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옛 지명을 찾아서] 가르뱅이, 새방골
[사라진 옛 지명을 찾아서] 가르뱅이, 새방골
  • 박미정 기자
  • 승인 2022.01.26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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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뱅이마을과 새방골을 찾아서
가르뱅이마을 길이 경사가 심하다. 박미정 기자
가르뱅이마을 길은 경사가 심하다. 박미정 기자

 

대구시 서구 상리동의 자연마을은 옛 지명인 새방골과 가르뱅이 두 마을이 있다. 새방골은 상리 1동, 가르뱅이는 상리 2동으로 산기슭에 자리잡아 마을길이 경사가 매우 심하다. 가르뱅이마을은 상리동 북단에 자리잡은 마을로서 서대구나들목과 서대구톨게이트 옆에 위치하고 있다. 202번, 202-1번 버스의 출발, 종착 지점이다. 

지명의 유래는 와룡산이 귓바퀴처럼 생겼다고 해서 '괘이방', '갈뱅이'라고 구전되었다가 발음 편의상 가르뱅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고려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한일합방전에 '괘이동'으로 명명되었다.

가르뱅이 대로변에 요양병원이 들어섰다. 박미정 기자
가르뱅이마을 대로변에 요양병원이 들어서 있다. 박미정 기자

 

또한 가르뱅이란 옛날 마을 입구까지 동쪽으로부터 내려오는 달서천과 와룡산 기슭에서 흐르는 샛강이 모여 지나갔던 곳으로 개울가에 있는 마을, 즉 '강에 걸려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걸 '괘'와 마을 '리', 또는 (동네 방: 뱅이)를 합하여 '괘이동' 또는 가르뱅이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상리동은 가르뱅이 위쪽에 있다고 하여 '웃마'라고 불렀다. 대구부 달서면의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가르뱅이와 새방골을 합하여 상리동이라 하였다. 달성군 달서면에 편입하였다가 1938년 10월 대구부로 편입되었다.

대구 상리동 가르뱅이공원 입구. 박미정 기자
가르뱅이공원에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박미정 기자

 

 

새방골마을은 상리동 남단에 자리잡은 마을로서 성서아파트단지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마을이다. 새방로가 지나며, 그 옆에 중부내륙지선과 신천대로가 나란히 달리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대구부 달서면 지역이었으며, 근대(1914)에 가르뱅이와 새방골을 통합하여 달성군 달서면으로 편입되었다. 이후 대구시 서구 상리동~대구직할시 서구 상리동~대구광역시 서구 상리동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새방골성당 야경. 박미정 기자
대구 최초의 새방골 성당 야경. 박미정 기자

 

또한 새방골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있다. 신당리 금호강 하류에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돌풍이 불어 집이 날아와 떨어져 있는 곳이 새방골이라 전한다. 처음 함양 조씨가 한 가구를 개척하고 살았으나, 임진왜란 때 왜란을 피해 진주 강씨가 정착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새로 집이 생겼다고 하여 새방골이라고 했다. 

새방골마을 전경. 박미정 기자
새방골마을 전경. 박미정 기자

 

오늘날 상리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으로서는 중리동(中里洞), 이현동(梨峴洞)과 함께 상중이동(上中梨洞)으로 관할되고 있으며 상리, 중리, 이현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행정동이다. 현재 상리동은 가르뱅이마을과 새방골의 자취를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군데군데 상업용 건물이 들어서 있고, 허름한 주택들이 현대식 건물로 서서히 탈바꿈하고 있다. 

사라지는 것은 옛 지명뿐만이 아닐 것이다. 저녁연기가 피어오르고, 골목 어귀에서 고무줄놀이, 구슬치기하던 영희와 철이의 모습도 이제는 사라져 간 아련한 옛 추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