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창] 인간과 지구환경 그리고 공존
[인문의 창] 인간과 지구환경 그리고 공존
  • 장기성 기자
  • 승인 2024.05.07 17:31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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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중심의 역사에 집중하지 않으면 인간들 사이에 발생하는 고통을 보지 못하고, 마찬가지로 종(種)들 사이를 넓게 보지 않으면 다른 종들의 고통이 보이지 않는다
전 지구적으로 기후 및 생태계 위기는 인류세 담론의 부상으로 인간과 세계에 처한 가장 논쟁적이고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근세 인류세의 시작 시점으로는 화석연료 사용이 급증한 1800년대 산업혁명이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Pixabay
지구가 울고있다. 전 지구적으로 기후 및 생태계 위기는 인류세 담론의 부상으로 인간과 세계에 처한 가장 논쟁적이고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근세 인류세의 시작 시점으로는 화석연료 사용이 급증한 1800년대 산업혁명이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Pixabay

인간은 너무나 빨리 진화의 정점(頂點)에 올랐기에, 생태계가 그에 맞춰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인간중심의 역사에 집중하지 않으면 인간들 사이에 발생하는 고통을 보지 못하며, 마찬가지로 종(種)들 사이를 넓게 보지 않으면 다른 종(種)들의 고통이 보이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추정한 지구의 역사는 약 46억년이다. 그 가운데 ‘인류세’(人類世)란 인간의 활동이 지구 환경을 바꾸는 시대를 이르는 말이다. 인류세(Anthropocene)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에 의한 지구 환경의 변화다. 생물 다양성과 기후변화, 지형학, 층서학 등이 그 대표적이다. 생물다양성과 관련한 문제는 인간 활동으로 인해서 서로 다른 종이 멸종하는 건 다반사였다. 인간의 직접적 수렵(狩獵)에 의해서는 물론이고, 개발을 빌미로 열대우림의 산림이 감소하면서 많은 생물 종이 멸종되거나 멸종 위기에 놓여있다. 또한 인간의 이동(移動)으로 생물 분포에 변화가 발생하는 사례도 많다. 여행이나 무역으로 특정 생물이 대륙을 이동해 전파된 곳의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사실 ‘인류세’라는 개념은 2001년 네덜란드 화학자 크루첸이 처음 제안했다. 인간이 화석연료를 대규모로 사용하면서 배출된 온실가스로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가 시작된 데서 착안 헀다. 크루첸은 인간이 생산한 기체 화합물이 성층권의 오존층을 파괴할 수 있음을 알아내 1995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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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서부 말리(Mali)에 있는 반디아가라 마을 모습이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지어진 마을이지만 인류세의 전형으로 보여진다. Wikipedia

인류세 가운데 기후변화는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대기오염과 관련이 있다. 인간의 활동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격히 증가했으며, 오존층이 파괴되니 지구 기온이 상승하는 효과가 일어났다. 산림 감소 역시 기후변화에 부정적인 영향 가운데 하나다. 지형학과 층서학은 지구 표면과 퇴적·화석 기록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지형학은 채석이나 조경 등의 활동이 지구 표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며, 층서학은 산림 감소와 도로 건설, 댐 건설 등으로 인해 지구 표면의 평균 침적물이 증가한 걸 연구하는 분야다. 화석기록의 측면에서도 콘크리트와 플라스틱 쓰레기가 인류세의 한 특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류세의 본질적 연구는 지구의 생태계변화에 관한 원인과 그에 대한 책임을 모든 인간에게 돌렸으며, 지금까지 지구환경 문제에서 인간이 간과했던 다양한 관계와 문제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시류는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한 전염병과 함께, 환경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에코(Eco)’라는 테제를 유행시켰지만 이 또한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신 자본주의적 시스템 속에서 여전히 소비되고 있다.

대구미술관 제공
 화석기록의 측면에서도 콘크리트와 플라스틱 쓰레기가 인류세의 한 특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구미술관 제공

최근 생물종의 멸종 비율은 인간 역사에서 전례가 없으며 지구의 역사에서도 매우 드문 경우다. 우리 지구공동체 사회가 현대화되는 비율로 다른 생명체들을 파괴하기 시작했으며 그것도 6천 5백만 년 동안 전례 없는 대량 멸종을 촉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과 같이 왕성한 멸종 속도가 계속되도록 내버려 둘 경우, 인간은 곧 생물 다양성이 주는 많은 혜택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확실한 대멸종을 피하기 위해서는 신속하고 매우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 이미 위협받고 있는 종(種)들을 보호하고 종들의 개체 수에 가해진 압력, 특히 서식지 손실, 경제적 이익을 위한 남획, 기후변화를 완화해야 한다. 이 모든 압력은 무엇보다 부자들의 소비와 경제성장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기회의 창은 빠르게 닫히고 있다.

먹이사슬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던 다른 동물, 예컨대 사자나 상어는 수백만 년에 걸쳐 서서히 그 지위에 올랐다. 그래서 생태계는 사자나 상어가 지나친 파괴를 일으키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 사자의 포식 능력이 커지자 가젤은 더 빨리 달리는 쪽으로 진화했고 하이에나는 협동을 더 잘하도록 진화했으며 코뿔소는 더욱 사나워지도록 진화했다. 이에 비해 인간은 너무나 빨리 정점(頂點)에 올랐기 때문에, 생태계가 그에 맞춰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이것이 문제였다.

인류세는 분명 파국적이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그 가능성을 외면하거나 부인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동시에 다가올 붕괴에 대한 비관적 서사(敍事)만을 반복하는 일은 우리를 마비시킬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한 역사가의 표현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다. 말하자면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단호히 행동하는 희망적 서사가 필요하다. 우리는 인간과 다른 동물들이 이 행성에서 맞이하고 있는 위기를 우리 스스로 충분히 자각해야 한다.

인간중심의 역사에 집중(zoom-in)하지 않으면 우리는 인간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보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종(種)의 깊은 역사로 확대(zoom-out)하지 않으면 ‘다른 종(種)들의 고통, 어떤 의미에서는 이 행성의 고통이’ 보이지 않을 게다. 이처럼 동시에 다른 규모, 관점, 수준 사이를 왕복하는 일은 분명 벅찬 과제이다. 그렇지만 이는 아마도 역사학이 ‘느린 희망’을 북돋아 인류의 공적 미래를 열어가는 데 동참하는 길이 될 것이다. 인류의 우렁찬 현대화 산업이 인류의 희망찬 내일을 반드시 담보하지 않은 다는 말 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