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 백 “그 순간 나를 돌려세운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박창진 지부장
플라이 백 “그 순간 나를 돌려세운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박창진 지부장
  • 강효금ㆍ 이원선 기자
  • 승인 2019.06.04 12: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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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배경을 가진 사람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록 평범하고 작은 사람이지만 '선한 영향력'으로 세상을 변화 시키고 싶습니다
예정되지 않은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 준 박창진 사무장  사진 이원선 기자
예정되지 않은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 준 박창진 지부장.  이원선 기자

 

지난 531일 대구인권사무소(소장 이용근)가 주최하는 북 콘서트장에는 익숙한 얼굴의 인물이 참석했다. 세간에 '땅콩회항'으로 알려진 사건의 주인공인 박창진(48)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이다. 승무원 특유의 단정함과 친절함, 겸손이 몸에 밴 태도에 상대방을 응시하는 한없이 부드러운 눈빛까지. 그에게 약속되지 않은 인터뷰를 청했다.

 

플라이 백

-책 제목처럼 회항이 안겨준 의미는.

그 부분이 가장 나중에 씌어졌고 또 쓰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만큼 마주하기가 힘들었다는 말이 되겠지요. 상처일 수도 수치일 수도 있는 부분을 다시 꺼내야 한다는 것, 그 과정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다시 마주하며 용기가 생겼습니다. 201412땅콩회항이라는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저의 삶은 평온함으로 표현됐습니다. 자신이 족쇄에 채워진지도 모르는 잘 길들여진 노예의 삶이었습니다. 잘 나가는 직장인이라는 그 달콤한 유혹에 빠져 꿀만 빨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족쇄가 철거덕거리는 것을 알 수도 있었을 텐데, 애써 외면하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족쇄를 벗어나기까지 죽을 만큼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보게 된 새로운 세상을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 그 열망이 책을 쓰게 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 이면에 있는 본질을 바라보지 않고 흥미로운 구경거리로만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무척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가장 힘든 시간을 견디게 해 준 힘은.

그 사건이 있고 난 뒤에 누님이 저의 집에 오셔서 같이 지냈습니다. 매일 잠을 못 이루고 서성거리는 날이 계속됐습니다. ‘피해자임에도 거짓말쟁이로 둔갑된 제 자신이 비참했고 견딜 수 없었습니다. 사건 이후 6개월 정도 지났을 때입니다. 이제 그만 그 고뇌와 번민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새벽 2, 3시쯤이었습니다. 아파트 난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제게 주어진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언제 나왔는지 누님이 저를 붙잡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암 선고를 받았다고. 이런 나도 수술을 미루고 너를 살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이렇게 네 곁을 지키고 있는데, 어떻게 너는 그런 선택을 하려 하느냐고. 그때 누님의 말이, 누님의 사랑이 저를 죽음의 문턱에서 돌려세웠습니다.

 

선한 영향력

-복직하고 난 뒤에 시간은 어떠셨는지.

대한항공의 정규직 직원은 2만 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제가 엘리베이터를 타면 아무도 그 엘리베이터에 타지 않습니다. 사무실에서도 아무도 제게 말을 걸지 않고요. 점심시간에도 저 혼자 사무실에 남아 있었습니다. 회사 측에서는 5, 10년 전에 저와 함께 일했던 직원들을 불러 저의 근무 태도와 사생활을 캐기도 했습니다. 어떤 동료는 저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요. 보이지 않는 많은 다수는 제게 내부 고발자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하고, “네가 뭔데” “네가 무슨 깡으로 여기 나왔어라는 말을 공공연히 제 앞에서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제게 얘기했습니다. 내 안의 힘을 믿고 나아가자.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동안 저조차 저를 사랑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연결되어 힘을 발합니다. 누군가가 제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그 연대가 없었다면 지금의 제가 될 수 없었을 겁니다. 저도 그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고 싶습니다.

 

- 작년 봄, ‘대한항공 세 모녀의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대한항공 직원들이 가면 집회를 열었습니다. 그때 혼자 가면을 쓰지 않고 사회를 보셔서 다시 한 번 시선을 모으기도 했는데요.

내부의 연대는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때 머리 뒤에 생긴 큰 종양으로 인해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매일 회사 문을 여는 것이 지옥문을 여는 것처럼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익명 채팅방의 관리자에게 전화가 온 겁니다. 집회에 나와 사회를 봐줬으면 좋겠다면서. 솔직히 나를 이용하려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저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대로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운명처럼,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그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알기에. 용기를 내라고, 내 안의 사랑이 또 다른 연대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지금은 일반 승무원으로 근무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어 실력이 모자라서, 한국어 시험에서 90점을 맞지 못해서 계속 일반 승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비행기 한 대가 하루에 운항하는 횟수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운항 횟수가 많다 보니 짧은 시간에 청소를 마쳐야 하지요. 그 청소하는 짧은 시간 10여 분 남짓한 시간에, 청소를 끝내고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쪽지를 건네주셨습니다.

지금 하시는 일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누군가에게 큰 용기가 됩니다.” 청소가 끝났음을 보고하는 용지를 반 접어 바삐 써 내려간 그 글씨가, 제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이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아주 작은 사람이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늘 우리 사회를 선한 영향력으로 이끌 수 있기를 꿈꿉니다. 지금 대한항공직원연대의 지부장으로 노조원 수가 300여 명 정도의 작은 노조를 맡아 일하고 있습니다. 2만 명이 넘는 큰 회사에서 300은 아주 적은 수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큰 결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 여깁니다.

 

북 콘서트에서 관객들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박창진 사무장  사진 이원선 기자
북 콘서트에서 관객들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박창진 지부장.   이원선 기자

 

 

인간다울 권리

- ‘사람다움은 어디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시는지.

저는 많은 싸움 끝에 살아남아 있지만 매일 험난한 시간을 마주해야 합니다. 우리는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고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믿습니다. 한때 제 안의 가시가 마음을 뚫고 머리를 뚫고 삐져나와 저를 피 흘리게 만들고 스위치를 끄고 싶게 만든 적이 있습니다. 그 어두운 시절을 지나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너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 순간 타인에 대한 미움도 사라졌습니다. 우리 개개인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용기를 낼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정의롭고 공정한 일에는 용기를 내야 합니다. 결과가 처참하더라도 다시 정의롭고 용감한 일을 위해 일어설 수 있는 용기. 그런 용기가 모여 우리 사회가, 기업 문화가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생각들. 너는 태어나기가 을인데, 왜 그래. 제 안의 사랑이 저를 계속 발전하게 합니다. 저는 기꺼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하겠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십시오. 그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사랑입니다. 우리의 존귀함을 누가 빼앗아가도록 놔두지 마십시오.

 

- 세상의 경계 밖으로 나오려 하는 사람들에게.

꿋꿋이 버텨 나가고 생존해 나가며, 변화해 가는 사회를 보여주겠습니다. 우리 다음 세대는 더 나은 사회에 살 수 있도록, 방패막이가 되겠습니다. 나의 존엄을 위한 투쟁이 누군가의 마음에 불씨를 일으켜 작은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비록 견고한 세상은 쉽사리 바뀌지 않겠지만 나와 같은 사람들의 외침이 계속해서 울려 퍼지다 보면 분명 다른 사람들의 가슴 속에도 저마다의 존엄이 깨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그 하나하나의 존엄이 깨어날 때마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이 올 가능성이 커진다고 믿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앞으로도 저는 저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것입니다.

 

내일 새벽 비행기를 타야 한다며 서둘러 길을 나서는 그의 모습에서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시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