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다녀가면 1년 동안 복 받는다는 '세종대왕자태실'
한 번 다녀가면 1년 동안 복 받는다는 '세종대왕자태실'
  • 노정희
  • 승인 2019.10.02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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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세종대왕자태실’
길지의 기운이 무병장수와 복을 가져다준다

태풍 ‘미탁’ 영향으로 비가 퍼붓는다. 지인은 이 비를 뚫고서라도 세종대왕자태실에 가야겠단다. 옷 다 젖을 텐데, 바람이 거셀 텐데, 아무리 회유해도 막무가내다. 자식 입시를 앞둔 에미의 마음을 막을 길이 없다.

언제부턴가 소곤소곤,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세종대왕자태실에 다녀오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소문이 돌았다. 왕자들의 태를 모셨으니 명당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무병장수와 복을 기원했음은 당연하지 않은가. 입으로, 귀로, 전해오는 얘기를 종합하면 태실에 다녀만 와도 복을 받는단다.

복 받으려고 단정하게 기다리니 여러 방법을 전수한다. 태실에 와서 우측으로 일곱 바퀴를 돌아라, 산 아래 내려다보이는 인촌지를 향해 소원을 빌면 부자가 된다, 수험생 자녀는 왕자들의 기운을 받아 입신양명한다, 참으로 황홀한 말씀이다.

‘세종대왕자태실’은 세종의 왕자 19명의 태를 봉안한 태실이다. 태실은 지하에 석실을 만들어 그 속에 태항(胎缸)과 태주(胎主)의 이름 및 생년월일을 음각한 지석(誌石)을 넣고 지상에는 기단·간석(竿石)·옥개(屋蓋)의 형식을 갖춘 석조물을 안치하는 한편 태실 주인공의 표석을 세웠다.

태실에 도착하자 빗줄기가 가늘어진다. 세 번을 다녀갔느니, 네 번을 다녀갔느니 하며 손을 모은다. 다녀간 후에는 좋은 일이 생기더라며 합장한 채 태실을 돈다. 풍수지리에 까막눈이라고 해도 명당임을 알겠다. 태봉은 소나무로 둘러싸였고 청명한 기운이 감돈다. 운무가 소나무 사이로 미끄러지듯 퍼져나가고 비에 젖은 소나무며 솔향도 싱그럽다.

태실에는 세종대왕의 적서 19 왕자 중, 장자인 문종을 제외한 18 왕자의 태를 모셨다는데, 사라진 태실 석물 몇 기는 7대 세조가 어쨌니 저쨌니 하며 혐의자로 몰아간다.

희한하지, 비석에 글자가 없다. 성주 땅에 산성비가 내려 글이 씻겨진 것은 아닐 것이다. 비석에 새긴 글을 못마땅해 한 다른 파에서 이런 소문을 내었다. ‘비석의 글을 파서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 시간이 지나자 비석은 맨드리하게 되었다. 아첨으로 새겨진 글자를 아녀자들이 깨끗하게 파먹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아들을 낳았단다. 대단한 묘수를 썼구나. 이 또한 전해오는 이야기이다.

 

부처님, 하느님은 본인보다 타인이 잘 되길 빌어야 복을 주지만, 이곳 태실은 본인에게 복을 주는 곳이라고 한다. 태를 이장할 때 본인이 잘되길 기원했기 때문이다.

자식이 잘 되는 게 에미에겐 복이다. 가족이 평안한 것도 주부에겐 복이다.

강원도 춘천에서 관광온 여성들
강원도 춘천에서 관광온 여성들

태실을 둘러보고 주차장으로 내려오자 비가 다시 쏟아진다.

빨간색 관광버스 한 대가 주차장에 들어선다. 강원도 춘천에서 태실의 기운을 받기 위해 왔다며 중장년층의 여성들이 우르르 내린다. “태실에 한 번 다녀가면 1년 동안 복을 유지합니다” 해설사가 사탕 같은 말을 굴린다.

태실문화관의 곽명창(52) 해설사
태실문화관의 곽명창(52) 해설사

태실 아래에 있는 태실문화관의 해설사 곽명창(52) 씨는 “평일에는 관객이 한산한 편이나 주말과 휴일에는 많이 오십니다"라며 "이곳은 왕자들의 태가 모셔진 길지의 기운으로 무병장수와 복을 기원합니다. 태실 조성방식의 시대적 변천을 확인하는 최고의 문화유산이며, 전국 최대의 태실”이라고 설명한다. 체크한 설문지를 건네자 참외 모양의 앙증스러운 기념품을 선물로 준다.

“큰아이 입시를 앞두고 다녀갔는데 수시 장학생으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는 작은아이 입시가 코앞이라 다니러 왔습니다”, 태실에 다녀가면 좋은 일이 생긴다며 지인은 환하게 웃는다. 피그말리온 효과이겠지만 긍정적 믿음은 좋은 쪽으로 기를 모아준다.

태실 부근의 부대시설은 이미 조성되어있다. 태실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태실문화관’, 위쪽 산에는 탯줄을 보관해둔 ‘선석사’가 있으니 '세종대왕자태실'과 연계 관광 고리는 완벽하게 갖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