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三聖賢)께 길을 묻다
삼성현(三聖賢)께 길을 묻다
  • 이상유 기자
  • 승인 2021.08.18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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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현역사문화공원
원효, 설총, 일연의 업적과 정신이 살아 있는 곳
삼성현역사문화공원 종합안내도. 이상유 기자
삼성현역사문화공원 종합안내도. 이상유 기자

어느 해 보다 힘들고 긴 2021년 여름이다. ‘코로나 19’라는 전염병이 창궐한 지 1년 반이 넘었지만, 그 기세는 좀처럼 꺾일 줄 모르고 4차 대유행으로 번져 전국을 휩쓸고 있다. 거기다가 예년에 보기 드문 폭염까지 기승을 부려 사람들을 탈진케 만들었다. 국민들을 위무(慰撫)해야 할 정치권은 몇 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 매몰되어 민생은 뒷전이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우리의 인내력을 시험하고 있는 듯하다.

큰 깨달음의 지혜로 살다 가신 선각자들의 소중한 말씀이 기다려지는 때다.

경북 경산을 삼성현의 고장이라고 한다. 한국 불교 최고의 사상가로 추앙받고 있는 원효대사, 원효의 아들로 우리나라 유학의 기둥이며 이두를 집대성한 설총, 삼국유사를 저술해 민족문화의 자주성을 정립한 일연 스님의 태생지(胎生地)가 경산이고 지역 곳곳에 세 분의 발자취와 정기가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지친 일상을 떨치고 세 분 성현들을 찾아뵙기 위해 삼성현역사문화공원을 향해 출발했다. 공원은 세 분 성현들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경산시 남산면 삼성현로 59 일대 262,462㎡의 넓은 부지에 총공사비 513억 원을 들여 6년 간의 조성 공사 끝에 2015년 4월 30일 준공되었다.

경산의 백천 네거리에서 대구 한의대 방향으로 승용차로 10분 정도 달리면 공원이 나온다. 대구 월드컵경기장과 연결된 왕복 6차선의 넓은 도로가 입구까지 연결되어 있다.

삼성현역사문화관
삼성현역사문화관. 이상유 기자
역사문화관 상설전시관. 이상유 기자
역사문화관 상설전시관. 이상유 기자.

공원에 들어서자 마치 큰 절의 일주문처럼 의연한 자태의 정문이 우뚝 서 있다. 세 분의 성현을 만나 뵙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가짐부터 경건하게 하라고 주문하는 듯하다.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공원 안으로 들어가자 중앙광장(바닥 분수대), 삼성현 이야기 정원, 어린이 놀이터, 미로원, 야외공연장, 연못 등이 잘 꾸며져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온 한 가족이 전통 투호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삼성현 역사문화관 본관 건물이 눈앞에 들어왔다. 마치 청와대 본관처럼 웅장하고 기품있게 지어진 기와집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안내자가 2층부터 관람하라고 한다. 원효실, 설총실, 일연실로 꾸며진 2층 상설전시실에는 세 분 성현들의 출생에서부터 일생의 행적과 업적, 사상과 학문적 성과 등을 망라한 갖가지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면 자동으로 상영되는 영상물들도 흥미와 실감을 더 한다.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수많은 저술과 강론 등으로 중생들의 삶을 어루만지며 살다 가신 성현들의 뜨거운 생애가 감동으로 전해왔다. 옷깃을 여미고 세 분 선각자들의 말씀을 가슴으로 느끼며 어리석고 부끄러운 나의 삶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본관 1층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삼성현과 관련된 각종 체험을 할 수 있는 학습실, 기획전시실, 느린 우체국 등으로 꾸며져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성현들의 가르침과 정신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음에 뿌듯한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기원했다.

본관 건물 밖으로 나와 원효 대사 깨달음 체험관으로 향했다. 체험관으로 들어가 원효 대사의 흉내를 내며 절차에 따라 깨달음 체험을 해본다. 인간사의 모든 일은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며,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깨달음의 의미를 깊이 되새겨 본다. 우리의 행· 불행도 모두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니 매사에 좋은 생각,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체험장을 나왔다.

