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3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꽃 피어날 추억] (80) 벼 수확과 보관 방법 [꽃 피어날 추억] (80) 벼 수확과 보관 방법 1950년 ~70년대 가을에 누렇게 익은 벼가 황금물결을 일렁이면 농부의 마음은 부자가 되었다. 모내기, 논매기 등 힘들었던 일들을 다 잊게 하였다. 된서리가 내려 벼가 마르면 온 식구가 대장간에서 두드려 만든 조선낫을 들고 벼 베기를 하였다. 가정실습을 한 어린아이들도 일손을 도왔다. 60년대에는 무거운 조선낫 대신 얇은 철판으로 만든 가벼운 왜낫이 공급되어 벼 보리 밀을 베었고, 나무를 할 때는 조선낫을 사용하였다. 상주 김천 등 북부 지역에서는 벼를 베면서 큰 단으로 묶었다. 벼를 어느 정도 베면 어른들은 양쪽 옆구리에 볏단 테마 기획 | 유병길 기자 | bky2945@hanmail.net | 2022-11-01 21:40 [꽃 피어날 추억] (64) 우리 고유의 농기구인 낫 [꽃 피어날 추억] (64) 우리 고유의 농기구인 낫 1950~ 70년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와 상주지역에서는 농작물을 베는 기구는 낫이었다. 벼 보리 밀 콩 참깨 들깨 삼(대마) 등을 베었고, 풀을 베어 소를 먹였고, 나무를 베어 땔감을 하였다. 산소의 풀을 베는 벌초도 낫이 다하였다.우리 민족이 낫을 사용한 역사도 엄청 오래되었다. 농경생활이 시작되면서 도구로 발달 되었다. 청동기에 시대부터 쇠를 사용하였다.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고 두드려 만든 낫은 날이 두껍고 무거운 조선낫이었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날이 얇고 가벼운 왜낫이 보급되어 벼 보리 밀 풀 등을 벨 때 사용하였다. 테마 기획 | 유병길 기자 | bky2945@hanmail.net | 2022-05-17 10:00 [꽃 피어날 추억] ㉞ 벼베기와 탈곡 이야기(2) [꽃 피어날 추억] ㉞ 벼베기와 탈곡 이야기(2) 통일벼 육종과 보급으로 주곡을 자급달성하였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든 배고픔과 빈곤에서 벗어나게 한 것은 우리나라 농업의 역사에 빛날만한 큰 업적이었다.경제개발 5개년 계획 농공병진 정책을 수립한 박정희 대통령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든 배고픔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다수확 벼 품종육종에 총력을 기울여 서울대학교 허문회 박사가 IR667 육종에 성공하였다. 수리불안전답(천수답)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다목적 댐을 막기 시작하였다. 기계화 영농기반을 마련하기 위하여 전국의 논을 600평 900평 단위 경지정리를 시작하였다. 경운기를 생산하 테마 기획 | 유병길 기자 | bky2945@hanmail.net | 2021-10-20 10:00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