독립적인 단계가 의존적인 단계보다 더 성숙한 단계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지만 혼자 사고하는 독립성은 상호의존적인 오늘 날의 현실에 맞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이 독립적 단계의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훌륭한 성과를 내는 생산자일지 모르지만 훌륭한 리더나 팀 플레이어는 되지 못한다. 상호의존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이에 마지막으로 3번째 단계인 ‘상호의존적 단계’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주체는 ’우리‘가 되는 패러다임이다.

습관 1, 2, 3은 우리를 의존적 단계에서 독립적 단계로 발전시켜 주면서 개인적인 삶을 효과적으로 성장시켜 줄 수 있는 습관이다. 또한 습관 4, 5, 6은 팀워크, 협동, 커뮤니케이션 등과 같은 대인관계를 달성할 수 있는 습관이다. 우리는 상호의존적 세계에 살기 때문에 날마다 세상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만 한다. 따라서 우리의 성품을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단계적으로 습득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습관 7은 재충전의 습관이다. 이 습관은 1~6까지의 습관들을 포괄하고 보조해준다. 핵심은 지속적인 자기 개선을 위한 것으로 나선형(螺旋形)의 상향적 성장을 가능케 하는데 있다. 이 모든 내용들을 일목요연하게 나타내는 그림이 바로 ‘성숙의 연속선’ 이라는 도표이다. 7가지 습관들 간의 순차적인 관계와 이 습관들이 상호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더 큰 가치를 만드는 시너지 효과를 살펴보는데 활용된다.

학기말 강의평가에서 그들의 몇 의견을 보면, “ 평소 자기계발서적을 좋아했지만 늘 책의 이론과 내 생활의 차이가 너무 커 자괴감이 들었고 ‘나는 왜 이럴까’ 하고 허탈했다. 하지만 현재를 확신하게 되었고, 이제부터 어떤 점부터 노력해야 할지 우선순위를 정하게 되었다”. 또 “혼자 이 책을 처음 읽어 보았을 때 이국적인 사례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수업에서 외국 문화와 사회적인 정서를 자세히 듣게 되었다.” “한국어로 번역된 리더십 용어라서 선뜻 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리더십 전문용어도 위트 있게 사물에 비유한 점이 인상 깊었다”. “수업시간에 습관 1에서 습관 7까지의 정수(精髓)라고 할 수 있는 성숙의 연속선’ 이라는 도표를 먼저 제시해 줘서 전체적으로 명쾌하게 파악되었다”라고 섰다. 스티븐 코비의 습관 시리즈로 ‘성공하는 10대들의(가족들의, 대학생의) 7가지 습관’에 이어 몇 년 전 ‘성공하는 사람들의 8번째 습관’도 이미 출간되었다.

두 번째 책은 ‘빅터 프랭클’가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이란 책이다. 프랭클린 박사의 자전적 체험수기이다. 오스트리아 빈(Wien) 의과대학의 세계적인 신경정신과 의사다. 그는 수용소 네 곳을 전전하면서도 끝까지 삶의 품위를 잃지 않고 성자처럼 버티어 나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아온 산증인이다. 특히 그 의사는 강제수용소에서 생사의 갈림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삶의 의미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로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이 죽음을 부른다고 했으며 강제수용소에서 운명을 가르는 모든 체험으로부터 ‘로고테라피’(Logotherapy)라는 의미치유가 창안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 당시 잔인한 그 곳에서 자신의 벌거벗은 실존과 만나게 되고 거세(去勢)까지 당한다. 아버지, 어머니, 형제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가 모두 그 곳에서 죽음을 맞았거나 가스실로 보내졌다. 바로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어떤 시련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뼈 속까지 박히면서 반드시 살아남아 이 모든 참혹함을 세상에 포효(咆哮)할 것을 결심하고 또 결심했던 것이다.

