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입은 여인들 화전놀이로 즐거운 하루
한복입은 여인들 화전놀이로 즐거운 하루
  • 권오훈 기자
  • 승인 2024.03.31 2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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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천서원에서 제6회 화전놀이와 상춘대회 열려
100여 명이 7팀으로 나눠 솜씨 겨뤄
화전과 음식 나눠먹으며 즐거운 하루
정가와 대금 독주, 내방가사 낭송도 곁들여

한복 차림 여인네들이 삼삼오오 둘러서서 수다를 떨며 후라이 팬에 찹쌀 경단을 둥글납작하게 만들어 전을 부친다. 살풋 익은 전 위에 진달래 꽃잎을 얹는다. 노란 민들레와  보라색 제비꽃 등 다양한 색상의 꽃잎과 어린 쑥을 얹기도 한다. 전이 굽히며 고소한 냄새에 은은한 꽃향기, 쑥 향기까지 보태지니 자기 입, 옆사람 입에다 하나씩 넣어준다. 화전놀이 현장이다. 

한복을 차려입은 여인들이 화전을 부칠 준비에 여념없다. 권오훈기자
한복을 차려입은 여인들이 화전을 부칠 준비에 여념없다. 권오훈기자

 

 
3. 29(토) 달성군 가창면 소재 한천서원(寒泉書院)에서 '제6회 화전(花煎)놀이와 상춘(賞春)대회'가 열렸다. 한천서원은 전이갑과 전의갑 장군 형제분을 모신 서원이다. 두 장군은 공산전투에서 패한 왕건을 살리려고 그의 갑옷을 입은 신숭겸 장군과 함께 남아 분사한 개국공신이다.   

 (사)범국민예의실천운동본부(이하 '예실본')의 후원을 받아 (사)한국인성예절교육원(이하 '한예원)' 이 주최한 이날 화전놀이는 내빈과 심사위원을 포함, 100여 명이 참석했다. 사라져가는 옛 풍습인 화전놀이를 재현해보는 뜻깊은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권오훈기자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권오훈기자

 

화전놀이는 신라시대부터 전래된 세시 풍속놀이로 ≪동국세시기≫ 
 (3월3일조)에는 '화전이란 참꽃을 따다가 찹쌀가루에 반죽하여 둥근 떡을 만들고 그것을 기름에 지진 것'이라 하였다. 원래 주재료인 진달래가 만발하는 삼월 삼짓날(음력 3.3)에 했다. 올해 삼짓날은 10여일 뒤인 4.11이 된다. 지구온난화 탓에 대구 지방은 이미 진달래가 만개했다. 

이 놀이는 문밖 출입이 어렵고 힘든 가사노동과 농사일에 찌들렸던 여자들을 위해 일년에 한 번 마음껏 즐기는 상춘행사였다. 이날 하루만큼은 시부모와 남편의 허락을 받아 경치 좋은 산천에 모여 차일을 치고 전을 구었다. 찹쌀전 위에 진달래 꽃잎을 얹어 구운 화전의 풍미를 음미하고 음주 가무를  마음껏 즐기며 여인들의 쌓인 한을 풀었다고 전한다. 

대구국제여성협회 소속 회원들도 가족과 함께 참가하였다. (왼쪽에서 네번째가 크리스트 장군) 권오훈기자
대구국제여성협회 소속 회원들도 가족과 함께 참가하였다. (왼쪽에서 네번째가 크리스트 장군) 권오훈기자

 

주최측은 놀이의 확산과 문헌의 고증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단체에 안내하여 신청을 받았다. 특히 올해는 대구국제여성협회의 주한 미군 가족도 참가했다. 참가자들을 7개 팀으로 나누었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 외부 학계와 다도 전문가도 초빙했다. 화전을 굽는 동안 공연팀이 정가(正歌)를 부르고 대금과 거문고 연주로 흥겨운 분위기를 돋우었다. 

화전 굽는 동안 공연 팀이 대금과 정가를 부르며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권오훈기자
화전 굽는 동안 공연 팀이 대금과 정가를 부르며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권오훈기자

 

내방가사 연구팀은 회원 모두가 참여해 만든 60m 길이의 두루마리 '덴동어미 화전가'를 전시하고 화전놀이의 소회와 감흥을 노래한 내방가사를 미리 지어와 낭송했다. 화전놀이에도 합류하는 한편 흥겨운 뒤풀이 여훙을 유도하며 놀이의 격을 높였다. 
주인 격인 한예원의 인성예절지도사들은 축제 장소를 준비하고 진행을 돕는 한편 자신들도 3개 팀으로 나뉘어 솜씨를 과시했고 2월에 개강하여 수강중인 24기 수강생들도 한 팀을 이루어 함께했다. 

각팀 대표가 추첨을 통해 정해진 팀명을 들고 있다. 권오훈기자
각팀 대표가 추첨을 통해 정해진 팀명을 들고 있다. 권오훈기자

 

진달래, 개나리, 산수유, 설중매, 복수초, 수선화, 백목련  등 봄철에 피는 꽃의 이름을 딴 팀명을 추첨으로 정했다. 7개로 나뉘어진 각 팀은 나눠준 진달래를 전 위에 얹어 화전을 굽고 따로 준비해온 다양한 색상의 예쁜 꽃잎들도 보탰다. 다양한 화전들이 예쁜 접시에 담겨 저마다 모양과 풍미를 자랑했다. 예보에 없던 여우비가 심술을 부려 처마와 차일 밑으로 옮겨가며 음식을 준비했다.

대상을 차지한 개나리팀에서 정성껏 만든 화전. 권오훈기자
금상을 차지한 복수초팀에서 정성껏 만든 화전. 권오훈기자

 

세 명의 심사위원이 맛, 멋, 청결, 어울림, 팀웍 등 정해진 심사 항목에 따라 채점을 합산하여 시상했다. 모든 팀에게 고루 상이 돌아갔다. 대상은 개나리팀(한천서원 강사)이 차지했다.

참석자들은 화전과 따로 준비한 갖가지 음식을 먹으며 화전놀이의 유래와 의미를 되새겼다. 옛여인들의 고단했던 시절을 돌아보고 오늘날 역전된 여인들의 위상에 안도했다. 마지막은 참석자 모두가 어우러져 한바탕 흥겨운 춤사위로 마무리했다.

참가자들이 한데 모여 신나게 춤을 추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권오훈기자
참가자들이 한데 모여 신나게 춤을 추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권오훈기자

 

이날의 화전놀이와 상춘대회를 후원한 (사)범국민예의실천운동본부 임귀희 이사장은 "신라시대부터 유구한 전통으로 이어져온 여인들의 봄맞이 행사인 화전놀이는 근간에 보기 드문 일입니다만 올해 6회째로 한예원과 예실본에서 전통문화를 이어간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재현해 보았습니다. 함께 한 참가자들이 즐거워하니 보람과 고마움을 느낍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실상 조선시대 남성들도 산천경계 좋은 곳을 찾아 화전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16세기 시인인 임제는 맛깔스런 시 한 수를 남겼다. 

'작은 개울가에 돌 고여 솥뚜껑 걸고, 기름 두르고 쌀가루 얹어 참꽃(杜鵑花)을 지졌네. 젓가락 집어 맛을 보니 향기가 입에 가득 
봄빛이 뱃속에 전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