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에서 낚은 시, 거리로 오다
저수지에서 낚은 시, 거리로 오다
  • 우남희 기자
  • 승인 2022.09.30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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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채 시인의 『물 깁다』

 시의 소재는 무궁무진하게 많다. 하지만 그 많은 것들이 다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소재 하나, 하나를 붙들고 형상화해서 온전한 시가 되기까지 숱한 불면의 밤들을 보내야만 한다. 시는 쉽게 우리 곁으로 오지 않는다. 그러니 시집 한권에 적지 않은 시간들이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많고 많은 소재 중에 물, 특히 저수지를 소재로 한 시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문병채 시인의 첫 시집인 『물 깁다』이다. 작가는 낚시를 좋아해 저수지에서 시어를 낚다보니 소재의 90%가 저수지다. 문우들이 그를 ‘저수지 시인’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는 첫 시집 출간기념으로 특별한 행사를 기획했다.

거리에 전시된 시화      우남희 기자
거리에 전시된 시화 우남희 기자

60여 편의 시를 시화로 제작하여 지역민들의 정서순화에 이바지하고자 시화전을 기획했음이다. 대구 수성구 사월교 인근의 아파트 단지 앞 도로에 저수지에서 건져 올린 주옥같은 시들이 가을바람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주민 윤춘화(62)님은 “바람에 펄럭이는 것이 뭔가 했더니 시화더군요. 생활에 쫓겨 주위를 돌아볼 틈이 없었는데 출근하면서 한 편, 퇴근하면서 한 편씩 읽으니 고개가 끄덕여지고 어떤 시는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시를 쓰지 않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쉽게 와 닿는 그런 시였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가을이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하잖아요. 시를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고 했다.

‘몸 안 저수지를 찾는다

흙탕물 저수지 찾아

망태기 바랑 메고 떠난다

내 몸속 시가 없어

저수지 수심에서 시어를 찾는다

아직 시의 치어들은 없다’고 작가는 말한다.

문병채 시인의 첫시집 '물 깁다'         우남희 기자
문병채 시인의 첫시집 '물 깁다' 우남희 기자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저수지의 물에 비친 모습에서 내면을 읽고, 앞으로의 소재가 된다는 ‘문門’에서도 또 다른 내면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저수지 위에 박음질 자국이 선명하다

셈을 할 수 없을 만큼 수면이 겨울바람에 너덜거린다

(중략)

햇살이 점점 늙어가는 겨울 오후

블라우스 청치마 구멍양말도

빨래집게 수만큼 제 살을 꿰매고

물속에 거꾸로 처박힌 내 그림자도

듬성듬성 하루를 깁고 있는데‘

-「물 깁다」의 부분

작가는 이 시에서 ‘저수지 물속에서 거꾸로 처박힌 내 그림자를 깁는다’고 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 삶이 힘겨울 때도 작가는 저수지에 앉아 낚시를 했다. 고기를 낚기 위함이 아니라 마음을 낚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물을 찾아다닌 세월이 강산이 세 번 바뀌었다. 흔히들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지만 작가는 물에서 태어나 한 방울의 이슬처럼 물로 돌아간다고 한다. 어머니의 자궁은 우주의 시원이자 저수지로 시인으로서의 길은 거기서 출발했다.

작가는 전직으로 학원을 경영했다. 프랜차이즈 논술 책을 만들면서 글 쓰는 걸 모르고는 책을 쓸 수 없다는 걸 알고 본격적으로 문학에 입문하기 위해 경희사이버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했고 영남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며 ‘시를 가꾸는 마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