이 책을 강의하면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 설명이 빠져서는 안 됨을 인식했다. 그 이유는 프로이트와 프랭클은 신경질환의 특성과 치료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다는 것은 공통점이지만 두 학자의 정신의학적 이론의 근본은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즉 프로이트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혼란의 원인은 ‘무의식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불안’에서 찾았다. 그 반면 프랭클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혼란의 원인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와 책임을 발견하지 못한 데’ 있다고 주장한다. 정리해보면 프로이트는 ‘성적인 욕구불만’에 초점을 맞추었던 반면 프랭클은 ‘삶에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의 좌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강생들은 강제수용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준비된 ppt자료를 보면서 한층 더 진지하게 경청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기말 강의평가에서 이 책에 대한 수강생들의 견해를 보면, “이 책은 깊이 있는 자문자답을 하게 만들었다. 타자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의 트라우마, 우울증, 콤플렉스 등을 너무 오래 앓았다. 이제는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 일상의 구체적인 과제를 가지고 나만의 의미를 반드시 찾겠다. 나 자신과 대화하고 화해하는 방법을 습득할 수 있었다. 내 일상을 가로막고 있었던 그 무엇인가를 통쾌하게 감지했다.” 라고 썼다.

- 교수자가 북텔러로서 수강생들의 평가를 보고 느낀 점이 있다면?

▶ 이 자리는 현학적인 지식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다. 혼자 공부할 때는 세게 하더라도 현장에서는 쉽게 풀어야 한다. 쉽게 풀면 못 알아들을 것이 없다. 물론 다른 강의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유익하고 재미있는 내용으로 가까이 다가가고 싶기 때문이다. 적절한 예시와 알맞은 인용이 그들의 표정을 환하게 만들었다. 책읽기가 좋은 습관이 되면 삶이 송두리째 업그레이드된다. 하루에 단 한번 1분 1초라도 변화된다면 그것이야말로 펄펄 살아 날뛰는 진짜 공부가 아닐까? 그렇게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할 때 나도 모르게 뿌듯해진다. 그래서 책을 읽는 일의 가치와 방법을 세상에 알리면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책으로 만나는 것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각별한 인연이기 때문이다.

- 북텔러를 수강하고 나서, 수강생들의 총체적 반응은 어떤지?

▶매 학기가 끝날 무렴에는 강의에 대한 소감이나 토론이 있기 마련인데, 이번 겨울 계절학기(2020년 2월)에 수강생들과 허심탄회하게 나누었던 강의 후일담을 몇 토막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것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 북텔러의 도움으로 구성원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동반성장의 지름길임을 알게 되었다. 지식 보다 더 큰 책읽기 습관을 점진적으로 키워나갈 것이다” (J씨)

“향후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소모임이다. 단순히 취미생활 이상의 의미를 찾는다. 아마도 일주일 내내 이 시간만큼 집중되는 시간도 없을 것 같다. 역동적인 명상효과까지도 맛보았다” (S씨)

“ 책이 영상 콘텐츠에 밀리고 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서의 검색은 뭔가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이 시간에는 내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사색하는 여유가 있다. 토론 할 경우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넓어짐에 따라 궁극적으로 나 자신에 대해 지혜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생겼다” (O씨)

“평소 동, 서양 고전의 책을 많이 읽은 편이다. 하지만 자기계발서, 문학 등 다른 장르의 책들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경북 구미에서 직장을 마친 후 늦은 시간임에도 단 한 번의 결석도 하지 않았다. 이런 프로그램을 꾸준히 찾았는데 우연히 발견하게 되어 행운이었다” (S씨)

“우리 가정에 이제껏 없었던 신선한 변화에 놀라웠다. 오히려 남편이 이 과정에 다니는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책을 읽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닌가? 작은 습관 하나로 집안 분위기가 똘똘 뭉쳐진 느낌이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과도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되었다” (K씨)

“다른 도시(포항)에서 오고 가지만 1주일에 2시간의 위력이 생활에 큰 활력소가 된다. 직장 동료들은 자칫 무덤덤해질 수 있는 관계인데 여기서 듣고 생각한 내용들로 대화 자체가 신선해졌다.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관계형성이 충만해짐을 느꼈다” (A씨)

아무튼 이것은 단순한 소감 설문형식을 빌려서 가져온 자료이지만, ‘삶에서 전환점 역할을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보람과 긍지를 가지게 된다. 우리네 인생은 지식의 정도에 따라서 삶의 질이 가늠되는 것 같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지혜로운 삶이 더 보배로울 때가, 또 더 가치 있을 때가 많다고 생각한다.