원효 대사의 해골 물 깨달음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원효가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도중 날이 저물어 어느 동굴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한밤 중에 목이 마른 원효는 옆에 있던 바가지에 고인 물을 달게 마셨다. 아침에 일어나 살펴보니 그 물은 사람의 해골바가지에 고인 썩은 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심하게 구토가 났다. “똑같은 물인데 어찌하여 어제 저녁 아무것도 모르고 마실 때는 그렇게 달콤하던 것이, 오늘 해골 물임을 알게 되니 이렇게 구역질이 나는가? 물이 깨끗하다는 것도, 더럽다는 것도 다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큰 깨달음을 얻은 원효는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가 대중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관. 이상유 기자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장. 이상유 기자

체험장 바로 옆에 ‘지혜를 키우는 꽃동산’이라는 안내판과 함께 ‘화왕계’에 등장하는 모란, 장미, 할미꽃이 심어져 있었다. 화왕계는 설총이 신문왕에게 들려주었다는 이야기로, 꽃을 의인화해서 임금에게 충언한 내용이다. 꽃의 나라에서 꽃 중의 왕인 모란에 장미가 찾아와 자신의 아름다움을 내세우며 화왕을 모시겠다고 유혹한다. 뒤이어 나타난 할미꽃은 자신이 군자의 도리를 아는 장부임을 말하며 자신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화왕은 처음에는 장미에 마음이 끌렸지만 결국 할미꽃의 말을 받아들여 바른 정치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설총의 이야기를 들은 신문왕은 그 내용을 글로 새겨 후세 왕들이 경계로 삼도록 했고 설총에게는 큰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시대는 변했지만, 오늘날의 인간관계에서도 화려한 겉모습보다는 내면의 참모습을 발견해 내는 지혜가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되새겨 본다.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사계절 레일 썰매장을 둘러본 후 둘레길에 들어섰다. 제철을 맞은 나라꽃 무궁화가 다투어 피고, 진분홍 배롱나무 꽃이 산기슭을 물들이고 있었다. 공원 최남단의 경산 사직단 앞에서 잠시 묵례를 하고 본격적으로 소나무 숲속의 산책로에 들어섰다. 11개 구간의 산책로 곳곳에는 삼성현과 관련된 안내판과 조형물이 설치되어 산책을 하면서 성현들의 가르침을 조용히 되새겨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산책로 바닥은 안전을 위해 야자 껍질로 만든 멍석을 깔아 놓아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다. 마지막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며 온 산을 진동시키며 울어 대는 매미 소리와 가끔 소나무 가지 위를 타고 오르내리는 청설모의 재롱을 보며 심신의 피로를 달래본다. 산책로 끝부분에는 유아 숲 체험장이 있었다. 어린이들이 숲속에서 단체로 심신을 단련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체험시설을 보면서 그 옛날 호연지기를 기르던 화랑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유아 숲 뒤편에는 국궁장이 있었다. 올해 분산 개최된 경북 도민체전의 국궁대회가 이곳에서 열렸다고 한다. 둘레길 숲속의 산책로는 삼성현의 은은한 체취와 말씀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답고 고즈넉한 최고의 심적 치유 공간이었다.

경산시 사직단. 이상유 기자
경산시 사직단. 이상유 기자
둘레길 산책로 입구. 이상유 기자
둘레길 산책로 입구. 이상유 기자.

산책로를 벗어나 정문 쪽으로 나오자 건너편에 ‘자라지’라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연못 하나가 눈앞에 들어왔다. 못 둑에는 10여 그루의 왕 버드나무가 연못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최근 경산시에서는 많은 예산을 들여 이 연못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대대적인 정비를 했다고 한다. 멀지 않아 이곳도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소문난 인근 ‘반곡지’에 버금가는 명소가 되겠다고 하는 예감이 들었다.

연못가의 산책로를 걸어 올라가자 동의 한방촌이 모습을 드러냈다. 2020년 문을 연 한방촌은 내부에 한의원, 한방문화체험관, 한방미용원 등으로 꾸며져 있고 야외에는 약초 정원, 치유 숲, 산책로 등이 조성되어 건강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한다.

삼성현역사문화공원은 불과 6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경산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삼성현의 정신을 이어받는 역사문화 공부 및 체험학습공간으로, 심신을 단련하고 호연지기를 키우는 수련장으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휴식 및 놀이 공간으로 연간 2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고 있다고 한다.

특히, 관람객의 70-80%가 대구 사람들이라고 한다. 앞으로 대구도시철도 3호선이 대구한의대를 거쳐 삼성현역사문화공원까지 연결되는 등 대중교통 문제만 해결된다면 명실상부한 대구 인근 최고의 관광 및 힐링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게 될것이다.

위대한 선각자들의 정신을 되새기며 삼성현역사문화공원에서 보낸 하루는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고 삶의 활력을 재충전하기에 충분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조’의 말씀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면서 긍정의 삶을 실천할 것임을 다짐해 본다.

'자라지'의 모습. 이상유 기자
'자라지'의 모습. 이상유 기자
경산 동의한방촌 일원. 이상유 기자
경산 동의한방촌 일원. 이상유 기자