지난 학기에 외부 공개 강의하는 장면이다. 정현숙 제공
지난 학기에 외부 공개 강의하는 장면이다. 정현숙 제공

 

- 이 강좌에서 가르치면서 교수자로서 느끼는 보람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

▶ 수강생들은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학교(초중등 및 대학)에 근무하는 교직원분, 의료계, 회사원, 사회 특강강사, 가정을 지혜롭게 꾸려 가는 분들과 같이 다양한 직업군의 수강생들이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실감한다. 장장 2시간의 수업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생기와 활력이 오히려 강의 진행의 에너지원으로 차오른다. 그것과 더불어 토론 중간 중간 사이에서 각양각색의 견해들이 틔어 나올 때 수업진행 입장에서 감당하기 애매한 경우도 있다. 자칫 분위기가 경직될 수도 있지만 의견 차이를 성숙하게 수용하거나 다름을 인정하는 면모를 보았다. 그들은 자발적인 동기로 늦은 시간이지만 물리적인 거리도 마다하고 달려온 사람들이다. 이미 성장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남달랐다. 그분들의 꾸준한 열정에 이 강의자도 승-승(勝-勝)의 파트너쉽(partnership)으로 동화되곤 했다.

수업시간이 2시간을 훌쩍 넘겨가면서도 끝낼 기미가 보이지 않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종료시간 5분 전 강제로 수업을 마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 이 과목을 수강하는 대상은 주로 어떤 세대들이 많은지?

수강대상의 연령층은 참 다양하다. 40대에서부터 60대에 이른다. 직업도 전업주부에서 전문직까지 매우 다채롭다.

▶ 시니어들이 이 과목을 수강한다면, 어떤 장점이 있습니까?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인문학 책을 읽고 공부할 수 있다는 자체가 특권계층만이 누리는 것으로 여겼다. 다행히도 지금은 그런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여러 장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덕분인지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마주하고 계시는 시니어 분들이 참 많다. 젊은이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책에 심취하는 모습이 너무 낭만적이고 품격이 느껴졌다. 한때 어른하면 떠오르는 말이 자랑하고, 훈계하고, 야단치고, 무시하고, 지시한다는 이미지는 온데간데없다.

인간은 누구나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란다. 이미 과학자들은 ‘뇌호르몬’을 많이 분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것은 바로 삶에 대한 열정으로 긍정적인 태도와 새로운 배움에 대한 호기심, 흥미와 재미를 발견하는 자세라고 한다. 신경과학연구자들에 의하면 ‘뇌’는 우리 몸에서 평생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하는 유일한 장기라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뇌를 바꾸면 인생도 바뀐다. 독서를 열심히 하면 노화를 지연시키고 젊음을 연장시킬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뇌신경회로를 바꾸는 유일무이한 방법이 책을 가까이 두고 새로운 정보를 습득할 때마다 시냅스가 새로 생긴다. 독서능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무궁무진한 창의력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유익한 이론들을 가까이 실천할 수 있는 참신한 방법과 전략은 없는 것일까? 우선 정해진 시간과 공간을 규칙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읽기 훈련을 향상하기 위한 스킬 및 노하우로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낫고, 두 사람보다는 소그룹 형태의 모임이 효율적일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단순한 흑백논리의 일차원적인 아날로그사고가, 디지털적이고 통합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결국 영혼의 각성을 깨워주는 것은 독서라 할 수 있다.

‘유럽인의 삶과 문화’라는 주제로 대구시립중앙도서관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었는데 강의실을 잘못 찾은 줄 알았다. 유럽은 지리적으로 먼 대륙인데다, 다민족 다문화가 살아 숨 쉬지 않는가. 하지만 놀란 것은 그들이 아닌 오히려 내 자신이었다. 과반수의 청중들이 거의 연배가 높으신 시니어 분들이었다.

다독하거나 독서모임에 몸담게 되면, 자신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이 풍부해질 뿐 아니라 타자와 세상에도 자양분이 되는 작은 공헌이 되지 않을까? 독일의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아인슈타인의 말이 떠오른다. “한 인간의 가치는 그가 무엇을 받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줄 수 있느냐로 판단된다.”

요즈음 TV와 인터넷, 스마트폰과 한 몸이 된지도 오래다. 종이 책 읽기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서자(庶子) 취급되어 왔다. 스마트폰 속에 길이 있다고 흔히 말한다. 하지만 늦은 저녁시간, 2시간 도강(盜講)을 하면서 독서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아니라, ‘친숙해야만 할 앨리스’가 되고 말았다. 강의 중에 흩뿌리듯 지나가는 말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